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무한테도 말 하지마>
여성인권영화제
또한 불법 이민자들은,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없거나 자신이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곳에서 계속 쫓겨나야 한다. 이민자들은 합법적인 경우 자신이 속한 사회에 동화되어야 하고, 불법인 경우 존재해서는 안 된다. 범죄를 저지른 불법 이민자만 쫓아내겠다면서 모든 불법 이민자를 표적으로 삼고 경범죄라도 심하게 추궁하는 미국의 이야기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한국의 경우에도 '불법 체류자'에 대한 차별적인 프레이밍은 계속 이루어져 왔다. '불법 체류자'가 범죄를 저지른 경우, 범죄자의 신분인 '불법 체류자'가 유독 두드러지게 보도되는 것도 그 예시다. 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파견되어 온 이주 노동자들에 대해 만들어진 부정적인 이미지에도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 앤지의 엄마가 앤지에게 아무에게도 불법 이민자임을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불법 이민자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으로만 존재하거나 아무에게도 말해서도, 말해져서도 안 되는 존재다.
이민자에게 가해지는 이중 억압영화 속에서 앤지는 자신과 다른 불법 이민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앤지는 다른 불법 이민자들과 경험을 나누는 창을 만들었고, 많은 문제들을 듣고 처리하려고 한다. 이민자들이 처하는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일상적인 문제들부터 감정적 문제, 학대, 착취 등 그 범위가 넓다. 이민자이기 때문에 마주하게 되는 문제들은, 이민자이면서 다른 소수자일 때 배가 된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성적 학대 경험을 이야기하는 앤지가 그렇듯이.
"학대와 폭력은 불법 이민자 사회에서 흔해요", 라고 앤지가 말했다. 불법 이민자 중 여성, 노숙자, 동성애자 등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 불법 이민자들은 이민자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자원이 적은 데다가, 불법이라는 낙인 때문에 더 살기가 힘들다. 불법 이민자이면서 다른 사회적 층위에서 소수자일 때, 불법 이민이라는 신분과 사회적 소수자라는 정체성은 이중 억압이 된다. 이중 억압을 받는 이민자들은, 각종 폭력과 착취, 강간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크다. 이미 목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받고 있는 몇 겹의 억압에서 벗어나기는 더 어렵다. 이렇게 불법 이민자 여성, 노숙자, 동성애자 등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 이미 경계에 서 있는 삶이지만, 절벽 끝까지 몰리는 것이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무한테도 말 하지마>여성인권영화제
"소리칠 거예요, 그래야 들린다면"
더 이상 뒷걸음질할 수도 없을 것 같은 벼랑 끝에서, 앤지는 계속 싸웠다. 자신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고 불법 이민자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소리쳤다. "나는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고 두렵지 않다"고,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는 생존자이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앤지는 다른 사람들과 경험과 고통을 나누면서 자신의 문제를 모두의 문제들로 끌어안았고, 모두를 위해 싸웠다.
앤지의 목소리는 많은 불법 이민자들의 목소리들을 이끌어냈다. "투명인간"처럼 살면서 "앞으로 전진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앤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씨름하고 있고, 정책적인 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앤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함칠 수 있게 되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에 조금 지쳤는가? 언제까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대화를 시도해야 할지 몰라 답답한가? 나 혼자 모두를 위해 싸우고 있는 기분이 들었는가? 이 세가지 질문 중 어느 하나라도 그렇다, 고 답했다면 앤지의 이야기를 꼭 감상할 것을 권한다. 고군분투하는 앤지와 함께 눈물 흘리며, 나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앤지의 말을 들으며, 앤지의 노력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위안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우리는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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