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산실 선정작 연극 <노스체>의 공연장면
유경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원전 폭발 후 25년 만에 토지와 환경을 조사하기 위해 재난로봇 '노스체'가 들어온다. 노스체는 마을에 머물면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느낀다. 사람과 동물, 숲과 물이 오염되면서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다. 공식적으론 아무도 살지 않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몇몇은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세상과 단절된 채 내부에는 자신들만의 삶을 선택했던 세 명의 내부인들이 있다. 원전 폭발 후유증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현', 몸이 약한 '희'. 갑상선 수술을 했던 '옥'이 그들이다. 원전으로 인한 유해 물질 때문에 그들은 피폭당해서 건강과는 거리가 있는 그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하게 설정하지 않았으며, 25년간 천천히 영향이 끼쳤겠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이처럼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내부인의 아픔을 표현했지만,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마을에는 멧돼지가 침범할 만큼 야생동물이 늘어났다. 여기에 무화과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이처럼 모든 것이 메말라 죽어보이는 땅에도 생명이 샘솟는 설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작가 '필'은 폭발지를 관광하는 다크투어에서 길을 잃고 마을에 들어온다. '현'은 어머니 '연'에게 왜 왔냐며 원망을 숨기지 않는다. '희'는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마을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옥'은 오염되고 망가진 그 마을에도 생명이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필'은 그 마을과 '연'에 대한 연민으로 마을에 잠시 머물고, 이들은 묵은 감정과 두려움, 희망 등이 뒤섞인다.
외부에서는 관광을 목적으로 마을에 호텔을 짓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외부에 대한 원망과 경계심을 보이던 '현'은 오히려 외부로 나가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던 '희'는 남기로 결정했다. 마을 사람들은 집을 팔고 외부로 나가든가, 더 깊숙한 곳으로 이주한다. 그곳에 홀로 남겨진 노스체는 마을의 유해 물질로 기능이 망가져 더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끼며 수명을 다한다.
재난을 마주하는 다섯 명의 또다른 시선들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온하지 않았던 그라운드 제로는 절처하게 외부와 격리됐다. 사고발생 이후 생활의 터전이라 믿고 자신들이 살아왔던 방법을 체득해온 세 명의 구역인들과 외부에서 저마다의 사연으로 경계 안에 유입됐던 두 명의 외부인이 출연한다. 이들은 비슷하면서 재난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태도에서 묘한 차이가 있다.
#1. 재난이 발생한 이후 25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외부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한 70대 할머니 '옥'(구역인). 그는 "멀쩡한 사람들이 여길 왜 와? 그것도 관광으로"라며 경계 안에서 중심을 보여준다. 그는 "보상금 같은 거 다 필요 없고, 그냥 우리 집에서 조용히 살 거"라며, 내외부가 섞이는 것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을 무작정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다친 건 그냥 안 보내, 그게 사람이든, 짐승이든"이라고 말하는 따듯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2. 태어나면서 동시에 재난을 온몸으로 겪었던 20대 여자인 '희'(구역인)는 후유증으로 인해 몸이 좋지 않다. 기침이 멈추지 않지만 갇혀진 상황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다. 경계 안보다는 외부 사회에 대한 동경이 멈추지 않으며, "모르는 사람, 모르는 마을, 모르는 세상 등 그동안 몰랐던 것을 알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로 현실보다는 이상에 가까운 꿈을 꾼다.
#3. 앞선 '희'와 마찬가지로 태어날 때부터 원전 폭발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청각을 잃은 20대 남자 '현'(구역인). 그는 자신이 태어난 존재 이유조차 들을 수 없었으며, 자신의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경계 안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이 염세적이기는 하지만 이상보다는 현실에서 삶의 방식을 찾는다. 외부세계를 무작정 동경하기보다는 힘들더라도 밭일을 해서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려는 전형적인 현실주의자다.
#4. 외부에서 바라보는 그라운드 제로의 삶이 알려진 것만큼 심각하지 않으며, 평온하다고 믿고 있는 시선을 가진 40대 사진작가 '필'(외부인). 그는 정확한 근거 없이 이곳을 단절시키려 했던 시위자에게 불만을 갖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기 때문에 이곳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사진을 찍는다. 순수하게 외부에서 유입됐지만, 구역인과 소외된 마을을 바라보는 선입견을 제대로 판단하고 싶은 인간미가 넘치는 유형이다.
#5. 원전 폭발이 발생할 25년 전에 구역 안에 있었지만 사고와 더불어 살기 위해 외부로 도망갔던 40대 여자 '연'(외부에서 돌아온 구역인). 그는 구역인이었지만 사고가 발생하면서 외부에서 받는 따가운 시선과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움에 싸인다. 게다가 자식을 버리고 갔다는 죄책감은 그가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은 과거가 있었던 것을 회상한다.
관계를 되돌리는 게 중요한가요?
▲창작산실 선정작 연극 <노스체>의 공연장면유경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노스체>가 이렇게 재난을 대하는 다양한 시선을 들려주는 이유가 궁금했다. 서로 다른 유형과 이유를 들어 재난을 대하는 방식에서 등장인물이 충돌하고 있지만, 노스체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를 들어보면 여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재난으로 인해 수많은 상흔을 이전의 것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노스체가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즉,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인식하면서 그들은 재난에서도 살아가고 버티는 것을 생각할 것이라는 황 작가의 대답으로 갈음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재난 속에서, 우리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막연한 낙관만으로, 혹은 날카로운 냉소만으로도 대응할 수 없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저 묵묵히 살아내는 것일지 모릅니다. 묵묵한 작은 걸음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주어진 선택지가 많지 않을 때, 그때에라도 우리가 내디딜 수 있는 작은 걸음에 대한 이야기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재난이 내재된 안이든 밖이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리고 어떤 삶이든 사람이 발을 디딘 곳에는 각자의 역사가 흐른다는 사실도. 수많은 재난이 일어나고 어떤 선택권도 없이 무력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묵묵히 삶을 살아내는 것은 아닐까. 이것에 관한 마지막 대사가 은은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곳이 전처럼 좋아지지 않아도 괜찮다. 무화과가 열릴 수 있는 정도면, 그걸로 됐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