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및 시대를 아우르는 과거 명반을 현재 시각에서 재해석하며 오늘날 명반이 가지는 의의를 되짚고자 합니다.[편집자말]
한동안 뜸했던 그가 2021년 SBS <집사부일체>에 나오며 소식을 알렸다. 같은 해에는 은관 문화훈장(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 이들에게 수여하는 훈장)까지 받으며 얼굴을 비췄다. 1970년대 초반 짧았던 활동 탓에 많이 잊혔지만, 그는 사업가, 작곡가, 프로듀서, 그리고 다시 음악인으로서 끊임없이 움직였다. 2010년에는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했고, 2015년에는 당시의 시대상을 담은 영화 <쎄시봉>이 나오며 많은 이들의 추억과 화제를 불러 모았다.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전성기가 단절됐음에도 이장희의 존재가 특별한 이유는 뭘까. 우선은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콧수염이다. 실제로도 오토바이를 즐겨 탔던 그는 '반항과 저항'을 상징했다. 머리 하나도 맘 편히 기르지 못하던 풍속 규제의 시대에 수염 기른 젊은이가 가죽 재킷 차림으로 담배를 물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는 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시위나 마찬가지였다.
 
 <그건 너>가 수록된 이장희 앨범.

<그건 너>가 수록된 이장희 앨범. ⓒ (주)비씨에스뮤직

 
1960년대 말 어른들의 트로트 사랑에 반격을 가한 신세대의 문화는 통기타로 대두되는 포크 음악이었다. 일찍이 조영남을 알고 있었을 정도로 포크와 가까웠던 이장희도 정규 2집까지는 포크를 들고나왔다. 본격적인 변화는 기타리스트 강근식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됐다.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Like a rolling stone'으로 밥 딜런이 탄생시킨 '포크록'이 그것이었다.

통기타, 포크와 함께 가사를 개사해 부르는 번안곡이 유행하던 때에도 이장희는 남달랐다. 미국의 음악을 선봉하던 시절 그는 자신만의 음악을 스스로 일궈냈다. 직접 작사-작곡하며 확실한 개성을 확립했다. 가창력이 뛰어난 보컬리스트는 아니었지만, 그의 음악이 많은 이들을 사로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려한 목소리가 아닌, 진심이 담긴 소리로 모두를 홀렸다.

이장희에게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저항적 이미지와 밥 딜런의 포크록 사운드, 레너드 코헨의 중저음 보컬이 공존했다(신시사이저를 도입한 것은 레너드 코헨보다 이장희가 더 빨랐다!). 이런 모습이 가감 없이 녹아든 작품이 바로 1973년 3집 <그건 너> 앨범이다.

분명한 것은 확실히 달랐다

번안의 흐름 속에서도 시적이고 아름다운 가사들이 많았다. 이장희가 영원히 회자되는 까닭 역시 여기에 있다. 싱어송라이터라면 가사도 본인이 직접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의 노랫말은 특이했다.

보통이 은유적이고 사색적이었다면, 이장희의 버전은 현실적이며, 서술, 혹은 사설의 성격을 지녔다. 문어체의 시대에 구어체로 노래하며 작사에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그건 너'가 가장 대표적인 노래이자, 가사다. 어찌 보면 한글을 고집하며 개성 있는 가사를 쓰는 장기하의 시초격이 아닐지 싶다.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더군/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 '그건 너'

가사 중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분명히 달랐다. 신시사이저를 적극 활용한 '촛불을 켜세요', 기타 슬라이드와 이펙트로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살린 '당신은 누군가요', 이장희의 자유로움을 감탄사로 살린 '자정이 훨씬 넘었네'('당신은 누군가요'에도 나온다), 쓸쓸함을 극대화한 휘파람의 '애인' 등이 모두 한 작품에서 꽃을 피운다. 1970년대 한국의 음악 사정을 생각하면 정말 기상천외한 앨범이다.
 
 가수 이장희(자료사진).

가수 이장희(자료사진). ⓒ 연합뉴스

 
'7080'이라는 키워드는 흔히 통기타 치며 잔잔하게 노래하는 포크나, 어른들이나 좋아하는 트로트를 일반화하는 표현으로 사용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우리가 전설이라 부르는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가왕 조용필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날아올랐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이 날개를 접어야 했던 이장희도 마찬가지. 약 50년 전에도 대한민국 대중음악이 비상을 꿈꾸며 계속해서 꿈틀거리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앨범 중 하나가 <그건 너>임에는 틀림없다.

음악의 역할

K-발라드의 꾸준한 흥행과 한때 유행했던 오디션 프로그램과 함께 화려하고 높은 고음이 훌륭한 보컬의 기준이 되고, 좋은 음악의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이장희를 포함한 레전드 중에서도 탈락에 해당하는 음악가들이 상당할 것이다.

음악의 역할이 무엇인가. 뮤지션이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면 대중은 이에 위로받고, 감화하는 것 아닐까. 음악이 예술 향유의 장이 아닌 기술 경연의 장으로 변해 버린 지금, 음악의 역할을 되새기게 만드는 앨범이 <그건 너>라 확신한다.

이것이 가창, 가사, 음악, 외모 그의 모든 부분이 기존에 반(反)했음에도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사랑받았던 이 명작을 다시 들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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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웹진 이즘의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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