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후 한국선수단에 12개의 금메달을 비롯해 22개의 메달을 안겨준 대표적인 효자종목이다. 전자호구 도입과 각국 선수들의 전력평준화로 한국의 독주는 멈췄지만 '태권도 종주국' 한국은 여전히 태권도 강국으로 꼽힌다. 유도 종주국 일본도 지난 2020 도쿄올림픽에서 첨단분석 시스템을 활용해 14개의 금메달 중 무려 9개를 쓸어 담았다.

반면에 종주국이 아님에도 특정나라가 올림픽에서 절대적인 강세를 보이는 종목도 있다. 대표적인 종목이 바로 중국이 독식하고 있는 탁구다. 중국은 역대 올림픽에서 탁구 종목에 걸려 있던 37개의 금메달 중 86%에 해당하는 32개의 금메달을 독식했다. 실제로 국제탁구연맹이 발표한 세계랭킹에서 중국은 남자단식 1~4위와 여자단식 1~4위를 모두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인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도 자국선수들끼리의 '집안싸움'이 벌어질 정도로 차원이 다른 수준을 자랑하는 탁구에서 단식 금메달을 노리는 선수는 많지 않다. 하지만 선수들 간의 호흡과 당일컨디션이 중요한 변수를 차지하는 복식이나 단체전 종목에서는 얼마든지 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 여자단식 단식 세계랭킹 8위, 혼합복식 세계랭킹 3위에 올라있는 한국탁구의 에이스 '삐약이' 신유빈이 파리올림픽에서 대형사고를 준비하는 이유다.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4에 마련된 탁구 경기장에서 신유빈이 훈련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4에 마련된 탁구 경기장에서 신유빈이 훈련하고 있다. ⓒ 연합뉴

 
최근 2번의 올림픽에서 노메달

18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진 탁구는 1926년 제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개최와 함께 국제탁구연맹이 설립됐고 1958년 도쿄 아시안게임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하지만 탁구가 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이 된 것은 그로부터 30년의 시간이 더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당시에도 탁구는 중국이 세계최강의 전력을 자랑했지만 한국은 남자단식의 유남규와 여자복식의 양영자/현정화조가 금메달을 따내며 크게 선전했다.

당시 남자단식 결승에서는 한국선수 유남규와 김기택이 결승에서 만나는 진풍경이 벌어졌고 여자복식에서 양영자/현정화조에게 패했던 중국의 자오즈민은 올림픽이 끝난 후 한국대표팀의 안재형과 결혼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 전국에 탁구열풍이 불면서 동네마다 탁구장이 생기는 등 탁구는 대표적인 생활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올림픽무대에서 3번째 탁구 금메달리스트가 등장하기까지는 16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남자단식의 김택수와 여자단식의 현정화, 여자복식의 현정화/홍차옥조가 4강에 진출했지만 결승 진출 문턱에서 패하면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도 남녀복식에서 동메달을 추가한 한국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여자복식의 김무교/류지혜조가 동메달을 따내면서 중국의 독주 속에도 꾸준히 메달행진을 이어갔다.

그리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어린 시절부터 '탁구신동'으로 불리던 유승민(대한탁구협회 회장)이 대형사고를 쳤다. 남자단식 결승에 진출한 유승민은 상대전적 6전 전패를 기록 중이던 중국의 왕하오에게 승리하며 탁구종목에서 한국의 3번째 금메달을 안겨줬다. 이는 한국 탁구가 따낸 마지막 올림픽 금메달이다. 한국탁구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신설된 남녀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개인전에서는 에이스 유승민이 1회전에서 탈락했다.

한국탁구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유승민과 오상은,주세혁으로 구성된 남자대표팀이 단체전 결승에 진출했지만 세계 최강 중국에게 0-3으로 패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런던 올림픽 이후 한국탁구를 이끌던 유승민이 은퇴했고 한국은 2016년 리우올림픽과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연속으로 노메달에 그쳤다. 정식종목 채택 후 7번의 올림픽에서 금3, 은3, 동12개를 따냈던 탁구가 이제 메달밭과는 거리가 먼 종목이 된 것이다.

대표팀 막내에서 에이스로 성장

미취학아동 시절부터 탁구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탁구를 배운 신유빈은 2009년 SBS 예능프로그램 <스타킹>과 2014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전하면서 '탁구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2019년 만14세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에 발탁된 신유빈은 중학교 졸업 후 고교진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실업팀에 입단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목표의식이 없었다면 쉽게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

신유빈은 실업팀 입단 2년 차가 되던 2021년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했다. 한국 탁구 역사상 올림픽 최연소 출전선수가 된 신유빈은 단식 2회전에서 만58세의 최고령 선수였던 룩셈부르크의 니 시아리안에게 4-3으로 승리했고 단체전에서도 맹활약하며 한국의 8강진출을 이끌었다. 비록 단식 3회전, 단체전 8강으로 대회를 마무리했지만 만17세의 어린 신유빈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커리어 첫 올림픽이었다.

도쿄올림픽 출전 당시 세계랭킹 85위에 불과했던 신유빈은 올림픽 이후 많은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꾸준히 랭킹을 끌어 올렸고 2022년 11월에는 WTT 스타 컨텐더 노바고리차 대회에서 단식과 복식 우승을 휩쓸었다. 신유빈은 작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전지희와 짝을 이뤄 여자복식 금메달을 따냈고 단체전과 개인전, 혼합복식에서도 나란히 동메달을 수확하며 출전한 4개 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따내는 값진 성과를 올렸다.

신유빈은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여자단식과 단체전, 그리고 임종훈과 짝을 이뤄 혼합복식에 출전한다. 물론 세계랭킹 2위에 올라있고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던 '주종목' 여자복식이 열리지 않는다는 점은 신유빈에겐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다(남녀복식은 베이징 올림픽부터 단체전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신유빈은 단체전은 물론이고 세계랭킹 3위에 올라 있는 혼합복식에서도 충분히 메달에 도전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여자탁구는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신유빈과 전지희, 이은혜가 출전한다. 1992년생 전지희와 1995년생 이은혜는 모두 중국 귀화선수로 현재 세계랭킹 14위와 42위에 올라있다. 나이로는 막내지만 세계랭킹(8위)이 가장 높은 신유빈이 단식은 물론이고 단체전에서도 한국의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만 20세의 나이에 커리어 두 번째 올림픽에 출전하는 신유빈은 그녀의 바람처럼 에펠탑을 배경으로 메달 세리머니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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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파리올림픽 탁구 신유빈 삐약이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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