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별신굿’을 모티브로 제작한 < RE: 오리지널리티 > 리허설 장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모든 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한 번 빌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 여러분들의 소원과 마음을 가득 담아서 우리의 소리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14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진행된 < RE: 오리지널리티 >는 장구병창(홍성현)의 멘트에서 시작을 알렸다. 이번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2022 창작산실 >의 전통예술 부문에 선정됐는데,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양한 확장과 결을 같이 한다.
특히, 홍성현아트컴퍼티는 그동안 끊임 없이 '동해안 별신굿'의 정신과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해온 단체다. 여기에 그들이 강조했던 전통 무악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타악'을 전면에 내세웠다. 아마도 타악이 주는 울림으로 음악을 재편성하는 데 주력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단체는 이번 작품의 전 레퍼토리를 타악곡으로 채운 이유가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장단 연주를 통해 관객과 연주자를 뛰어넘어 무한한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아르코예술극장의 지하 2층에 위치한 소극장에 들어서자 기존에 배치되어 있던 객석이 치워졌음을 눈치챘다. 사방에는 검은 천과 벽으로 둘러싸여 암전 효과를 극대화했다. 아마도 다양한 장르와 퍼포먼스에 최적화될 수 있도록 블랙박스 공연장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것으로 보인다. 관객은 객석을 통하지 않고 바로 공연장 무대를 밟으며 입장한다. 사전에 세팅된 타악기의 배열을 마주하면서.
가운데에 위치한 장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에 장구, 징, 북, 꽹과리, 태평소, 바라, 피리 등의 악기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아마도 관객이 입장한 후 연주자가 들어서는 순서를 직감했을 것이다. 연주자의 머리 위에는 용선(용의 머리를 가진 배), 지화(종이로 만든 꽃) 등의 이미지를 살린 모빌이 매달려있다. 바람의 흐름에 따라, 때로는 공연을 찾은 관객의 반응에 따라 이리저리 뒤흔들리는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것은 '즉흥성'을 첫 번째 요건으로 삼았던 동해안 별신굿의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하는데 최선의 수단이지 않았나 싶다.
연주자들 주위에 25개의 방석이 깔려 있지만 공연을 관람하는 이들은 자리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심지어 방석 뒤편으로 돌아다녀도 상관없다. 게다가 중간에 공연장을 나가는 일이 벌어진다 해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안심시킨다. 이렇듯 공연은 그 어떤 규칙과 매너를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관객들은 추임새를 넣으며 연주자의 흥을 부추기면 된다. 그들은 무대를 넘나들며 한바탕 즐길 마음만 가지고 공연장에 들어오면 된다.
자신만의 색깔로 재구성한 동해안 무악
창작 원천인 '동해안 별신굿'의 정신과 가치를 보존하는 데 앞장선 홍성현아트컴퍼니는 강원도 바닷가에서 수백 년 이어왔던 '오리지널리티'를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온전한 모습을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연행의 행태나 텍스트, 무대 세팅 등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무엇보다 동시대성을 반영한 공연물을 창작하기 위해 원류의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노력한 흔적이 돋보인다.
무대에 진입하면 관객은 암전 속에서 얼핏 보이는 동해안의 시야와 소리를 듣는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기 10분 전부터 파도소리와 갈매기가 공간을 채운다. 아마도 푸른 바다의 이미지를 연상하듯 파도소리가 귓가를 맴돌 땐 조명까지 푸른색으로 통일감을 노렸을 것이다. 본격적인 시작은 무대가 아니라 (대부분의 전통공연이 그러하듯) 길놀이로 시작했다. 다양한 악기를 강약조절하며 로비에서 무대로 들어오면서 이미 들어와있던 관객들은 시선을 빼앗는다. 연주자를 따라 관객들의 소원을 빼곡하게 매단 대나무는 장구병창의 뒤편으로 가지런히 놓고 공연을 알린다. 이것은 마을 축제의 일환으로 시작되는 '동해안 별신굿'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많은 이들의 바람을 한몫에 집중하는 데 좋은 효과로 작용한다.
1시간 가량 진행되는 < RE: 오리지널리티 >는 총 5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2023년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의 소원성취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장구병창의 비래소리로 시작해 네 번의 연주와 춤, 노래가 순서대로 이어진다. 장구, 징, 정주, 북, 꽹과리, 태평소 등이 주고받는 흐름은 비슷하지만 '푸너리즘', '해안선 따라', '흔들흔들', '즉흥 신기루'는 홍성현 장구병창의 소리로 공간을 채운다.
"사방천지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여기 다 모였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소원성취 하리라."
"2023년 좋은 기운 받아서 행복하게 잘 사시길 바라봅니다."
"얼씨구나 절씨구나, 에헤라디야."
"다들 하는 일 잘 되시고 소원성취하고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흔들흔들 들려드리겠습니다."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직접 자신의 소원을 적은 소원지를 열어 읽어주는 퍼포먼스가 눈길을 끌었다. 이것은 땅의 기운이 하늘에 곧게 닿길 원하는 의미를 담은 대나무에 자신의 소원을 적은 종이를 읽어준 것이다. 아내가 넘어져 뼈가 부러졌는데 하루빨리 낫길 바라는 남편의 소원부터 새해에는 다이어트에 성공해 좋은 인연을 만나길 원하는 소원까지 저마다의 사연도 제각각이다. 공연장을 찾은 이들은 또 하나의 전통공연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책으로 봐왔던 '동해안 별신굿'을 이해하는 데 충분히 시간이 되리라 짐작한다.
공연 당일(14일)의 직전에 열린 드레스리허설에 직접 참관했으며, 공연을 마친 후 안희경 크리에이티브디렉터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홍성현아트컴퍼니한국문화예술위원회
- 공연장 천장에 매달린 모빌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모빌은 현장성을 내포한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기류에 따라 마음대로 움직이는 예측불허의 특성이다. 누가 오고 관객이나 연주자가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서 예측가능한 운동성을 갖는다. 이런 것이 또다른 생명성을 창출한다고 믿는다. 동해안 별신굿과 동해안 무악이 현장성과 즉흥성이 돋보이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구현하고 싶었다. 또 이런 것을 지화, 용선으로 본따서 만들었는데, 만선이나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이다. 사실 동해안 별신굿의 현장에서 직접 사용되는 오브제들이다. 그런데 똑같이 만들기 보다는 약간 변형하고 복제했다."
- 대나무에 소원지를 달아서 실제로 읽어주는 퍼포먼스를 어떻게 진행하는가?
"공연장에 들어오기 전에 발권을 한 관객들에게 소원지를 나눠준다. 소원지에 자신의 기원을 직접 적어 무대 앞에 놓일 대나무를 꽂는다. 그러면 우리가 공연을 진행하는 도중에 소원지를 읽어주는 시간을 갖을 것이다."
- 동해안 별신굿을 실내에 와서 해본 적이 있었나?
"다른 곳에서 그런 시도는 많았다. 우리도 동해안 무속음악을 바탕으로 제작했지만 이번 공연은 원형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서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동해안에서 진행하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만 동해안 별신굿의 본질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을 때, 그게 타악성이라고 봤다. 태평소 빼고는 전부 타악으로 구성했다. 사실 동해안 별신굿에서도 태평소는 있지만 우리는 타악이 중심이 되는 단체이다."
- 이번 공연은 준비는 잘 되어가는가?
"오늘 7시에 진행되는 공연은 총 80석으로 준비했는데, 전부 매진됐다. 원래는 올 스탠딩으로 준비했지만 25개의 방석을 깔아서 앉아서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실제로 사람들이 굿판처럼 보다가 시끄럽다면 나와도 되고 물 먹고 싶다면 나와도 되게 기획했다. 다리가 아파서 앉아서 보고 싶다면 편하게 앉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노약자와 어르신분들이 계시다보니까 관객을 배려한 것이다."
- 즉흥성은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는가?
"사실 인사말과 곡소개 정도는 약속이 되어 있지만, 소원을 읽어주는 것이라든지 중간에 에헤라디야 등 후렴구처럼 주고받는 것, 관객과 같이 춤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많은 부분 열려있다. 현장의 즉흥성에 따라서 많은 부분이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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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