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뮤지컬 <청춘소음>의 드레스리허설 장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송인혁
창작뮤지컬 <청춘소음>은 낡은 맨션에 살고 있는 청춘들의 노래와 희망이 담긴 소동극이다. 가본 적 없는 여행지를 홍보하는 작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취준생, 현실적인 문제로 결혼을 선택할 수 없는 노동자는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허름한 거처에 살 수밖에 없다. 서로의 사생활은 낡은 집구조 덕분에 원치 않게 공유되며,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슈화됐던 층간소음 때문에 이들의 스트레스는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급기야 의사와 상담을 하지만 뚜렷한 해결방법이 없던 의사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인 사랑만이 해결할 수 있어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동시대 청춘들의 이야기가 슬프게 전개된다. 아파도 아무렇지 않은 척, 슬퍼도 행복한 척, 좋아도 아닌 척, 힘들어도 괜찮은 척 등 자신을 철저하게 숨긴채 '척' 만 내세우며 말이다. 여행작가인 척하면 살아가야 하는 오영원, 해코질 당할까봐 여자임을 숨기며 살아야 하는 한아름. 거짓말에 둘러싸인 이들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근심에 뚜렷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한다. 각자의 소음을 담고 살아가는 다른 듯 닮은 인물을 통해 불안한 미래지만 서로를 위로하며 희망을 찾는 과정이 전개된다.
진짜 같은 가짜 여행을 들려줄게요
인터넷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고 있는 작가의 사이트는 '오작가의 팩트트립'이다. 팩트(사실)라곤 두 눈을 씻고 찾을 수 없지만, 거짓말로 뒤범벅된 사이트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반어적인 표현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말의 팩트까지 전부 없애진 않았다. 작가(오영원)가 수십 건의 에피소드를 이어오면서 영감을 얻었던 소스는 진실이었다. 그가 실제로 경험했던 장면에서 모티브를 얻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 장면의 유일한 팩트라고 위안삼는다.
베네치아의 경품을 위한 손수건을 소개하면서 그가 실제로 겪었던 손수건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 이탈리아의 어느 카페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비앙카는 편의점 알바에서 진상 손님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취준생(한아름)을 떠올렸다. 자신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데올로기를 꿈꾸고 있지만 그가 거짓말만 일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바람을 담은 약간의 팩트가 가미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배려도 좋지만 가끔은 부딪혀보세요. 가끔은 피하지 말고 부딪혀보세요."
상처를 보듬길 바라는 주위로부터 새로운 해결법을 제시받는다. 심지어 상담했던 의사는 "돈도 들지 않고, 모든 존재를 품어주는 큰 마음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아마도 인간만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아니겠냐며. 거짓말로 뒤덮인 껍데기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전환점에서 공연은 두 사람의 진실된 마음을 확인하며 반전에 들어선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던 모습에 환멸을 느꼈지만 서로의 진실된 마음을 알게되면서 그들은 '사랑'이라는 치유법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놓는다.
"우리 이제 그만 싸울까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저는 팩트트립의 작가예요."
"처음에 별 생각없이. 아무런 기대도 없이. 구체적인 말들이 좋았어. 손을 뻗으면 내게도 닿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좋았어. 감정에 솔직해지는 네가 마음에 들었어."
대사를 돋보이게 만드는 음악의 묘미
▲창작뮤지컬 <청춘소음>의 드레스리허설 장면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송인혁
100분에 이르는 <청춘소음>은 두 남녀가 마치 랩처럼 내뱉는 디티타카로 인해 극적 몰입감이 배가된다. 2층에서 객석을 향해 연주되는 음악적 울림은 젊은 배우들의 춤과 노랫말을 한층 간결하게 만들었다. 극의 전개에서 반전이 이루어졌던 후반부 신에서는 넘버의 임팩트가 한꺼번에 폭발한다. 반대로 해석하면, 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노래는 배우들의 대사를 오롯이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을 넘지 않았다는 뜻이다. 중반부를 넘어서기 직전까지 음악은 배우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배경음악으로써 역할에 충실했다. 하지만 피날레로 갈수록 각 등장인물의 주요 신에서는 어김없이 자신만의 넘버가 선물 보따리처럼 쏟아져 나왔다.
뮤지컬의 기본 요소이자 빼놓을 수 없는 넘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이 창작뮤지컬의 음악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마치 심리적 묘사에 치중한 영화의 OST를 듣는 것처럼 음악보다 대사의 전달에 중점을 둔 느낌이다. 그러나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내용에 대한 반전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돋보이는 곡이 관객의 귀를 사로잡는다. 그중 몇 개를 꼽자면, 극적 반전의 시발점이 됐던 두 남녀를 화해하게 만든 장면, 전 애인(미진)을 떠올리며 부르는 노래, 작가(오영원)가 취준생(한아름)에게 미치도록 너무 예뻤다고 고백하는 노래가 그렇다.
탄탄한 대본으로 짜임새 있는 극적 구조
창작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반전, 배우들의 대사, 시나리오의 전개에 있어서 극의 치밀한 구조가 돋보인다.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를 들으니 등장인물의 관계도를 거듭한 흔적이 엿보인다. 무대에는 세 명의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작가(오은영)와 취준생(한아름)을 제외한 다른 한 명(?)은 조연을 뛰어 넘어 극적인 풍부함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상담의, 노동자, 전 애인을 잊지 못하는 남자, 취객과 진상남 등까지 다양한 인물을 교차시킴으로써 에피소드에서 한순간도 지루함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게 설계됐다.
"우리의 거짓말 때문에 하면 할수록 조금 멀리 돌아왔지. 이제 마주할 준비됐어."
뮤지컬이 내세우는 음악적 효과와 작가의 시나리오에서 오는 탄탄한 구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청춘 남녀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와 그들이 바라는 해피엔딩의 예상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다소 복잡하면서 치밀한 구성은 정통극이 바랐던 바에 다가섰을 것이다. 마지막에 던지는 이 대사는 프로덕션이 관객에게 던지는 앞선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당신의 시간도 나와 같이 흐르죠. 그러니 삐걱대도 같이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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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