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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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사는 청춘에게 1990년대 태동한 인디 음악 혹은 인디 문화가 조금 더 입에 달라붙겠지만, 홍대발(發) '인디'가 있기 전에 신촌에 근원지를 둔 언더그라운드 청년 문화가 존재했다. 때는 1970년대.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로 집약되던 그때 그 시절 대학가는 군사 독재의 서슬 퍼런 압력 속 젊음의 일부를 억누른 채 흘러갔다.
이 때 젊음의 해방구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포크 음악이다. 1969년 송창식과 윤형주가 함께 꾸린 그룹 트윈폴리오를 시작으로 김민기, 한대수, 이장희, 어니언스, 조동진, 정태춘과 같은 많은 아티스트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다. 줄지어 남자 가수들의 음악이 울려 퍼지던 이 때,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대중의 귀를 단숨에 사로잡은 양희은이 세상에 나왔다.
양희은의 첫 번째 독집 <고운노래 모음>은 김민기가 쓴 '아침이슬', '그 날'을 비롯해 고은 시에 멜로디를 붙인 '세노야 세노야' 등 단 3곡의 창작곡과 다수의 번안곡을 포함한 작품이다. 외국곡의 가사만 새로 붙여 노래를 부르는 것이 많았던 시절이었던 것을 염두에 둬도 신곡의 수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앨범은 3차례에 걸쳐 진행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 매번 선정되며 역사적 의의를 인정받는다.
'아침이슬'이 가진 힘 덕택이다. 곡을 만든 김민기는 '저항적 의미보다는 그저 아침이슬 이미지로 노래를 만들었을 뿐'이라며 사회 정치적 메시지를 덧대는 것을 거부 했지만 이 노래는 군부독재, 독재정권이란 암울한 시대 속 청년을 연대하게 해준 시대의 송가다. 탁함 없이 맑은 목소리로 힘주어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라 외치는 양희은의 가창은 답답한 시대를 잊게 할 순수하고 당찬 아우라가 녹아 있다.
나를 거쳐 '우리'로, 우리를 거쳐 다시 '나'로
▲가수 양희은(자료사진, 2018.9.13).연합뉴스
'아침이슬'이 1973년 정부에 의해 '고운 노래' 상을 받고 이듬해인 1974년에는 공연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금지곡 판정을 받아 시중에 배포된 앨범이 모두 압수된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곡이 다시 대중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1987년의 일이다.
그 사이 양희은은 의도 하지 않았지만 저항 가수의 대표 격으로 올라섰다. '아침이슬'로 사회에 맞서는 청춘의 마음을 달래 줬다면 이후 낸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은 영원히 청춘이고픈 기성세대의 고단함을 씻어줬고, '하얀 목련', '한계령' 등의 히트곡은 양희은을 청춘 넘어 대중 가수로 자리매김하게끔 한 효자 곡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시대의 순간을 응축한 음악을 하던 그가 어느 순간보다 '나'에 집중한 음악을 들려준다는 데 있다. 양희은 음악인생에서 놓칠 수 없는 1991년 대표작 <그해 겨울>에 수록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와 같은 싱글, 나아가 2014년 낸 < 2014 양희은 >에서 그가 들려주는 노래는 명명백백 나를 거쳐 사회로 퍼져 나간다.
운동권에서 들리던 '아침이슬'이 이제 누군가의 노래방 18번이 됐고, 또 한 편 이 시대의 '아침이슬'이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로 변모하며 세월이 흐른다. 늘 공감과 위로로 작품을 쓰던 양희은 음악 궤적 안에 시간의 흔적이, 나와 우리가 그리고 한 세대가 녹진하게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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