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우리나라 곳곳에서 볼수 있는 야생콩(돌콩).
ⓒ 정규화 교수 제공
나는 500평의 콩 농사를 짓고 있다. 하지만 내가 재배하고 있는 콩이 토종 콩인지 미국에서 건너온 유전자 조작 콩인지를 알 수가 없다. 콩의 원산지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콩 연구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의 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하는 내게 미국의 일리노이즈 대학 산하 '국립 대두(콩)연구소(NSRC)'에서 콩 병원균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남 여수에서 고집스럽게 우리 콩을 연구하고 있다는 콩 박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전남 여수로 지난 11일 달려갔다. 우리 콩 유전자 자원 확보에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콩박사 정규화(54·전남대학교 여수 캠퍼스 생명화학 공학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최근(2005~2006년) 일리노이즈 대학교에 자리한 미국의 '국립 대두 연구소((NSRC)'에 연구교수로 다녀오기도 했다.

"우리나라 콩 자급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 정규화(54·전남대학교 여수 캠퍼스 생명화학공학부) 교수.
ⓒ 송성영
밑도 끝도 없이 토종 콩에 대해 알고 싶다는 내게 그가 대뜸 묻는다.

"우리나라 콩 자급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정확히 모르겠는데요…."
"대충 얼마나 될 것 같아요?"
"아무리 적어도 한 20% 쯤 되지 않겠어요?"
"우리나라의 콩 자급률은 5% 수준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수입산이지요. 콩의 원산지이면서 콩 음식을 가장 많이 먹고 있는 우리나라에서의 콩 자급률이 그렇습니다."


25년 동안 콩을 연구해온 정규화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는 콩의 원조인 야생콩(돌콩)과 우리가 흔히 재배하고 있는 '메주콩'을 수집 연구해 오고 있다. 현재 그가 확보해 놓고 있는 야생콩만 750여 가지.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만큼 개인적으로 야생 콩 유전자원을 보유한 사람은 아주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농촌진흥청이 보유한 야생콩은 1100여 종류).

그가 수집한 야생콩은 완도에서부터 거제도에 이르기까지 주로 섬지역과 해안지방에서 채집한 순수한 우리의 야생콩들이다. 그는 메주콩 역시 300여 가지(조상 대대로 재배해 왔던 메주콩만을 수집했다고 한다)를 확보해 놓고 있다.

첫 번째 유혹 "경제적 도움 줄 테니 토종콩을 달라고?"

▲ 냉장고를 비롯해 연구실 곳곳에 보관하고 있는 야생콩 수집본들.
ⓒ 송성영
그런 그에게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 찾아왔다.

"미국의 국립 대두 연구소에 있을 때 그곳 책임자로 있는 넬슨교수에게서 요청이 있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돌콩을 제공해 달라는 것이었죠."

일리노이즈 대학의 넬슨(nelson) 교수는 미국 '국립 대두 연구센터'에서 종자를 관리하고 있는데, 미국 농무성(USDA)의 고위 관리직을 겸하고 있다고 한다. 콩에 관한 한 국제적인 권위자라 할 수 있는 넬슨 교수와 더불어 연구할 수 있다면 연구자로서의 입지를 높일 좋은 기회였다.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동안 정부로부터 단 한 푼의 연구비 보조 없이 순전히 자비를 들여 콩을 수집 연구해 왔던 정규화 교수였기에 큰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10여 년 동안 모아온 우리의 야생콩을 순순히 미국에 넘겨줄 수는 없었다.

"넬슨 교수에게 조건을 달았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돌콩(야생콩)을 제공 받으려면 먼저 우리 정부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고요. 그리고 우리 농림부에 물었습니다. 미국에서 돌콩을 요구하고 있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요. 우리 정부가 우리의 콩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 일로 대책회의를 열었는데, 아마 내가 알기에는 그동안 우리 정부에서 미국에 콩을 넘겨 줄 거냐 말 거냐 대책회의를 열었던 것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동안 우리 콩에 대해 무방비 상태였던 것이죠. 정부에서의 반응요? 당연히 넘겨주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토종콩, 미국에서 구하는 것이 빠릅니다"

▲ 한국의 어떤 콩을 언제 누구로 부터 수집했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미국 농무성 자료를 설명하고 있는 정규화 교수.
ⓒ 송성영
그게 끝이었다. 정부에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놓지 않았다. 더는 아무런 조치도 내리지 않은 것은 미국에 우리의 귀중한 자원인 야생콩을 넘겨줘도 상관없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조치였다. 그동안 그렇게 수천 종의 우리의 귀중한 유전자원인 콩들이 속수무책으로 미국으로 넘어갔던 것이다.

"우리의 토종 콩을 구하려면 이제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구하는 것이 훨씬 더 빠릅니다. 세계 최대 콩 종자 보유국인 미국의 농무성(USDA)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1만7000여 종의 대두(콩)를 전 세계에서 수집해 놓고 있습니다. 이 중에 3725 종이 1924년부터 한국에서 가져간 것이고, 그 나머지, 대부분의 콩이 중국에서 수집한 것입니다.

야생 콩은 미국이 1116종을 확보해 놓고 있는데, 이 중 350종이 한국에서 넘어간 것이고 그 나머지는 거의 다 중국에서 넘어간 것이지요. 미국에 넘어간 우리 콩이 중국에 비해 그 수가 적다고 할 수 있지만 중국의 면적과 비교해 보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닙니다."


세계 최대 콩 종자 보유국임에도 미국은 여전히 아흔아홉 가진 놈이 백 개를 채우려고 욕심을 부리듯 다른 나라의 콩 종자에 욕심을 부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야생콩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 미국 일리노이즈 근교에 있는 콩밭.
ⓒ 정규화 교수 제공
"지금 미국은 콩 농사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무엇보다 콩잎이 누렇게 변하는 녹병으로 골치를 썩이고 있죠. 녹병 때문에 수확량이 줄어드니까 그 녹병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는데 바로 우리의 돌콩 자원이 필요했던 것이죠."

콩 재배 시 녹병뿐만 아니라 많은 경제적 피해를 주는 다양한 병해충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각각의 병해충에 대한 저항성 품종을 개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대두 자체에서만 그 형질을 얻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더욱더 다양한 형질을 보유한 것으로 짐작되는 야생콩을 그 소재로 활용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야생콩을 이용해 개량한 대두육종의 성과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야생콩 유용 유전자원을 대두의 육종 소재로 이용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여전히 한국의 야생콩에 눈독 들이는 까닭

이러한 시점에서 다양한 야생콩 유전자원을 도입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생콩 최대 자원국인 중국에서는 이미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오래전부터 법적으로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자유롭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든 야생 콩을 구입해 갈 수 있다. 아무런 제약이 없다.

거기다가 한국의 야생콩에는 병해충 저항성 유전자를 보유한 종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야생콩 종자가 많은 한국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두(콩) 자원은 이미 거의 다 미국에 넘어갔고, 돌콩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돌콩도 언제 다 미국에 넘어갈지 모릅니다. 대두가 그러했듯이 돌콩도 우리가 우리 손으로 직접 넘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우리 콩을 살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대부분 개인적으로 넘겨주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나는 소중한 돌콩 자원을 미국에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수집한 것인데요…. 학생들과 함께 가시 덤풀을 헤쳐 가며 10여 년에 걸쳐 수집한 것인데, 단순히 돈에 팔릴 수는 없는 일이죠. 더욱이 우리나라의 귀한 자원을 남겨야 하는 것인데…."


"소중한 돌콩 자원 넘기지 않을 것"

▲ 정규화 교수가 수집한 야생콩의 한 종류.그는 750여가지의 야생콩을 수집해 놓고 있다.
ⓒ 송성영
우리의 야생콩이 미국에 넘어가 유전자원으로 이용된다면 미국에 지적소유권이 생겨 더 이상 그 야생콩은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된다.

그 야생콩이 필요할 때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구입해야 한다. 국내에 그 야생콩이 널려 있다 하여도 우리 마음대로 그 돌콩을 이용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규화 교수가 우리의 돌콩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정규화 교수의 승용차는 누구나 적용될 수 있는 보험에 들어 있다고 한다. 콩을 수집하는 학생들도 자신의 승용차를 종종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안지역은 물론이고 주로 섬에 많이 다니기 때문에 수집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파도가 높으면 발이 묶이게 되고, 또 아무 때나 수집하는 것도 아닙니다."

야생 콩이 덜 익거나 깍지가 터져버리면 소용없다. 적당히 여물어 터지기 전까지, 10월 말에서 11월 중순 사이, 약 2주간에 걸쳐 수집을 끝내야 한다. 다양한 형질을 가진 야생콩의 계통을 확보하기 위해 5킬로미터 반경 안에서 단 한 종만 수집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200개 섬을 목표로 수집을 하고 있는데 빈손으로 되돌아오는 일도 많았다.

돌콩이나 메주콩을 구해 오면 어떤 특성이 있는 콩인지를 알기 위해 다시 파종을 해서 잎이 나오면 그 잎을 잘라 유전자를 검사한다. 그리고 각 계통들이 가지는 특성을 파악하여 육종소재로서의 가치를 평가한다.

"예를 들면 바닷가에서 채집한 돌콩은 당연히 염분이 많은 데서 잘 자랍니다. 그렇다면 그 콩은 바닷가에서 재배하기 유리한 형질을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 돌콩의 유전자로 염분에 강한 대두를 개량해 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개량한 대두는 순전히 우리 것이 됩니다. 우리가 지적소유권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수집한 수백 종의 돌콩과 메주콩을 재배해야 한다.

야생콩, 대책 없이 미국으로... '콩가루' 한국 정부

"작년에 내가 가지고 있는 돌콩을 재배해 달라고 연구기관을 찾아다니며 요청했는데 나서는 데가 없었습니다. 당장 돈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재배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일이니까 그렇죠. 결국 내가 직접 부지를 마련해 재배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이 연구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독지가가 있어서 올해 돌콩 500가지와 메주콩 300가지를 재배하여 생육특성을 조사할 예정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야생콩은 알게 모르게 아무런 대책 없이 미국에 넘어가고 있다. 훗날 그 야생 콩이 미국에 넘어가 '식량 무기'로 변신해 우리의 식탁을 점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어디 '콩'뿐이겠는가?

덧붙이는 글 | 정부는 작년 11월 대구에 농업진흥청 영남농업연구소 산하 콩 연구센타를 세우는 등 콩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콩의 원산지이면서 콩 음식을 가장 많이 먹는 우리나라에서의 콩 연구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태그:#정규화 교수,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 #생명화학 공학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