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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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존경이 분노로
청나라와의 전쟁 후 여전히 고통이 남아 있던 시절. '바둑 천재' 희수는 남장을 한 채 내기 바둑을 두어 바둑판을 획득하고 이를 팔아 청에 끌려간 조선인들의 속환금을 마련하며 지낸다. 그 무렵, 청에 볼모로 가 있던 진안대군 인이 돌아오고 희수는 청에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애쓴 인을 마음속으로 흠모한다. 그러다 우연히 인을 만나 바둑을 두게 되고, 그를 연모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인 역시 희수를 남성으로 인식하면서도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둘은 우정을 가장한 사랑을 쌓아간다. 그러던 중 인의 형인 임금 선이 세상을 떠나고 인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왕의 죽음과 관련해 희수와 그의 절친한 벗 홍장(한동희)은 인이 '세작'이라고 거짓 고변을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이에 희수는 왕이 된 대군에게 "망형지우로서 청이라며 홍장만은 살려달라"고 매달린다. 하지만, 인은 "임금에겐 충신과 정적만이 있을 뿐 친구는 없다"며 매몰차게 대한다. 결국 홍장은 세상을 떠나고 희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 그 후 3년을 희수는 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버틴다. 그러던 중 임금이 부를 때마다 바둑을 두는 '기대령'을 선발한다는 소식에 희수는 응하고, 기대령이 되어 다시 인과 조우한다. 둘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면서도 이번에도 묘하게 끌린다. 희수는 역심과 애정을 동시에 품고 인을 대하고 왕이 된 인은 "너를 죽이는 건 숨 쉬는 것 보다 쉽다"고 겁박하면서도 곁에 둔다.
마침내 희수가 여자임을 알게 되고 서로에게 연모하는 마음을 고백한 8회 이후에도 둘은 끊임없이 경계한다. 희수는 "연모하는 마음까지 반정에 이용할 것"이라 다짐한다. 인은 희수에게 마음을 열면서도 희수가 자신 몰래 행한 일들이 알려질 때마다 분노하고 다시금 긴장한다.
사랑과 공격성은 공존한다
도대체 이들은 왜 사랑하면서도 온전히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분노하며 상대를 경계하는 걸까?
뇌과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랑할 때 느껴지는 기분, 특히 성애와 관련된 부분에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깊이 관여한다. 그런데 남성 호르몬으로 알려진 이 호르몬은 '공격성'을 갖게 하는 호르몬이기도 하다. 이는 사랑과 공격성이 생물학적으로도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별 감정이 없는 사람이 우리를 배신했을 때는 그다지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가 배신했을 때는 심한 분노를 느낀다. 사랑할수록 분노도 커지는 법이다.
심리학적으로 봐서도 그렇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빠져들어가며' 사랑을 시작하고, 그러면서 스스로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사랑에 빠졌을 때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어이없어 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감정은 황홀하고 기분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저 사람에게 빠져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도 한다. 그래서 사랑하면 좋으면서도 두려워 지고, 두려움은 경계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정신분석의 아버지 프로이트가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인간 심리의 양대 에너지로 꼽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여기서 로맨틱한 사랑을 연상시키는 '에로스'는 생의 에너지를, '타나토스'는 죽음을 향한 에너지 혹은 파괴적인 충동을 뜻한다. 사랑을 나누는 순간에도 이 두 에너지는 늘 함께한다. 즉, 사랑과 공격성은 우리 삶에 언제나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면에서 희수와 인의 모순되어 보이는 사랑은 매우 현실적이고 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줬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말로 낭만적 사랑에 대한 우리들의 환상을 보여준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