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레트로 열풍에 발맞춰 1990년대 대중가요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장르 및 시대를 아우르는 과거 명반을 현재 시각에서 재해석하며 오늘날 명반이 가지는 의의를 되짚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김광석 <김광석 다시 부르기 Ⅱ> 앨범 이미지

김광석 <김광석 다시 부르기 Ⅱ> 앨범 이미지 ⓒ 신나라레코드

 
단 한번의 호흡만으로 담배처럼 폐부에 흔적을 남기는 <김광석 다시 부르기Ⅱ>는 김광석이 생의 끝자락에서 자기 곡과 시대의 명곡을 리메이크해 모아둔 작품이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부제처럼 그의 취향으로 선별하고 필사한 '숨은 노래, 좋은 노래'들이 수놓아져 있어 그 의미가 더 특별하다. 쓰라리게 이 가수를 추억하는 이들은 생전에 그가 마지막으로 전하고자 했던 것을 따라 들으며 진중한 소통의 기회를 마주하게 된다.

음악적 완성도와 구성 측면에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지나간 명곡과 자신이 동물원 시절에 부른 노래들, 솔로 앨범에 수록된 노래가 한 데 수놓아져 있음에도 각각이 튀지 않고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 고귀한 곡들에는 김광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작곡가 조동익이 세련된 편곡을 입혔고, 과하게 건드리지도 않았다.

원곡의 매력이 잘 살아날 수 있도록 통기타를 중심에 세웠고, 하모니카와 플루트 등의 관악기와 친교를 맺었으며 그 위에 얹은 목소리는 편안하다. 김광석 특유의 과장과 꾸밈이 없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방식이다.
 
음반이 발매된 시기 역시 예사롭지 않다. 1995년은 랩이 가미된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을 필두로 스타일리시한 곡들이 전국을 뒤흔들었고, 본인 역시도 '서른 즈음에' 등이 히트한 4집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챙기며 미래를 바라볼 시점이었다.

모두가 다가올 21세기의 새 물결을 고대하던 시기, 그는 앞날을 준비하는 대신 다시금 과거를 탐구하여 배움을 얻고자 했다. 1970~1980년대에 발매된 선배들의 곡까지 포함한 이 수작은 동물원과 본인의 곡만을 담았던 1993년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Ⅰ>에서 발전한 결과물이자, '한국 포크' 가수로서 정체성을 다지고자 공들인 성장의 흔적이다.
 
포문을 여는 곡으로 선택한 한대수와 김민기의 '바람과 나'가 가볍지 않은 이유다. 그는 획일적인 이데올로기 대신에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노래할 수 있는 자유의 이면에 투쟁의 역사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데뷔와 음악 활동에 도움을 줬던 김민기를 향한 감사인사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는 첫 곡부터 선배 가수들의 의지를 이어받고 이에 존경을 표했다. 군부정권 시기 힘들게 쟁취했던 자유와 포크 음악에 대한 계승 의지와 과거 가객들을 향한 '리스펙트'까지 담아낸 모습에 후배의 정중한 예의마저 느껴진다.

통기타 하나가 전부였던 김광석
 
 1995년 KMTV 김광석 슈퍼콘서트 중

1995년 KMTV 김광석 슈퍼콘서트 중 ⓒ KMTV

 
때때로 무거운 가사로 청자들을 상념에 빠지도록 이끄는 김광석은 삶과 사회의 어두운 면을 역설적으로 밝은 선율로 풀어놓는다. 본 앨범에서 재해석한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이 대표적으로, 신나는 기타 반주와 슬픈 목소리는 서로 처연한 대조를 이루며 이별을 마주한 소년의 양가적인 감정을 저릿하게 형상화한다.

마찬가지로 양병집이 앞서 번안한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에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라는 제목을 다시 붙이면서는 세상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처연하고 올곧으며, 금방 울음이 터질 것 같지만 당당한 자세가 두드러지는 구간이다.
 
그러나 김광석이 위대한 대중가수인 이유는 그가 깨달음으로부터 거대한 주의나 사상을 설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통기타 하나에 의지한 가객은 그저 소소한 인생을 읊조리며 청중과 소통하고자 했다. '불행아'도, '잊혀지는 것'도,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도 1990년대 한국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인생의 조각들이다. 특별한 사람이었지만 그 특별함이 평범함 속에서 비롯되었던 그는 직접 작사, 작곡한 '나의 노래'로 본인의 생각을 나지막하게 읊는다.
 
"이웃과 벗들의 웃음 속에는 조그만 가락이 울려 나오면
나는 부르리 나의 노래를 나는 부르리 가난한 마음을."
- '나의 노래' 가사 중에서.

 
대중음악의 미학은 자기표현과 진실한 소통에서 비롯된다. 짧은 구절에 살아 숨쉬는 가치관은 1천 회에 달하는 대학로 소극장 공연의 전설을 낳았고, 수많은 청춘들은 이에 진동해왔다. 김광석은 대중가수라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고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작은 이야기들은 단순하고 쉬우며 편안하다.

노래의 화자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고, 그가 노랫말에 호출한 사람들 역시 우리 이웃과 맞닿아 있다. 김광석이 우리의 청춘이자, 그리운 시절이자, 쓰라린 후회로 기억 속에 짙은 흔적을 새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끝내 김광석의 음악은 '듣는 노래'에서 '함께 부르는 노래'로 한번 더 그 위치를 변환한다. 한 사람의 음악과 표현에 시대를 뛰어넘어 다수의 사회가 공감했고, 예술을 넘어 문화의 위치를 부여받았다. 그의 음성을 듣다 보면 영화 같은 그의 인생을 함께 음미하며, 노래를 거울삼아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게 되는 대중음악의 진면모를 마주하게 된다.

'다시 부르기'라는 이름의 노력을 치열하게 써 내려가면서 진심으로 노래하고 소통했던 가객, 한국 포크의 찬란한 별은 대중음악의 미학을 몸소 실천한 후 그렇게 짧은 삶을 마무리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음악 웹진 '이즘'에도 실립니다.
명반다시읽기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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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에서 일하고,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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