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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장맛비가 줄기차게 내렸습니다. 한쪽 면이 형편없이 기울어진 사랑채 옆 개울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갔습니다. 대문 없는 대문 앞 우체통에 올해도 여지없이 둥지를 튼 딱새네 가족들이 걱정될 정도로 장대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하지만 매년 그래왔듯이 기울어진 사랑채뿐만 아니라 얼마 전 알을 까고 나온 딱새네 우체통 집 또한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어제는 아주 작은 딱새 새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벌써 날개 짓까지 했습니다.

4년째 우리 집 우체통에 세 들어 사는 딱새네 가족들을 다시 소개합니다. 어느 늦은 봄날, '딱새네 가족을 소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딱새네 가족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떤 희망으로 딱새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기사를 통해 딱새는 끝내 날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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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지난 6월 초순, 끝내 딱새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다시 돌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습니다. 하루에 한 개씩 다섯 개의 알을 낳았고 3주 정도 품어 고만고만한 아기 새들을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부화하지 못한 한 개의 알을 제외하고 모두가 알을 깨고 나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아내에게 그림을 배우러 오는 아이들의 소란 때문에 혹여 부화하지 못할까 금줄까지 쳐놓고, 또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녀석이 해치지 않을까, 감시의 눈초리로 노심초사했습니다.

▲ 알을 까고 갓 나온 새끼 딱새
ⓒ 송성영
예전에 올렸던 딱새 기사를 보고 심심찮게 날아온 이러저러한 방송 출연 요청을 다 따돌렸습니다. 그러고는 얌체처럼 알을 낳은 것에서부터 먹이 달라고 입을 쩍쩍 벌리고 있는 딱새들의 모습을 캠코더로 독식(?) 촬영해 두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듯 그렇게 딱새 새끼들의 성장기를 캠코더에 담아 놓았습니다.

우리 집 식구들은 이제 캠코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제가 틈만 나면 캠코더를 들이대는 바람에 서투른 단편영화 찍기에도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썩 잘합니다. 딱새네 가족들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았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캠코더에 익숙해져서인지 캠코더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저는 올해 찾아온 딱새네 가족 역시 맨 처음 우리 집을 찾아온 그 딱새네 가족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딱새네 집 코앞에 캠코더를 설치해 놓아도 끄떡없이 촬영에 잘 응해줍니다.

이전 기사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딱새네 집인 우체통은 버려진 벽시계를 재활용한 것이었습니다. 벽시계로 만든 '우체통 딱새네 집'은 촬영하는 데 있어서 아주 유용합니다. 벽시계 뒷면을 보면 건전지를 넣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곳을 열어 놓고 촬영하면 어미 딱새가 정면에서 날아와 먹이를 주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딱새를 촬영해 두긴 했지만 딱새의 생활에 대해서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다져 먹고 틈나는 대로 딱새 가족들을 관찰했습니다.

지난 한 달여 동안 관찰한 결과, 전에 알지 못했던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딱새는 하루에 한 개씩의 알을 낳았고 암컷만이 우체통 집을 들락거렸습니다. 이때까지 수컷은 쉽게 목격되지 않았습니다. 암컷은 다섯 개 모두를 다 낳은 다음부터 한꺼번에 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 아기 새들이 알을 까고 나오면 암수가 번갈아 가며 먹이를 날아다 줍니다.
ⓒ 송성영
헌데 새끼들이 알을 까고 나오자 난데없이 수컷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컷은 암컷과 번갈아가며 부지런히 새끼들에게 먹이를 날아다 줍니다. 딱새에게는 아주 낯선 물체인 캠코더를 설치해 놓고 보통 10분 정도 지나면 여지없이 날아옵니다.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둥지를 손질하고, 새끼들의 배설물을 물고서 다시 먹이를 구하러 둥지를 떠납니다.

딱새들은 우리 식구들을 알고 있는 것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내가 지금의 딱새들이 예전에 그 딱새네 가족이라고 여기고 있듯이 아마 딱새들 역시 우리 식구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딱새네 집은 키가 작은 우리 집 아이들조차 손이 쉽게 닿는 아주 낮은 곳에 있습니다. 알을 품기 시작할 때 나는 촬영을 위해 우체통 앞을 기웃거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미 딱새는 두 눈만 빼꼼 내밀고 있을 뿐 둥지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식구들의 마음먹기에 따라서 언제 어느 때고 불행이 닥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을 품어 새끼를 부화시키고 먹이를 날아다 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식구를 믿고 있다는 것일 겝니다.

ⓒ 송성영
아니, 우리 식구뿐만 아니라 딱새는 이미 세상 모든 사람들을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딱새 새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촬영을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새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 이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고요.

"우리는 당신들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들을 해치지 않으니 당신들 또한 우리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세상 모든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딱새에게 있어서 우리 가족은 두려운 존재일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딱새보다도 힘이 세고 욕심 많고 파괴적이기 때문입니다.

▲ 아직은 둥지 신세를 짓고 있지만 조만간 좀더 튼실한 날개로 둥지를 떠날 것입니다.
ⓒ 송성영
나는 가끔씩 딱새를 통해 내 모습을 보곤 합니다. 내가 마음이 뒤틀려 있으면 딱새들은 내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불안한 날개 짓으로 둥지를 떠납니다. 내 마음 상태가 편하면 딱새는 내가 둥지 속에 손을 넣지 않는 이상 떠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딱새들이 나를, 우리 가족을 좀더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 가족은 분명 좀더 행복한 길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가진 것에 대해, 앞날에 대해, 두려움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딱새 새끼들은 어설픈 날개 짓으로 둥지를 떠날 것입니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가 되면 힘찬 날개 짓으로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내가, 우리 가족들이 딱새에게 나쁜 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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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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