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가 6회말 2사 만루에서 하마나카를 외야플라이로 잡은 뒤 왼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고 있다.
ⓒ 닛칸스포츠 홈페이지
5월 3일 밤 한국의 대전구장, 일본의 고시엔구장에서는 두 나라 프로야구에서 가장 나이 많은 투수가 역투에 역투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삼성 양준혁이 개인통산 300홈런을 터뜨린 게 이날 밤 최대 화제였습니다.

LG전에 선발 등판한 한화의 왼손 에이스 송진우는 1966년 2월 16일, 한신전에 먼저 마운드에 오른 요미우리의 왼손 기둥투수 구도 기미야스는 1963년 5월 5일 태어났으니 두 투수 모두 불혹의 나이를 넘어섰습니다.

구도는 만 43세를 이틀 앞두고 치른 라이벌전에서 6이닝 3피안타 3볼넷 7탈삼진 무실점의 나이를 믿기 어려운 투구내용으로 시즌 3승(무패)째를 거뒀습니다. 투구 수는 95개였습니다.

구도는 2-0으로 앞선 6회말 1사 만루의 최대 위기를 맞았으나 한신의 중심타자 이마나카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 데 이어 하마나카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 개인 통산 215승으로 달려갔습니다. 이날 밤 일본 프로야구팬들에게 가장 큰 뉴스였습니다.

구도가 두 타자를 처리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며 보여준 힘찬 동작은 20대 투수 못지않았습니다. 이마나카와의 승부에서는 계속 변화구를 구사하다 마지막 결정구만 빠른 공으로 하는 베테랑다운 투구내용을 보였습니다.

거의 같은 시간 송진우는 5이닝동안 7피안타 3볼넷 1탈삼진 3실점으로 역투한 뒤 6회부터 마운드를 중간계투진에 넘겼습니다. 투구수는 75개였습니다.5회초까지 2-3으로 뒤져 있던 한화 타선은 5회말 4점을 뽑아 6-3으로 전세를 뒤집어 송진우에게 승리투수의 기회를 안겼습니다.

그러나 LG가 7회초 한화 불펜진에서 3점을 빼앗아 6-6 동점을 만들면서 송진우의 승리기록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송진우는 올시즌 5차례 등판에서 2패만 안은 채 통산 193승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송진우와 구도가 같은 날 이런 결과를 얻었으니 아래와 같은 표현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3일 밤 한일 두 나라 노장투수의 명암이 엇갈렸다."

그렇지만 이런 표현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3일 밤 한일 두 나라 노장 투수의 역투가 빛났다."

 송진우 선수
ⓒ 남궁경상
송진우는 3일 현재 평균 자책점이 3.95입니다. 아주 좋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나쁜 수치도 아닙니다. 타선의 도움이 있었으면 지난 4월 한달동안 적어도 1승 이상은 할 수 있는 투구내용이었습니다.

송진우가 누구입니까. 야구팬 여러분은 '세일통상'이라는 실업야구팀을 기억하십니까. 동국대 출신의 송진우는 1988년 서울올림픽 출전 멤버로 프로진출이 1년 보류된 선수였습니다. 같은 사례로 조계현·김기범·장호익·강영수·최해명 등이 있습니다.

송진우는 프로진출이 늦춰지면서 일본인 사업가가 1988년 1월 대구를 근거지로 창단한 '세일통상'에 입단했으나 팀이 5개월 만에 해체되면서 무적선수로 남게 됐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 게 벌써 18년 전의 일입니다.

서울올림픽 '굴렁쇠 소년' 이 이제는 20대 중반의 청년이 됐으니 송진우는 고교(세광고), 대학시절을 빼고도 정말 오랜 기간 실업과 프로선수로 뛰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송진우는 고교 졸업반 그리고 대학시절 상당기간 팔꿈치 부상에 시달렸습니다.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할 때 그의 성공여부는 '50대50' 이었습니다. 일부 프로야구 전문가는 투구동작 때 송진우의 부자연스러운 왼쪽 팔꿈치를 주목하며 성공 가능성에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그러나 송진우는 주변의 우려를 잠재우고 프로에서만 18번째 시즌을 맞고 있습니다. 철저한 자기관리가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경험 많은 노장은 필요한 법입니다. 게다가 생활자세가 반듯해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선배라면 두고두고 존경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송진우는 시즌 초반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프로야구 개인 통산 200승의 대기록을 올 시즌 안에 이루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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