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거룩한 질서>의 한 장면. 여성참정권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투쟁기이다.
Zodiac Pictures International
여성참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여성참정권이 '거룩한 질서'에 반하며, 좌파의 선동일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여성 활동가들을 조롱하고, 가족을 따돌린다. 이런 장면들은 <서프러제트>의 1912년 영국 상황과 다르지 않다. 한편 영화 속 시위대의 '낙태권'과 '동일임금' 구호는 지금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 1912년 영국, 1971년 스위스, 2017년 한국. 엄청난 시차에도 불구하고 억압의 양상이 같다. 투쟁하지 않는 이상, 저절로 억압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이다. 영화는 참정권 운동이 여성의 성적 해방이나 가사노동 등 사적 영역의 투쟁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브로니의 장례식 장면을 통해 한 사람의 일생을 전혀 다른 서사로 말하는 광경을 보여준다. 사제는 근면, 성실, 겸손, 헌신 등을 말하고, 노라는 불평등, 자유, 정의, 투쟁을 말하는데, 이는 가부장적 담론 질서와 여성주의적 담론 질서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스위스의 여성참정권이 이토록 늦게 인정된 이유가 뭘까. 보수 여성단체들의 반대 운동 탓도 있지만,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가 결정적이었다. 1958년에 스위스 연방의회가 여성참정권을 통과시켰지만, 1959년 주민투표가 이를 부결시켰다. 영화에서 언급된 1959년 상황은 이때를 가리킨다. 하지만 1969년 베른에서 여성참정권을 주장하는 5천 명의 시위대가 호루라기를 불며 행진한 사건을 시작으로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크고 작은 집회와 시위가 조직되면서 영화에서 보듯 1971년 주민투표가 가결되어 연방법이 바뀌었다. 그러나 몇몇 주들은 지방자치를 내세워 여성참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버텼는데, 1990년 아펜첼 주가 여성참정권을 인정함으로써 종결되었다.
영화는 마지막 영상들을 통해 1969년 호루라기 시위 장면과 이후 의회와 내각에 진출한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 스위스 연방 내각의 절반이 여성이다. 불과 45년 만에 혁명적인 변화를 거둔 것이다. 이는 앞서서 '설치고 말하고 생각한' 여성들 덕분이다. 노라처럼 '거룩한 질서'를 깨고, '인형의 집'을 부수고 나가야 한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거룩한 질서>는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성들의 힘을 보여준다.Zodiac Pictures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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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