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손>의 제사 장면이 익숙한 세대와 낯선 세대가 있겠다. 익숙한 세대의 일원인 나는 영화를 보며 어릴 적 겪은 제사 풍경을 떠올렸다. 제사, 장례 등 <장손>은 켜켜이 쌓인 우리 시대의 모습을 단층애(斷層崖) 보여주듯 멀찍이 보여주다가 거기서 한 켜를 꺼내 그것을 관객의 눈앞으로 들이민다.
영화는 주인공인 성진(강승호)의 할머니(손숙) 장례식을 포함해 대략 1년에 못 미치는 시간을 담았다. <장손>처럼 내 부모의 집에서도 제사 드리는 시간이 한밤중에서 어느 날 초저녁으로 당겨진 게 기억이 난다.
내친김에 <장손>이 담지 않은 현실의 얘기를 조금 들려주면, 극중 성진의 어머니(안민영)처럼 종갓집에 맏며느리로 시집온 내 어머니는 평생 제사를 달고 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윗대 조상들 제사를 줄였다. 당신이 죽거든, 자신의 제사를 포함해 후손은 아예 제사를 드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한국의 가족을 주제로 한 <장손>의 엔딩 장면을 보며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제사와 관련해서는 노모의 모습이, 엔딩에서 멀어지는 뒷모습에 자막처럼 떠올랐다.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신예 오정민 감독이 선산 김씨 한 가족의 70년 역사를 <장손>으로 영화화했다. 가족사가 굴곡진 데는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남긴 애환과 상처가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가족은 혈연으로 묶인 공동체로, 세상이 평화롭다면 그 공동체는 비교적 안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시대의 강한 부침이 공동체에 밀어닥치면 균열이 생기고 갈등이 스며드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