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조커(Joker)>(2019년)는 압도적인 작품이다. 아무 생각 없이 봐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이지만, 뜯어보면 많은 사유가 담겼다. 분석할 게 너무 많은 게 인문학적 결함이란 농담이 가능하지 싶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는 내용이어서 정신분석학이나 계급갈등 관점의 분석이 많을 듯하다.
주인공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정신적 불안정과 고통, 이어진 폭력을 중심으로 영화가 전개되고, 아서의 내적 고통과 사회적 압력 사이의 충돌이 비중 있게 다뤄지기 때문일 것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가 10월 1일 <조커: 폴리 아 되>로 돌아온다.
프로이트
아서가 정신 질환을 앓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신 질환과 유아·유년기 학대 경험이 현재의 분열적 성격과 폭력 성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그려진다. 그의 현재 행동에 과거의 트라우마가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은 무난하다. 기억 흔적의 환기로 트라우마가 활성화하며 내적 갈등이 심화하고, 억압된 감정이 분출하면서, 원초적 불안이 폭발한다. 그렇게 파괴자가 된다.
아서의 자아 붕괴는 슈퍼에고와 에고, 이드 사이 균형의 붕괴에서 비롯한다. 다만 프로이트의 3자 모델에서 주요 대립이 어느 지점에서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기는 어렵고 무의미하다. 자아 붕괴라는 말이 틀렸을 수 있다. 외부의 충격이든 내부의 각성이든 균형이 붕괴하고, 이어 새로운 균형에 도달한 것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균형은 영화의 마지막 대사에서 조커가 말하듯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자아의 재구성이 맞다.
가장 프로이트적인 소품은 총이다. 총은 정신분석학에서 남근을 상징하는 표현인 팔루스에 다름 아니다. 관객은 영화에서 총이 단순한 무기를 넘어서서 권력, 폭력, 남성성을 상징하는 도구로 작동하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성적 자신감과 매력과도 관련된다. 아서가 총에 익숙해질수록 정신적 왜소에서 벗어난다. 총을 써서 사람을 죽임으로써 조커로 거듭난다.
총을 팔루스로 활용하는 방식은 문학이나 영화에서 일반적이어서 클리셰에 가깝다. 클리셰의 활용은 진부하지 않았다. 총은 곧 살펴볼 니체와도 연결된다. 총은 팔루스이자 힘이다.
정신분석학적 해석은 사회적 관점과 다소 상충한다. 사회적 소외와 거대 시스템의 냉대를 아서의 고통과 폭력 분출의 원인으로 설명하려면 개인의 차원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이냐 구조냐 하는 오래된 분석 틀의 갈등이 다시 등장한다. 영화에선 둘 다 작용한다. 실제 현실도 그렇다. 이 영화에서 개인과 구조 각각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볼지는 사람마다 다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