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제가 쓴 기사 '스위스, 토고 격파…G조 1위 올라'에 아이디 '금도끼'님이 올린 댓글입니다.

▲ 아이디 '금도끼'가 올린 댓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은 확실히 선진축구로 가는 과도기에 있는 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 이유는,

1. 과거 선진축구를 따라 하기만 하며 실제 경기 내용은 지배하면서 항상 패했던 축구를 했던 것에 반해, 이번에는 실제 좀 이상한 축구를 하면서 후반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것

2. 과거 몇 달간 합숙을 하면서 월드컵준비를 했던 것에 반해, 이번에는 합숙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고, 비록 흥행 없는 K League에도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
선수들의 기술과 공간을 확보하는 능력만 확보된다면 이제 좋은 감독의 전술 하에 실로 전술적인 플레이를 펼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걸 직감한다.


이 글에 대한 축구팬들의 의견은 서로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실제 좀 이상한 축구를 하면서…'라는 대목은 적지 않은 축구팬이 동감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금도끼'님은 계속 몰리다가도 한두 번 잡은 기회에 골을 넣고 이기거나 비기는 최근 한국 축구의 흐름을 '좀 이상한 축구'라고 표현한 듯 합니다.

한국이 구사하는 '좀 이상한 축구'는 뒤집어 말하면 골 결정력이 높아졌다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요. 1960~70년대 한국 축구와 최근의 한국 축구를 견줘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71년 9월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는 1972년 뮌헨올림픽 아시아 동부지역 예선전이 벌어졌습니다. 1위 팀에만 본선 티켓을 주는 동부지역 예선에는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자유중국(대만), 필리핀 등 5개국이 출전했습니다.

모두 1968년 멕시코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전 경기 골득실차를 따질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인 한국과 일본이 다시 올림픽 출전권을 다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예선 첫날 말레이시아가 일본을 3-0으로 물리치면서 예선 판도가 크게 흔들립니다.

경기는 지배하고도 골은 못 넣는 축구에서

한국은 예선 첫 경기에서 말레이시아와 맞붙었습니다. 한국은 초반부터 말레이시아를 거세게 몰아붙였으나 골은 터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후반 초반 오른쪽 측면이 뚫리면서 긴 크로스가 올라 왔고, 말레이시아의 스트라이커 시에드 아마드는 한국의 중앙수비수 김호, 김정남 사이에서 껑충 뛰어 올라 머리로 결승골을 터뜨렸습니다.

한국은 30개가 넘는 슛을 날리며 전후반 내내 말레이시아 골문을 두드렸지만 소득이 없었습니다. 한국은 이후 필리핀을 6-0, 일본을 2-1, 자유중국을 8-0으로 물리쳤으나 '사후약방문'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전승을 거두고 자국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진출했습니다. 한국-말레이시아전은 '경기를 지배하고도 진' 대표적인 사례로 이후 오랫동안 축구팬들의 입을 맴돌았습니다.

4년 전 한국을 따돌리고 멕시코 올림픽 본선에 오른 일본은 아시아 나라로는 처음으로 메달(동)을 땄고, 한국을 제치고 뮌헨 올림픽 본선에 나선 말레이시아는 조별리그에서 미국을 3-0으로 꺾고 첫 올림픽 승리 기록을 남겼습니다.

한국으로서는 분통이 터지는 노릇이었지만 경기를 지배하고도 이기지 못하는 한국 축구의 한계였습니다. 그 같은 축구는 그 뒤에도 계속됩니다.

1973년 11월 서울에서 벌어진 서독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혼성지역 최종예선 2차전에서도 한국은 호주를 맞아 전반 2-1로 앞서는 등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고도 2-2로 비겨 시드니에서 열린 0-0 무승부까지 더해 2무승부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3차전(홍콩)까지 가게 됐습니다.

한국은 서울 홈경기는 물론이고 시드니 원정에서도 차범근, 김재한 등의 활약으로 호주에 밀리지 않는 경기를 했습니다. 지배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원정경기라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절대 뒤지지 않는 경기였습니다.

▲ 지난 19일 프랑스전에서 박지성이 동점골을 터뜨린 장면
ⓒ 연합뉴스
그러나 결국 3차전에서 0-1로 져 본선 티켓을 호주에 넘겨줬습니다. 호주는 그 뒤 32년 만에 이번 독일월드컵에 나서 있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이스라엘에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은 이란에 본선 티켓을 내줬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 한국은 불참하지만 그해 3월 벌어진 축구 지역예선에서 말레이시아에 또 다시 발목이 잡혔습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은 쿠웨이트가 한국을 제치고 본선에 나섰습니다.

1984년 LA 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에 이르면 신세대 팬들도 조금씩 기억이 날 만합니다. 한국은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뉴질랜드와 최종 예선 A조에 속했습니다.

한국은 직행티켓이 주어지는 조 1위를 놓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붙었는데 무려 9골을 주고 받는 공방전 끝에 4-5로 졌습니다. 마지막 남은 한 장의 티켓을 놓고 B조 2위인 이라크와 격돌했으나 0-1로 져 또 다시 올림픽 본선의 꿈이 무산됐습니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은 1954년 스위스 대회 이후 30여년, 올림픽은 1964년 도쿄 대회 이후 20여년간 세계무대에 얼굴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 기간 "내용에서는 앞서고, 스코어에서는 지는 경기"가 수없이 반복됐습니다. 그 시절의 '이상한 축구'였습니다.

경기에선 압도 당하고도 골을 넣는 축구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축구는 드디어 세계무대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경기는 지배하지만 이기지 못하는 그 시절의 '이상한 축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를 전후해 한국은 경기 내내 몰리면서도 종료 호루라기가 울릴 때면 이기거나 비겨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이상한 축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경기 상황과 결과가 이전과는 뒤바뀐 '이상한 축구'였습니다.

한국은 1999년 3월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친선 A매치에서 김도훈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겼습니다. 경기내용과 스코어는 크게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은 신판 '이상한 축구'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번 독일월드컵에서 비슷한 축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한국 축구는 경기도 지배하고 스코어에서도 앞서는 축구로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요.
2006-06-20 17:0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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