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영 대표팀은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3개의 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 목표를 달성하면 박태환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각각 2개씩 따냈던 것을 넘어 수영종목 단일올림픽 최다메달 기록을 세우게 된다. 한국수영이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3개의 메달을 목표로 할 수 있는 이유는 남자 자유형 200m와 400m의 유력한 메달후보 황선우와 김우민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영의 역사는 곧 박태환이었다
한국수영은 1970년 방콕아시안게과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2관왕을 차지하며 '아시아의 물개'로 불리던 고 조오련이라는 스타선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오련은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1972년 뮌헨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 세계수영과의 격차를 실감했다. 타고난 피지컬을 자랑하는 거구의 서양선수들 사이에서 '아시아의 일인자'라는 타이틀은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될 정도로 '수영신동'으로 불리던 최윤희(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배영 100m와 200m, 개인혼영 200m에서 금메달을 따며 '아시아의 인어'로 급부상했다. 최윤희는 4년 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도 배영 100m와 200m를 휩쓸었지만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만19세의 젊은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하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은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났지만 기초종목이라 할 수 있는 수영에서는 메달은커녕 올림픽 결승무대를 밟는 선수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개인혼영 200m에서 남유선이 한국수영 사상 최초로 올림픽 결선에 진출했고 2년 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드디어 한국수영의 '희망'이 등장했다. 한국수영의 유일한 올림픽 메달리스트 '마린보이' 박태환이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오르며 대회 MVP에 선정된 박태환은 2007년 멜버른 세계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지 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 자유형 200m에서는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에 이어 은메달을 따내며 일약 국민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박태환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자유형 400m와 2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자신의 올림픽 메달을 4개로 늘렸다.
하지만 박태환은 2015년 약물파동 이후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땄던 5개의 메달이 모두 박탈됐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리우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전성기가 지난 20대 후반의 나이와 부족했던 연습량으로 인해 전종목 예선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박태환의 대표팀 은퇴와 함께 침체기에 들어갈 거라던 한국수영은 2020 도쿄올림픽에서 황선우라는 또 하나의 희망을 발견했다.
한국수영 새 역사 쓸 두 젊은 에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