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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숲의 변이체와 인간 공동체가 서로 공존할 수 있을까요?"

오는 10월 23일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 계속되는 전시 <땅속 그물 이야기>는 사소한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국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아티스트, 객원 큐레이터 등 총 21명(팀)이 참여하는 대규모 융복합 전시이다. 대학로에 위치한 대표적인 미술공간에서 두 달 넘게 진행하는 이번 전시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Nausicaa of The Valley of Wind)>(1984, 미야자키 하야오·코마츠바라 카즈오 감독)에서 착안됐다.
 
아르코 융복합 예술 페스티벌<땅속 그물 이야기>은 8월11일~10월23일까지 아르코미술관 등에서 진행된다.
 아르코 융복합 예술 페스티벌<땅속 그물 이야기>은 8월11일~10월23일까지 아르코미술관 등에서 진행된다.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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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앞서 서두에 던진 질문처럼 곰팡이 숲의 변이체와 인간 공동체가 공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자(나우시카)의 지혜를 공유하는 것에서 전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전시의 해답이자 21명의 작가들이 추구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를 총괄기획한 아르코미술관의 큐레이터 노해나(36)씨는 "오염된 곰팡이 숲이 땅속 깊은 곳에서 재생과 순환을 준비하는 생태순환의 세계관을 보여주려고 합니다"라며 전시의 취지를 설명했다. 

<땅속 그물 이야기>는 점점 더 가속화 되어 가는 초연결 사회에서 디지털 네트워크와 예술창작의 환경이 변화되는 것에 주목했다. 이것은 경험 없이 머리로만 생각하는 사변적(思辨的)인 이야기를 넘어 현실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이는 가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환상을 증강현실(AR)이나 인터랙션(Interaction)과 같은 디지털 기반 기술로만 구현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상상했던 이야기가 실천으로 연결되어 세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방식에 주목했다는 뜻이다.

어쩌면 <땅속 그물 이야기>는 인간의 두뇌처럼 똑똑한 웹을 의미하는 웹3.0의 탈중앙화된 네트워크 체제를 땅속의 그물망인 버섯과 곰팡이 등과 같은 균사체 시스템에 비유한 것이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인간, 자연, 신화적인 존재의 얽힘과 땅속 존재로 호명하고 이들이 그려내는 '세계 짓기(worlding)'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전시의 목표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과기술융합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땅속 그물 이야기>는 크게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오프라인에서 열리는 전시는 신화, 영혼, 야생의 오랜 공존 서사와 함께 상이한 시간의 다중우주를 경험하는 영상, 설치 작품으로 구성된 '미지와 야생'(제1전시실), 웹3.0의 탈중앙화와 분산의 네트워크 방식을 통해 디지털적으로 형성된 사변적 스토리텔링의 세계로 안내하는 '변이 세계'(제2전시실), 근균 곰팡이 생장 특징에 따라 구성한 마이크로 세계가 펼쳐지는 온라인 가상전시인 '균사체의 정원'(아카이브 라운지)로 나뉜다.

한편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스스로 미세한 포자가 되어 땅속 그물망으로 연결된 가상공간을 탐험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7점을 비롯해 총 30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 전시다. 
 
아르코미술관 1층 스페이스필룩스에서 진행되는 '지하의 정원'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인간은 신이 그린 그림"이라 믿음으로 제작된 인도네시아 작가들이 만든 잉선이다. 이것을 체험하면 얼굴이 이뻐보이고 피부도 좋아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아르코미술관 1층 스페이스필룩스에서 진행되는 "지하의 정원"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인간은 신이 그린 그림"이라 믿음으로 제작된 인도네시아 작가들이 만든 잉선이다. 이것을 체험하면 얼굴이 이뻐보이고 피부도 좋아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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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미술관 옆 1층에 있는 스페이스필룩스에서 진행되는 '지하의 정원' 전시에는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요소가 들어섰다. 미래에서 온듯한 복잡한 구조물들로 가득차 있다. 몇 개의 어항이나 투명한 유리 통에는 모래와 자갈 등의 땅 위 존재하는 물질이 반쯤 차있다. 약간의 물이 흐르는 동안에는 서로 복잡하게 얽힌 전선 같은 것이 서로를 끄집어 연결한다.

이 전선의 장치는 참여자의 머리에 뒤집어쓸 수 있도록 헤드기어가 놓여져 있으며, 자신의 얼굴이 눈앞에 있는 모니터로 직접 볼 수 있다. 미래와 현재를 공존하는 거대한 조형물은 이번 전시와 어떤 연결이 있으며,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것은 인도네시아 작가들이 만든 작품(잉선)입니다. 자바 섬에 있는 토착문화와 신앙에서 착안했습니다. 작품은 "인간은 신이 그린 그림"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에요. 여기 모니터를 통해서 보이는 자신의 얼굴은 빤짝거리며, 피부도 좋게 보일 거예요. 이렇게 이뻐 보이는 필터를 씌운 것은 신이 인간의 얼굴을 이쁘게 보정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증강현실(AR)을 실천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설치물의 구조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있는 신전을 본떠서 만들었단다. 사진으로 보이는 양 옆에 있는 돌, 자갈, 모래, 물, 이끼 등의 토양을 구성하는 물질이다. 여기에는 각자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를 듣고 소리로 변환해 출력한다. 서로를 자극해 들리는 '째깍' 거리는 신호음은 물질과 인간 사이의 인터랙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전시가 펼쳐지는 스페이스필룩스 1층의 '지하의 정원(The Underground Garden)'에서는 모두가 연결되어 서로 다른 종의 세계와 함께 형성해나가는 관계를 지향한다. 여기에서는 혼프(하우스 오브 내추럴 파이버)의 작품과 함께 삶 속에서 서로 연결되기의 전략, 수평적 관계와 문화 안에서 소통하는 기술, 땅의 실천, 기술과학 안에서의 여성의 개입 등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땅의 기운을 닮은 콜렉티브, 공동체, 참여자들은 그들만의 삶과 실천과 지식을 나누고 친밀한 경험을 제안하는 것이 전시가 의도한 바이다.  

전시의 의도를 가장 밀접하게 호흡한 황선정 작가
 
<땅속 그물 이야기>에 출품한 '탄하무-춤의 시간들'의 황선정 작가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땅속 그물 이야기>에 출품한 "탄하무-춤의 시간들"의 황선정 작가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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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디지털이 기술매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요?"

인간-자연-기술의 유기적인 연결성을 찾으며, 포스트 휴먼과 비인간, 기술과 자연과의 관계를 주목한 시각예술 황선정(33) 작가는 <땅속 그물 이야기>에 출품한 '탄하무_춤의 시간들'의 제작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작품 제목은 생명의 욕구라는 의미를 가진 산스크리트어 '탄하'와 리듬을 뜻하는 '춤'을 결합하여 이름을 지었단다. 이것은 "가까운 미래에 인간과 땅속 균사체가 자연 합성되어 새로운 종(species)이자 공생의 춤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황 작가는 디스토피아로 대변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결핍을 상상하면서 감각과 비감각,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작용을 실험하고 동시대의 휴머니티를 제안했다. 인공지능, 제너러티브 코딩, 음악, 오디오비주얼 등의 다양한 기술매체와 유기성을 바탕으로 컴퓨팅 작업, 유기체 운동을 연구하면서 바이오 미디어와 결합을 시도했다.

최근에는 식물에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운드 작업과 균사 네트워크를 가상세계로 구현한 '탄하무 프로젝트'를 이어왔다. 그는 1년 넘게 미생물과 균근(고등 식물의 뿌리와 균류가 긴밀하게 결합해 양자 간에 공생 관계가 맺어져 있는 뿌리) 네트워크에 관심을 갖고 13분짜리 영상(탄하무 워프 드라이브, 2021)과 설치작업(탄하무 하이웨이 펑기, 2021~2022)을 제작했다. 

"작품활동의 초기에는 유기적 생명의 움직임으로 디지털 생성 알고리즘을 만드는데 집중했어요. 그런데 성에 차지 않더라고요. (하하) 단순히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존재하는 버섯 등과 같은 균사체를 디지털 매체에 접합시켜 보고 싶었습니다."

균사체는 인류가 생겨나기 이미 오래 전부터 지구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믿는다. 그들이 옆에 있는 생명과 공생하는 관계를 연구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작가만의 세계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시의 제목인 '땅속 그물'은 균사체가 가진 네트워크 시스템을 말한다.

또한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인터넷이 생겨나기 전부터 땅속의 그물망 시스템을 통해 그들끼리 통신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예를 들면, 겨울에 침엽수들이 영양소가 필요하면 활엽수 아래에 있는 균사체들이 침엽수에 전해줘 숲을 죽지 않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최근에 기후변화의 90% 이상이 인류 때문이라는 발표가 주목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황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화성과 같은 다른 우주를 개발하지 말고 지구를 고쳐쓰면 어떨까요?" 그것은 균사를 재배하지 말고 자연이랑 공생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이번 작품의 주제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황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인류에게 던지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이렇게 들려줬다.

"도시의 삶은 돈을 모으는 등 수직적으로 쌓아올리는 것에만 관심있어요. 그런데 균사들처럼 수평으로 뻗어나가면 우리도 공생하면서 나선이나 원이 되지 않을까요? 앞으로 인간이 기계와 합성이 되는 사이보그의 얘기도 나오니까, 인공지능(AI)도 공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거예요."

태그:#아르코미술관, #융복합, #전시, #황선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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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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