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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과 복지는 근본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다. 금융은 계약의 의무가 중요한 반면 복지는 의무보다는 권리에 가깝다. 금융은 홀로서기이고, 복지에는 연대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금융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한다. 복지 개념과 다소 혼동된 오해들이다. 가령 서민에게 은행의 문턱이 높다는 문제제기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제도 금융권이 가난한 사람에게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가계 부채 1000조 원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큰 점을 감안하면 비현실적인 주장일 수밖에 없다. 마치 고장난 자동응답기처럼, 가계 부채가 경제의 턱밑까지 올라와 금융위기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도 '문턱'에 대한 문제제기는 반복된다. 신용이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공급되던 외환위기 이전 시대에 유효했던 문제제기가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 채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금융을 복지와 혼동하는 경향에서 비롯된다. 외환위기 이전은 저축을 강조하는 시대였고, 대출은 주로 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신용 공급이 개인에게 제한적이던 시절,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하나의 특혜로 인식되었다.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경험효과로 작용하면서, 돈 빌리는 걸 특혜로 여기는 사회적 감성이 만들어졌다. 이로써 신용 등급이 높지 않은 서민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야말로 금융권이 해야 할 사회적 책무인 것처럼 여기게됐다.

사회안전망 대신 돈 빌려주는 사회

 대출을 받기 위해 찾아온 신용불량자에게 지금의 상태를 설명해주고, 어떻게 하면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적절한 시기가 언제일지를 함께 상의할 수 있어야 한다.
 대출을 받기 위해 찾아온 신용불량자에게 지금의 상태를 설명해주고, 어떻게 하면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적절한 시기가 언제일지를 함께 상의할 수 있어야 한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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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가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사건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줬다. 자살을 앞두고도 집주인에게 "미안하다"며 공과금을 남긴 세 모녀. 이들의 죽음은 그간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도덕적 해이'라는 사회적 비난이 얼마나 냉정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일례로, 국민행복기금은 월 소득 40만 원인 사람에게 10년간 1000여만 원의 채무를 상환하도록 하는 채무조정프로그램이다. 월 소득 40만 원이면, 이런 저런 공과금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생계비도 못 되는 돈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사실상 채무조정프로그램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쥐어짜는 사골국물과 같은 채권추심 프로그램이다. 채무조정 프로그램으로서 국민행복기금이 제 기능을 하려면, 최소한 소득 창출능력이 되는 사람들에게 적용돼야 한다.

바바라 애런 라이크는 <노동의 배신>이라는 책에서 "가난할수록 돈이 더 든다"고 일침을 가한다. 실제 우리 사회도 저소득층일수록 고금리 대출에 신음하느라 금융비용을 더 많이 지출하고, 주거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감당키 힘든 월세도 낸다. 먹는 것이 부실해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비를 더 많이 부담하는 현실까지 감안하면, 애런 라이크의 일침은 미국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미국보다 더 잔인한 금융환경 구조를 지녔다. 미국에서는 상환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 자체를 '약탈적 금융'이라고 비판한다. 갚을 수 없을 줄 알면서 돈을 빌려주는 것은, 다른 식으로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라고 본다. 이러한 비판의식은 법률 체계에도 반영되어 있다. 주택소유 및 자산보호법(HOEPA, Home Ownership and Equity Protection Act)'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 법안은 1994년 미국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제정된 법안으로,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대출에 대해 '약탈적 대출'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 결국 상환 능력이 안 되는 저소득 계층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시혜가 아닌 약탈적 행태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저소득 계층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시혜로 여기고 있다.

미국이 저소득 계층에게 돈을 빌려주는 걸 약탈로 규정하는 이유는, 금융이 의무와 책임이 강조되는 사적 계약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은행 문턱 낮추는 걸 강조하며 금융과 복지를 혼동한다.

저소득층에게 카드발급과 신용 공급하는 사회

이러한 사회적 감성은 저소득층에게 금융권의 카드 발급과 신용 공급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 결과 소득이 대단히 낮은 사람들조차 신용카드 여러 장을 소지한다. 그 신용카드에는 카드론과 같은 고금리 대출 상품이 숨어 있다. 카드론은 손쉬운 대출로 전화 한통으로 간단히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20% 이상의 고금리 탓에 저소득층이 한 번 카드론을 이용하면 재무구조는 바로 '악성'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저축은행이나 카드론, 심지어 보험사의 약관 대출 등이 저소득층에게 신용을 공급에 대한 사회적 비판의식은 높지 않다. 여기에 이자율이 높은 것조차 저소득층의 신용도에 비해 어쩔 수 없다는 인식까지 전제되어 있다. 금융과 복지의 혼동은 과잉 대출의 근원적 원인이다. 

이런 사회의 의식구조는 무책임한 대출을 내준 금융권에 면죄부를 주고, 가난한 이들의 눈물겨운 고금리 대출에는 서슬퍼런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게 만든다. 바로 신용불량 제도이다. 2005년 이후 '신용불량'이 '금융채무 불이행'으로 대체되고, 다시 '신용유의자'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연체 정보를 등록해 온갖 불이익과 채권 추심이라는 정서적 고통을 가하는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왜 무책임한 대출을 행한 금융사를 비난하지 않고, 가난한 채무자만 나무라는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복지에 기대고 싶어도 그물망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여기에 금융권이 마치 자선이라도 베풀듯이 이자율 30%가 넘는 대출을 공급해, 가난한 사람을 연체자로 만들어 매일매일 추심 전화와 방문을 한다. 기어기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잔인한 사회에서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탐욕의 극치를 달리는 금융을 용서하고 복지 대신 빚을 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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