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유천> 스틸컷
전원사
흥미로운 건 다음이다. 어느 날 수업 뒤 부적절하게 퇴출됐다던 연출자(하성국 분)가 전임을 만나러 온 것이다. 전임과 그의 미묘한 대화를 카메라는 날 것 그대로 담아낸다. 전임은 그가 약속도 잡지 않고 온 것이, 아마 잡았다 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겠으나, 몹시 불만이다. 그가 이 학교에 다시 발을 디딘 게, 또 제 앞에 나타난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비협조적으로 대한다. 몇 달 간 끌고 온 작품을 완성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은 씨알도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자기가 도대체 무엇을 그리 잘못했느냐'는 연출자의 호소 앞에 전임은 그가 무엇을 엄청나게 잘못했다는 듯이 대한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 것이 죄냐는 이와 그건 있어선 안 되는 부적절한 일이었단 이가 정면으로 맞붙는다.
흥미로운 건 관객이 그들 사이 있었던 진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단 거다. 아는 거라곤 앞서 전임이 제 외삼촌에게 그가 오기까지의 경위를 간략히 설명한 것, 또 자기 또한 대략적인 정황을 학생들로부터 귀띔해 들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관객은 두 사람이 치열하게 맞서는 상황 아래 잠겨든 진실을 전혀 알 길이 없다. 그건 당사자만 아는 것이니까. 연출자와 그가 접촉해 제 마음을 고백했던 이들 말이다.
얼마 뒤 상황은 한 걸음 나아간다. 학생들이 전임을 찾아 한 친구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다 큰 성인이 30분 쯤 연락되지 않는 게 무어 큰 일이겠느냐만, 그 연출자가 불러낸 뒤 연락이 끊겠단 얘기에 전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그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그렇게 발견한 연출자는 학생과 어느 나무 아래서 대화하고 있다. 연출자는 외삼촌과 함께 자리를 비켜나고, 남은 학생이 전임과 다른 이들로부터 추궁을 듣는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눈거야? 대화했다는 학생이 내놓는 답이 일품이다. 청혼을 받았다는 것이다.
감독은 전임 연출자와 학생들의 이야기, 또 갈수록 깊어지는 듯 보이는 정 교수와 외삼촌의 관계를 두 기둥으로 삼아 이를 대하는 전임의 요상한 태도를 부각한다. 앞서 전임 연출자가 학생들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내밀히 알지 못하면서도 적대적인 대응을 이어갔듯, 정교수와 외삼촌의 만남에 대해서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오해가 강이 돼 흐른다
영화는 마침내 그 결말에 이르러 전임이 그와 같이 행동한 이유를 듣게 된다. 정 교수가 자리를 비운 참에 외삼촌을 향해, 어쩌시려고 그러느냐고 이혼이라도 하실 거냐고 날 선 물음을 터뜨리는 장면 말이다. 그 앞에서 튀어나온 외삼촌의 답변. '나 이혼했어. 작년에.' 벌써 십수 년을 별거하고, 마침내 이혼까지 했다는 그의 말에 전임을 할 말을 잃어버린다.
열흘을 준비한 촌극은 실패로 끝난다. 작품이 끝나갈 무렵엔 야유까지 튀어나왔다고 했다. 여대 특유의 유별난 성 감수성에 작품이 미치지 못한 탓이라고, 또 연출자인 외삼촌의 사상적 이력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고, 그렇고 그런 위로가 뒤풀이 자리에서 흘러나온다.
그러나 홍상수는 이 연극이 그저 실패로만 놓아두지 않는 것이다. 뒤풀이 자리에서 나눠진 감상은 앞의 열흘 동안 만들어진 유대와 신뢰가 이들에게 쉬이 무너지지 않는 관계를 쌓아올렸음을 알도록 한다. 총장에게 정 교수와 전임까지 호출되는 와중에 이들은 저들이 어떤 작품을 함께 만들었는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를 관객 앞에 내보인다. 바로 이것이 진실이다. 연극에 쏟아진 야유며 호출돼 들어간 이들 앞에서 표출됐을 총장의 말들 따위가 훼손할 수 없는 진실 말이다.
영화의 제목인 '수유천'이 무엇인가. 전임이 베틀을 짜서 만드는 작품은 한강 본류로부터 영감을 얻은 '플로잉워터 한', 다시 그 상류인 '플로잉워터 중랑', 그리고 '플로잉워터 수유'로 강을 거슬러올라가는 작업이라고 했다. 또 전임과 정 교수, 외삼촌이 함께 장어를 구워먹던 그 가게 앞에 흐르는 물이 수유천 가운데서도 상류라고 했다.
영화의 마지막, 전임은 홀로 그 상류를 거슬러 오른다. 그리고 한참 뒤 그녀를 소리쳐 부르는 외삼촌의 부름에 응답해 돌아온다. "거기 뭐가 있어?" 하는 물음에, 해맑게 웃으며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하고 답하는 전임. 말하자면 이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정말이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는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결혼까지 생각할 만큼 진지한 마음에도 그저 한 바탕 불장난이며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또 제 아내를 두고 무책임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냐고, 그렇고 그런 의심과 오해가 아무렇지 않게 태어난다.
오해가 범람해 강이 돼 흐른다. 막상 거슬러 올라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을. <수유천>이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