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재후 아나운서.
이재후 제공
"폐회식이 끝나고 대회 하이라이트 영상이 나오는데, 내 설명이 굳이 필요하지 않겠다 싶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영상이 길어지니까 PD가 '멘트를 하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선수들이 땀 흘리는 장면, 넘어지는 모습, 우는 장면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려고 제가 아는 수식어에 형용사를 모조리 끌어다 썼어요.
그런데 이제 할 말이 더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결국 '아, 이것이 올림픽입니다'라고 했거든요. 그 말을 하자마자 하이라이트 영상이 모두 끝났습니다. 그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후 그는 리우, 평창, 도쿄, 베이징까지, 10년 동안 다섯 올림픽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인천과 자카르타,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강원 동계 청소년 올림픽까지 태극기가 올라가는 큰 대회에 언제나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재후 아나운서는 "인천 아시안게임과 평창 동계 올림픽 때 한국을 어떻게 소개할지, 준비를 많이 하고 기대도 많이 했다"면서 "특히 평창 올림픽은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 올림픽이니, 국민들도 기대감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사실 평창 올림픽 때는 일단 추위가 기억에 남았다"라며 "우리나라의 공연 문화, 종합대회의 개·폐막식의 수준이 세계와 비교해서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대한민국의 수준이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공부한 정보, 중계방송 때 하나 잘 써도 다행"
개·폐회식 방송을 준비하는 방법도 있을까. 이 아나운서는 "공연·예술이나 문화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넓게 익히려고 한다"라며 "개최국과 개최 도시를 이해하려 한다.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문화적인 사건들과 변곡점들을 주로 익힌다"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 중계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을 출전국 입장으로 꼽았다. 200개가 넘는 올림픽 출전 국가나 지역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외교부나 연구기관, 각 국가에서 직접 내놓은 검증된 자료를 이용해 출전국의 특징을 정리하는데 약 반년 정도가 걸린다.
이재후 아나운서가 고심하며 확인하는 건 '대한민국의 관계'다. 시청자들에게는 대한민국과 해당 국가의 연관성을 흥미롭게 느낄거라 생각해서다. 그는 "결국 한국과의 관계는 어떤지, 6.25 전쟁 때 한국에 파병했던 나라인지, 한국에 인지도가 있는 사람은 누가 있는지를 주요하게 찾는다"고 설명했다.
기억나는 국가 소개는 어디일까. 남아메리카의 국가 '가이아나'를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는 이재후 아나운서는 "최근 석유가 발견되어서 경제 성장률이 크게 올랐다는 정보를 찾아 안도했다"며 "사실 찾은 정보를 다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중계방송 때 하나 잘 쓰면 다행스럽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말했다.
올림픽 중계를 하고 준비하면서 그간 느꼈던 점은 무엇일까.
"집 앞 커피숍에 앉아서 종목과 나라에 대해 연구하고 조사해서 찾아볼 때,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은 '멀리 극동에 사는 나까지 이 올림픽을 깊게 탐구할 줄 알았을까?' 싶은 고민을 해본 적이 있어요. 올림픽은 어마어마한 대회잖아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선수가 이 무대에 서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요.
사실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그 전쟁 속에서 이렇게 하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만든 것이 고대의 올림픽이었잖아요. 그런 고대 올림픽의 정신이 쿠베르탱이 근대 올림픽을 만든 지금까지도 이어진다고 생각하고요. 올림픽마저 없었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 이웃과의 공존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재후 아나운서는 도쿄·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이번 파리 올림픽까지 함께 하게 된 송승환 해설위원을 언급했다. 이어 "내가 모르는 것이 많은데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준비도 철저하게 잘하는 듬직한 해설위원"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변수가 워낙 많으니, 올림픽 개·폐회식 중계 때는 순발력이 매우 빨라야 해요. 경험도 많이 쌓아야 하고요. '이것이 왜 이렇게 만들어지고 표현해야 하나', '제약조건 속에서 중요한 지점을 어떻게 표현했나'는 부분을 짚는 것도 중요한데, 그 부분을 누구보다도 잘 표현해 주는 분이 송승환 해설위원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