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대표팀이 다음달 6일 소집됩니다. 2007년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대만과의 예선 2차전에 대비해서입니다. 한국은 내년 7월 베트남·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가 함께 여는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예선 B조에 속해 있습니다. 지난 2월 22일 대표팀의 해외전지훈련 막바지에 치른 시리아 원정경기에서 2-1로 이겨 승점 3점을 안고 있습니다.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취임 후 첫 국제경기를 치르는 핌 페르베이크 감독
ⓒ 정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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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6일 대만전에 이어 9월 1일 이란과 홈경기가 예정돼 있는 등 11월 15일 이란전(원정경기)까지 모두 6차례 예선 경기를 치러야 합니다. B조에서 이란은 대만을 4-0으로 이겨 한국과 같은 승점 3점을 얻고 있고, 시리아는 한국에 1-2로 졌으나 대만을 4-0으로 물리쳐 1승1패, 대만은 2패로 조 최하위에 처져 있습니다. 오세아니아축구연맹(OFC)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로 이사 온 호주는 쿠웨이트, 레바논, 바레인과 D조에 들어 있는데 1차전에서 바레인을 3-1로 꺾었고 다음달 16일 쿠웨이트와 2차전을 갖습니다. 이번 대회 예선은 4개국씩 6개조로 나뉘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각조 상위 2개팀씩 12개팀이 공동개최국인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본선 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1956년, 1960년 제1, 2회 대회에서 연속 우승한 이후 정상에 오르지 못한 한국은 이제는 한 번쯤 대륙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컵을 안을 때가 됐습니다. 본선에 오르게 되면 한국으로서는 오랜만에 동남아 나라와 주요 국제대회 본선에서 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올드팬들은 물론 신세대 팬들에게도 동남아 축구는 갖가지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태국] 1966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남자농구 경기에서 난투극를 벌인 것을 비롯해 1960~70년대 두 나라는 여러 종목에서 이상하리만치 치열하게 맞붙었다. 물론 축구가 대표적이었다. 한국은 태국과 축구 역대 전적에서 30승7무6패로 훨씬 앞서 있다. 그러나 올드팬들에게는 한국이 고전했던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이겨도 1-0, 2-1 등 쉽게 이기지 못한 경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탈리아가 유럽의 거친 축구를 대표한다면 동남아시아에서는 태국이다. 실력은 한 수 아래였지만 결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두 나라의 최근 마지막 경기인 1998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 8강전에서 한국이 1-2로 진 게 대표적이다. 격렬하게 맞붙은 두 나라지만 국내 프로축구 초창기 태국 출신의 피아퐁은 한국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말레이시아] 1972년 뮌헨 올림픽,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지역예선에서 한국의 발목을 잡는 등 말레이시아는 1970년대 아시아축구의 강호로 군림했다. 특히 1971년 서울에서 벌어진 뮌헨올림픽 아시아 동부지역 예선에서는 한국에 1-0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것은 물론, 1968년 멕시코올림픽 동메달 멤버가 상당수 남아 있던 일본을 3-0으로 완파하는 실력을 자랑했다. 말레이시아는 버마(미얀마), 이란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해 뮌헨올림픽에 나섰으나 모로코에 0-6, 서독에 0-3으로 져 체면을 구긴 뒤 미국을 3-0으로 꺾어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수비수 소친온, 찬드란, 골키퍼 아르무감, 공격수 시에드 아마드, 류룬택 등이 올드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말레이시아 축구 전성기 선수들이다. 한국은 역대전적에서 24승12무8패로 앞서 있다. 1989년 6월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에서 3-0으로 이긴 이후 오랫동안 경기가 없다. [버마(미얀마)] 한국은 1968년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버마와 1-1로 비긴 뒤 추첨에서 져 3, 4위전으로 밀렸고 이스라엘과 0-0으로 비겨 공동 3위에 그쳤다. 당시 축구계로서는 심혈을 기울여 유치한 대회였고 우승에 대한 열망도 컸다. 그러나 그 무렵 버마의 축구실력은 개최국의 이점을 넘어설 정도였다. 버마는 결승에서 말레이시아를 4-0으로 가볍게 물리치고 우승했다.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공동우승을 차지한 한국팀의 김정남(왼쪽)이 버마팀 주장과 손을 맞들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한국축구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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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버마는 1967년 메르데카배대회, 1970년 아시아경기대회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공동우승을 하면서 팽팽한 접전을 이어갔다. 이런 가운데 버마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 출전해 소련과 멕시코에 각각 0-1로 졌으나 수단을 2-0으로 꺾는 등 선전했다. 그러나 버마 축구는 1970년대에 접어들며 급속히 무너졌다. 청소년축구를 집중 육성하면서 축구를 군사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이용한 한계였다. 1973년 9월 박대통령배대회 준결승에서 0-1로 졌을 때까지 한국은 역대전적에서 버마에 4승6무5패로 밀리고 있었다. 그러나 1973년 12월 킹스컵 준결승에서 박이천, 차범근의 골로 2-0으로 이긴 뒤 최근 경기인 2000년 4월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예선에서 4-0(설기현 2골,안효연 2골)으로 이길 때까지 9승1무의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몽몽틴, 몽에몽, 몽윈몽 등 총각을 뜻한다는 '몽'을 앞세운 이름들은 아직도 올드팬들의 귓가를 맴돌고 있을듯. [인도네시아] 메르데카배대회에서 9번, 킹스컵에서 7번 등 동남아시아대회의 단골 파트너였다. 32승4무2패의 역대전적이 말해주듯 동남아시아 국가 가운데 유독 한국에 약했다.
 1970년 메르데카컵 우승 후 귀국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청룡팀
ⓒ 대한축구협회 <한국축구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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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969년 11월 킹스컵 결승에서 정강지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겨 우승했는데 그 경기에 출전한 인도네시아 선수 가운데 물*지라는 선수가 있어 중계를 듣던 축구팬들은 포복절도했다. 2000년 10월 레바논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이동국의 해트트릭으로 한국이 3-0으로 이긴 게 최근 경기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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