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낳고 있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포스터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초등학교 미술 시간은 빈부 격차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간이다. 혹자는 아이들에게 무슨 빈부 격차냐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건 어른보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아이들의 사회를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의 준비물만큼 계급적인 물건도 드물다고 나는 생각한다. 크레파스와 물감, 색연필, 파스텔, 하다못해 색종이까지 색의 다양함으로 비싼 것부터 싼 것까지를 줄지어 세울 수 있다. 질도 비슷하고 모양도 비슷한 이들 준비물에선 오직 색의 다양함만이 계급을 가른다.
내가 어릴 적 같은 반 급우들은 대부분 16색이나 24색 크레파스를 썼다. 그게 가장 보편적이었고 모든 면에서 적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문방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린 32색, 48색 크레파스를 떡하니 가지고 와 자랑하듯 펼쳐놓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8색 크레파스를 쓰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8색 크레파스를 쓰는 건 고단한 일이었다. 잘 쓰지 않는 검은색을 제외하면 7가지 색깔뿐인 이 크레파스로는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나무는 늘 녹색이고 하늘은 푸르렀으며 태양은 붉거나 노랬다. 8색 크레파스를 쓴다고 해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적은 게 아니라는 점이 가장 불만스러웠다. 가끔은 하늘색 하늘과 연초록색 나무도 그리고 싶어 친구들에게 빌리기도 했지만 크레파스란 쓰고 나면 닳는 법이어서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다.
열등감 때문이었을까? 내 눈에는 금색이나 은색을 사용한 아이들의 그림이 못마땅하게 보이기도 했다. 더 많은 색깔이 더 많은 것을 표현하게 하는 것만 같았고 그래서 더욱 박탈감이 느껴졌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말없이 그어진 금이 있는 듯도 했다.
크레파스는 색을 섞지 못한다. 8색이냐 16색이냐 32색이냐, 어떤 크레파스를 사느냐가 표현의 폭을 좌우한다. 8색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 같은 그림밖에 그릴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러했다. 더 많은 크레파스가 모여야 더 폭넓은 표현을 해낼 수 있다.
성장동력을 잃고 장기침체에 빠져든 한국경제가 문화 등 서비스 업종을 통해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류 열풍과 맞물려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이 한국의 중심산업으로 부각될 조짐이 보이는 탓이다. 하지만 장애물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대기업 중심으로 편성된 구조가 문화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영화 산업만 보더라도 CJ, 롯데 등 대기업 계열사들이 제작과 배급, 상영까지의 과정을 구조적으로 장악하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시장을 과점하고 불공정한 거래를 거듭하고 있다. 이같은 행태는 자유경쟁의 시장질서를 훼손하고 창작자의 창작욕구를 가로막아 결과적으로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음악이나 드라마 등 다른 문화산업부문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대기업 위주의 왜곡된 구조를 혁신해야 마땅하다. 이로부터 창작자의 창작욕구를 자극하고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선 사례에서 살펴보았듯 더 많은 색의 크레파스를 구비하는 것은 더욱 폭넓은 표현을 위한 첫걸음이다. 더불어 문화산업의 역군인 창작자 저마다의 DNA는 곧 우리 사회가 보유한 갖가지 색의 크레파스와도 같다.
그럼에 결론은 간명하다. 한국사회는 이들 각자의 문화적 DNA를 보호해야 한다. 그것이 문화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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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