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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살림살이 좀 어떠십니까? 정부는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서민은 더 살기 어려워 졌습니다. 금융권은 탐욕의 극치를 보이고 있고, 은행의 은밀한 돈벌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추노'에 가까운 채권 양수시장은 또 어떻습니까. <제윤경의 희망살림>은 이런 문제들은 짚어보고, 경제 뉴스를 제대로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서민 중심의 '희망적' 경제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12년 11월 1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7대 정책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12년 11월 1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7대 정책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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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때 새누리당은 채무자들의 눈과 귀를 확 끌어당기는 정책을 많이 쏟아냈다. 거리마다 빨간색 공약 현수막이 나부끼며 서민들이 원하는 무엇이든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고교 무상교육시대부터 대형마트 규제, 은행 수수료 인하까지 작은 정책 하나하나 세심하게 현수막에 담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우선 공약 중 하나인 국민행복기금도 마찬가지다. 이 공약은 대선 때 '신용유의자 부채 50~70% 감면' '국민행복기금 18조 원' 등의 문구로 현수막에 담겨 골목마다 펄럭였다. 정책 선거 홍보 과정에서는 다중 채무자 322만 명이 이 공약의 혜택을 볼 것이라 약속했다.

그러나 18조 원이라던 국민행복기금은 10분의 1로 다이어트된 채 3월 25일 출범계획이 발표되었다. 이런 저런 공약이 현실성 부족 이유로 벌써 폐기처분된 상황. 국민행복기금은 뼈대만이라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니 박수를 쳐야 할까?

하지만 채무자들이 대선 이후 "새정부의 공약을 믿고 빚을 안 갚고 버틴다"고 야단 맞으며 기다린 정책 치고는 허탈하기 그지없는 내용이다.

새정부, 금융권보다 힘이 약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생문제를 꼼꼼히 챙기는 민생 대통령으로 성공하겠다며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의지를 보였다. 그 산물이 바로 국민행복기금 공약이다. 그런데 그 출범을 알리는 3월 말, 심하게 다이어트하다 거식증 걸리기 일보직전으로 보이는 결과물이 나왔다.

3월 25일 금융위의 발표 내용을 보자. 기금의 규모는 애초 18조 원이라는 약속과 달리, 1조5000억 원, 감면 대상은 322만 명에서 33만 명으로 모든 게 약 10분의1 수준으로 줄었다. 물론 이 정도 규모로 시작해 점차 기금을 확대해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발표 내용에는 그러한 장기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애초 공약 설계부터 내용이 과장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공약 후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금융권과 보수 언론이다. 선거 이후 금융권과 보수 언론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기금에 대해 끊임없이 공격했다.

그럴듯한 논리로 여론을 장악하는 방식이었다. 채무자들이 정부의 구제 프로그램에 기대 '채무 버티기'를 하고 있다고 '여론 폭탄'을 만들었다. 또는 성실하게 빚 갚는 사람들을 자극하면서 구제 프로그램의 대상자에 비해 손해 보는 감정, 혹은 증오심까지 자극했다. 속된 말로 "너는 지금 바보같이 빚 갚고 있지? 저들은 빚 떼먹고 있는데..."라는 식이었다.

보수 경제학자들이 좋아하는 통계도 온데 간데 없다. 오로지 천만 명 중 한 명이라도 빚 떼먹으려 했다면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다. 왜 이럴까?

금융권은 채무자 구제를 대단히 싫어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채무자들이 고통스러울수록 돈 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자세히 다루겠다. 금융권의 탐욕은 정부의 어떤 채무자 구제 프로그램도 허용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고 여론 몰이에서 자신들의 탐욕을 그대로 드러낼 수도 없다.

한 달 넘게 '금융권 관계자의 말'은 온갖 매체를 통해 "채무 버티기" "돈 안갚고 먹튀" 등 자극적인 언어로 채무자를 모욕했다. 그리고 이는 구제 프로그램을 무력화하는데 효과가 있었다. 권력의 힘이 가장 크게 집중된다는 정권 출범 초기의 최우선 공약마저 10분의1 토막으로 후퇴했다. 금융권과 언론의 힘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구제 하지 말고 쥐어짜는 것이 정답인가?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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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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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과 보수 언론이 제기하는 것처럼 채무 구제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 채무자들은 어떤 불이익도 없이 구제될까? 정말 성실하게 빚 갚은 사람들은 억울해질까? 이것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채무자들은 연체를 가장 두려워 한다. 연체가 되면 우리나라의 허술한 법 체계 속에서 견디기 힘든 채권 추심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국민행복기금은 6개월 이상 지독한 연체를 견뎌야만 대상이 된다. 의도적으로 안 갚는 게 아니라, 못 갚는 것이다. 6개월 빚 독촉? '그까이꺼' 원금 깎아 주는데 버틸 만하지 않을까라는 정서 또한 보편적이다.

그러나 빚 독촉은 당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안다. 자존감이 무너지고 패배감과 수치심을 유발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임금이 체불돼 부족한 생계비 탓에 7개 기관의 빚을 갖고 있는 어느 가정이 있다. 이 가정에게 한 달 중 무려 25%가 결제일이다. 그 중 몇 개가 연체되면 한달 내내 채무 독촉에 시달려야 한다.

연체 기간이 길어지기라도 하면 하루에 수십 통 걸려 오는 빚 독촉 전화, 인격적으로 모욕감이 드는 추심원의 말에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경우에 따라서 아이가 등교하는 시간에 추심원과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그 가정은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대부업 대출까지 일으킨 상태이다.

이렇게 무서운 빚 독촉을 견뎌낼 정도면 못 갚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당수가 빚 몇푼 탕감받겠다고 아이 앞에서의 수치심과 직장으로 걸려오는 빚 독촉 전화(일부로 대표번호로 걸어 '00카드사에서 김아무개씨 찾습니다'라고 전화하기도 함)를 감수할 만큼 뻔뻔할까? 구체적인 통계 수치는 없으나 높은 자살율에 빚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성실 채무자들이 국민행복기금으로 채무 구제를 받는 사람들에 대해 억울한 심정을 가질 이유도 없다. 채무 구제를 받는 사람들은 향후 신용 사용에서 분명한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하나 만들 수 없음은 기본이고, 사업을 시작하는 등의 경제 활동 전반에 제약이 따른다.

소비자들이 빚을 지고 성실하게 갚는 이유는, 돈을 빌려준 채권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용소비자 스스로 우량 신용 등급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것을 포기했을 때의 불이익은 신용사회에서 상상 이상의 불편을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이익이 이미 채무 구제 프로그램안에 고스란히 전제되어 있는데도, 성실 채무자와 비교해 혜택만을 챙기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채무 구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흠집내기 위함이다.

채무자 구제는 채무 사실 백지화가 아니다. 더 쥐어 짤 수 없을 정도로 한계 상황에 내몰린 채무자들에게 새출발의 기회를 주는 신용 안전망이다. 이러한 게 없다면 우리 사회는 절대 빚을 권해선 안 된다. 신용카드 발급도 일반 소비자에게 대단히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무분별하게 신용을 공급한다.

한쪽에서는 신용을 사용하지 않으면 신용등급에서도 차별받을 것처럼 과도한 신용마케팅을 벌이지만, 또다른 한쪽에서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상환이 어려워진 소비자들을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도덕적인 비난까지 가한다. 이쯤되면 우리나라의 금융은 채무자 앞에서 거의 깡패나 다름없다.

새출발 기회 확대해야 사회적 비용 줄어든다

대개 채무자들은 빚 독촉의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더 높은 금리의 대출을 일으켜 기존의 빚을 갚는다. 결국 빚 독촉으로 인해 빚이 악성화 되면서 부채 규모가 더 커지고, 상환 가능성은 더욱 어렵게 꼬인다.

만약 사회적으로 채무자의 새출발을 위한 구제 프로그램이 다양하다면 이러한 빚의 악성화는 막을 수 있다. 이는 사회적 비용을 크게 낮출 뿐만 아니라 채무자가 빚의 고통속에서 사회적으로 퇴출되는 것을 막는다.

또 채권자들은 돈을 쉽게 회수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좀 더 책임있는 대출을 하게 만든다. 선진국의 신용공급은 이렇게 채무자들의 새출발을 지원하고 약탈적 대출을 사전에 차단하는 다양한 채무 구제 프로그램이 전제되어 있다.

국민행복기금만으로 선진 금융환경을 만들 수 없다. 법원의 개인 파산, 개인 회생 제도의 개선이 함께 거론되어야 한다. 국민행복기금 대상자 중에는 이미 채무 재조정으로도 새출발이 불가능한 사람도 상당수다. 이들에게는 채무 조정이 아니라 개인 파산과 면책이 필요하다. 따라서 국민행복기금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채무 구제를 위한 법적, 공적 프로그램 모두를 확대시켜야 한다.

두 번째는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채무자들은 심리적으로도 크게 위축되어 있고 심한 패배감과 공포심에 휩싸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스로 자신의 신용회복을 위한 객관적인 판단과 구체적인 실천이 어렵다.

서울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금융복지상담센터와 연계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복지상담은 전문가에 의해 채무자의 전반적인 재무 상태를 객관적으로 분석한 뒤 분석 결과를 토대로 채무 상환 가능성을 판단한다.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법원의 파산 회생 면책 프로그램을 이용하도록 돕고, 부분적인 채무 조정으로 가능한 채무자들은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재조정을 해줄 수 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의도적으로 부채 상환을 회피하는 사람은 구제 프로그램에서 배제시키게 된다. 또한 소비 구조를 전반적으로 개선하고 복지 시스템 연결을 통해 채무자의 안정적인 새출발 및 자활을 지원한다.

퇴로가 없는 사회는 불안과 공포가 만연하고 그에 따라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도전하는 경제 활력을 기대할 수 없다. 법원의 파산 면책과 같은 법적 채무 조정과 국민행복기금과 같은 공적 채무 조정 프로그램, 서울시의 금융복지상담센터와 같은 맞춤형 새출발 지원프로그램 등이 활성화 되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한 번의 실수로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 비정한 정글사회가 될 것이다.


태그:#국민행복 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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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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