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리버스'의 한 장면

'소녀 리버스'의 한 장면 ⓒ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지난 1~2년 사이 방송가에선 진일보된 IT 기술을 예능에 접목시키는 시도가 활발히 이뤄졌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인물의 목소리, 모습을 첨단 AI 기술로 복원하는 건 이제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메타버스(metaverse, 가상-초월을 의미하는 메타 meta와 세계, 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 universe를 합성한 신조어)를 표방하며 다채로운 아바타, 가상 현실을 예능으로 가져오는 시도 역시 활발히 이뤄졌다.

​그런데 아직까지 다양한 시도에 비해 성과는 미미하다. 아바타를 전면에 부각시켰던 TV조선 <부캐전성시대> <아바드림>, MBN <아바타 싱어>는 무관심 속에 쓸쓸히 막을 내렸다. 가상의 공연장을 꾸며 놓고 애플리케이션으로 접속해 가수들의 무대를 즐기는 JTBC <뉴페스타>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기획 의도는 충분히 납득이 되었지만 시청자들을 흡수하기엔 이들 프로그램의 매력, 설득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에 대한 개념이 부재한 노년층 시청자가 많은 종편 채널에서의 방영은 애시당초 예견된 실패였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카카오가 뒤늦게 메타버스 기반의 예능을 유튜브와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선보이면서 후발주자로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제 막 3회차를 공개한 <소녀 리버스>가 그 주인공이다.

아이돌 서바이벌에 메타버스 접목
 
 '소녀 리버스'의 한 장면

'소녀 리버스'의 한 장면 ⓒ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과거 MBC <두니아 : 처음 만난 세계>로 가상 현실 게임을 예능에 도입했던 박진경 CP가 이끄는 <소녀 리버스>는 웹툰, 웹소설 콘텐츠 유통 플랫폼인 카카오 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제공중이다.  프로그램 형식은 기존 서바이벌 아이돌 오디션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30명의 전현직 걸그룹 아이돌이 신분을 숨기고 VR 가상 캐릭터로 등장한다. 붐-바다-아이키-펭수 등 심사위원과 참가자들의 사전 투표 등을 통해 등급을 부여 받고 1대 1 데스매치 경연으로 다음 라운드 진출자를 가리면서 최종 5명이 데뷔하는 것 역시 흔히 봐왔던 방식이다.

​그런데 뚜껑을 연 내용은 의외로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다이어트나 화장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좋다"는 어느 참가자의 말처럼 각종 준비, 꾸밈이 필요했던 현실 세계와 달리 이곳에선 VR 장비만 착용하면 그 누구보다도 자유분방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다. 덕분에 좀 더 과감한 방식으로 본인을 드러내면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물론 목소리, 가창, 특유의 행동, 춤선 등으로 일찌감치 참가자들의 정체는 다 파악이 되었지만 이에 아랑곳 없이 참가자들은 유명 기획사 여부, 선배와 후배, 나이 등에 구애 받지 않고 대등한 위치에서 자신이 지닌 매력과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종종 등장하는 거친 표현 조차 유쾌하게 보여질 만큼 가상 환경이라는 틀을 참가자들은 200% 활용하고 있다.  

기존 가상 환경 플랫폼의 활용
 
 '소녀 리버스'의 한 장면

'소녀 리버스'의 한 장면 ⓒ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앞서 방영된 <아바드림> <아바타싱어>는 수십억원 이상이 개발에 투입되었다는 3D 캐릭터 기반으로 방영되었다. 하지만 각종 영화 속 3D 기술력 대비 조악한 느낌을 주는 인물들의 등장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시청자 입장에선 채널 선택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반면 <소녀 리버스>는 기존 가상 환경 프로그램을 토대로 제작이 이뤄지고 있다. VRChat이라는 가상 현실 소프트웨어를 토대로 만들어지다보니 단순한 2D 기반 화면이지만 이에 익숙한 젊은 시청자 입장에선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각종 온라인 및 가상 현실 게임에 익숙한 참가자들이 여럿 있다보니 이러한 환경을 본인의 장점으로 활용하면서 일찌감치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다만 참가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캐릭터 아바타를 택해 출연하는 과정에서 일부 캐릭터 사용권 문제 때문에 방영이 한 달 이상 늦춰지며 결국 해를 넘기게 된 의외의 상황 발생은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사전 준비 과정에서 저작권 문제에 대해 안이하게 생각한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아바타 캐릭터지만... 진심을 담은 참가자들
 
 '소녀 리버스'의 한 장면

'소녀 리버스'의 한 장면 ⓒ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기존 메타버스 예능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크긴 하지만 아직 <소녀 리버스>는 대세 예능이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존재한다. VRChat, 아바타 걸그룹 등 소수의 취향에 맞춘 소재이다 보니 폭넓은 인기를 모으기엔 한계 역시 명확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유튜브 등에서의 숏폼 영상 조회수 등은 폭발적인 반응과는 분명 거리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을 주목하게 만드는 건 참가자들의 기량 못잖은 진정성이다. 이미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인기 팀 멤버들이다보니 보컬, 댄스 등에선 여타 경연 예능 이상의 실력을 보여준다. 단순히 VR 예능 정도로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참가했던 출연자들도 정성을 다해 경연에 임하는 동료들을 보고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그 결과 사전 투표 등에서 최약체로 손꼽혔던 한 참가자가 데스 매치에서 완승을 거두는 등 이변도 벌어진다. 이밖에 얼마 전 데뷔 3년 만에 소속팀 해체의 아픔을 겪은 어느 출연자는 탈락 직후 "이젠 돌아갈 곳도 없는데…"라는 말로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최첨단 기술이 동원되는 IT 기반 가상 현실 세계도 결국 중요한 건 이를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걸 <소녀 리버스>가 일깨워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소녀리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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