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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손을 놀렸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제꼈습니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청경채며 산 속 묵정밭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머위 그리고 산에서 조금, 밭에서 조금씩 뜯어 모은 취나물로 배달 꾸러미를 만들었습니다.

거기다가 밭 가장자리 쑥으로 만든 쑥떡과 또 얼마 전 아궁이에 불을 지펴 푹 삶은 메주콩으로 띄운 청국장까지 끼워 넣어 만원짜리 배달 바구니를 꾸렸습니다. 보통 2만원짜리 야채 배달꾸러미를 만들어 내다 팔고 있는데, 그만한 값어치를 하기에는 아직 야채가 충분치 않습니다. 내가 재배하고 있는 야채들 대부분이 노지에서 자라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상추며 쑥갓,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몇 몇 쌈채들은 이제 겨우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고, 케일이며 브로콜리는 한창 모종을 옮겨 심고 있기에 아마 5월 중순쯤 돼야 표고 버섯을 비롯한 풍성한 야채 꾸러미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벌써 오후 2시가 훌쩍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만원짜리라서 빨리 끝냈네."

아내 말대로 오늘은 일찌감치 일을 마쳤습니다. 2만원짜리 배달 꾸러미를 꾸릴 때는 보통 이른 아침부터 일손을 놀려 오후 4시가 넘어서 끝나곤 했습니다.

배달 꾸러미를 자동차에 싣고 대전으로 출발하기 전에 심한 바람이 걱정 돼 비닐하우스를 둘러봤습니다. 한쪽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땅에 박힌 버팀목, 대나무가 부러져 반쯤 쓰러져 있었습니다. 쓰러진 것은 다시 세우면 됩니다.

비닐하우스가 그러거나 말거나 하루 종일 배달 꾸러미 준비하랴 고생한 아내에게 빠진 앞니를 '씨~익' 보여줬습니다.

"영구는 읎다. 이빨이…."
"으이그, 사진 한방 찍어 줄까?"
"됐네 이 사람아."

아내는 못 봐주겠다며 마스크를 꺼내옵니다. 나는 내 모습을 볼 수 없어 모르겠지만 휑한 앞니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줄 것이라 합니다.

1만원짜리 여덟 개의 배달꾸러미를 만들어 놓고 거기다 어머니 것과 아는 치과의사와 가깝게 지내는 후배 것 그리고 또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그냥 줄 것까지 모두 12개의 배달 꾸러미를 차에 실었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배달의 기수'처럼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부쩍 들어갑니다. 올 들어 첫 배달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그럽니다. 그거 죽도록 일해서 장거리 배달 해봤자 자동차 기름 값이나 빠지겠냐고요. 하지만 나는 누가 뭐라 해도 얼빠진 놈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농약이나 화학비료에, 기계 따위에 의지하지 않고 순전히 하늘과 땅과 어울려 땀으로 만들어낸 먹을거리들, 이만큼한 창조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잘 아는 치과에 들러 뻥 뚫린 앞니를 임시로 끼워 놓고 본격적으로 배달을 시작할까? 하다가 먼저 엄니 집으로 향했습니다. 농사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엄니를 찾아 뵌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매달 얼마간의 생활비를 드리고 있는데 그것마저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락에 푹 빠져 있는 엄니는 옆으로 바싹 다가가도 모릅니다.

"저 왔슈… 저 왔다니께유!"
"어이구, 셋째구나! 언제 왔어?"
"이거 쭘 가져 왔슈."

대파와 쪽파 등 몇 가지 더 첨가한 배달꾸러미를 내려놓자 엄니는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배달길이 바쁜 내 발길을 붙잡습니다.

"조밥 했는디, 고거 줌 먹구가라."
"어이구, 바뻐유."
"근디 이빨이 왜 그려?"
"별거 아뉴, 치과에 갈뀨."

팔순을 앞둔 엄니 걱정거리를 덜어주기 위해 서둘려 발길을 돌립니다.

"어이구 손도 시꺼멓고 다 갈라졌네, 잠깐만 기달려 봐."
"배달 갈띠가 한두 군데가 아뉴, 빨랑 가봐야 혀, 그리구 이거 엄니 생활비, 저번 달에 방송 일 안 했거든, 농사짓는다구."
"어이구 뭐하루 가져왔어…. 농사짓는다구 힘든디…."

아내는 몇 푼 안 되는 생활비를 쪼개 엄니에게 매달 꼬박 꼬박 용돈을 보내고 있는데 작년 이맘때였습니다. 엄니는 아내 앞에 돈다발 두 개, 200만원을 턱하니 내밀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에게 얘기하지 말하고 덧붙이면서요. 아내는 받을 수 없다며 되돌려 드렸지만 엄니는 돈다발을 아내 손에 꼭 쥐어 줬습니다.

"얘들 통장 만들어줘라, 이 담에 커서 쓰게…."

엄니에게는 큰돈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큰돈이었습니다. 그것은 돈의 가치로 따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엄니는 단지 돈만 주신 게 아니었습니다.

자식새끼라 해도 엄니는 빈손으로 보내는 법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명태보다 작고 노가리 보다 큰, 그렇다고 과메기도 아닌, 명태와 노가리 중간쯤 크기의 바싹 말린 생선을 내놓으셨습니다. 얼마 전 동네 노인들과 함께 남해 쪽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오면서 자식새끼들 주겠다고 사 오신 거랍니다.

엄니의 봄나들이 선물을 챙겨들고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 좋은 '김 선생'은 올해도 변함없이 주변 사람들을 소개해 줬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네는 내게 오히려 더 고맙다는 따듯한 말을 안겨주었습니다.

나는 '고맙다'는 그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야채 배달을 다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고맙다'는 말은 '좋아 한다'는 말입니다. '반갑다'는 말입니다. '기분 좋다'는 말입니다. '뭔가를 주고 싶다'는 말입니다. '나누고 싶다'는 말입니다. '사랑 한다'는 말입니다. 그 어떤 기분 좋은 말들은 엎어치나 둘러치나 다 그게 그 말 같습니다.

시골 생활을 꿈꾸고 있는 착한 여동생은 배달 꾸러미를 풀어 보다가 셋째 오빠의 휑한 앞니를 보더니 잠시 눈시울을 붉힙니다.

"그래두 성한 이가 더 많으니께 걱정 하지 마라."
"어이그 잘났어, 나두 요즘 흙 만지는데, 아주 좋더라구."
"내가 케일하구 이것저것 모종 좀 갖다 줄까? 아니, 아니지. 그러다가 고객 하나 줄겠다."

아파트 몇 군데를 더 들렀다가 마지막으로 후배에게 찾아갔습니다. 아주 가깝게 지냈던 후배였는데 최근 몇 년 동안은 어쩌다 안부 인사를 주고 받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도시 한복판의 아파트와 아파트, 도로와 도로 사이를 뚫고 찾아 가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종합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후배는 우리 집 아이들을 위해 미리 사놓은 제과점 빵과 학습지 한 꾸러미를 건네주었습니다.

차 한 잔을 마시고 후배네 학원에서 나오자 아는 치과 문 닫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배달 삼매경'에 빠져 치과 가는 일을 제껴 버렸던 것입니다. 당분간 휑한 앞니 그대로 생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반 치과에서 보다 턱없이 적은 비용으로 치료해 주는 아는 치과의사에게 건네줄 한 개의 배달 꾸러미가 남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걸 글 쓰는 선배네 집에 건네줬습니다. 그렇잖아도 조만간 케일과 오이 모종을 들고 찾아 가려던 선배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가벼웠습니다. 오늘은 10만원 벌이도 못했지만 엄청난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오늘 배달 다녀온 것을 밭 갈고 씨 뿌리고 수확하고 포장하고 배달하고 등등을 놓고 손익계산서를 따진다면 도무지 계산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신성한 노동의 대가를 돈으로만 환산한다면 그 순간 자본에 먹히고 말 것입니다. 자본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반갑게 만날 수 없습니다. 고맙게 만날 수 없습니다. 사는 게 별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집에 마악 도착했을 때 비로소 쓰러진 비닐하우스가 생각났습니다. 세상살이가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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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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