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개봉한 화제작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멸망 뒤, 즉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아래 그려진 썩 잘 만들어진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저 장르물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빈부격차며 부동산 과열, 천민자본주의와 공동체 해체 등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주목받았다. 보기 드문 영화였던 만큼 또 이와 같은 작품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가운데 유사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이 굶주린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황야>는 개봉 전부터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후속편이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던 작품이다. 제작사부터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제작한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이고, CG부터 지진 후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라는 설정까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떠올리게 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아파트라는 보금자리를 둘러싸고 이곳에 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주의 깊게 다루었다면, <황야>는 그 밖의 세상을 보다 많이 보여준다는 점이 차별점이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배우 자체로 장르성을 확보한 보기 드문 이, 마동석을 주연으로 삼았단 점도 인상적이다. 마치 성룡이나 이연걸을 보듯, 출연만으로도 영화를 저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마동석이 멸망한 세상 뒤 부조리에 맞선다는 것이 보기 전부터 흥미를 자아낸다.
 
황야 포스터
황야포스터넷플릭스
 
선명한 선악구도, 마동석 액션으로 돌파한다
 
이야기는 도심의 어느 연구실로부터 시작된다. 정신을 잃은 환자에게 생체실험을 통해 개발 중인 약물을 주입하려는 박사(이희준 분)와 그를 저지하려는 이들의 대립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 가운데 갑자기 세상이 흔들리고 온 도시가 파괴되는 것이다. 그로부터 박사가 살아남아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들여 실험하는 악당이 되고, 남산(마동석 분)이라 불리는 떠돌이 일행들이 그를 막는 이야기가 영화의 얼개가 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멸망한 세상 뒤 공동체가 만들어지며 생겨나는 부조리를 흥미롭게 다루었다면, <황야>는 명확한 선악구도 속에서 악을 파쇄하는 선의 모험을 단순하게 그린다. 아파트에 감금된 무고한 사람들과 그중 어느 누구를 구하려는 이들의 공격, 이를 막아내려는 이들의 저항이 영화의 거의 전부라 해도 좋다. 단순한 구조 속에서 승부수는 캐릭터와 액션인 것으로 보이는데, 마동석이란 배우의 존재감, 그에 대항하는 미치광이 박사 이희준의 연기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연출을 맡은 이는 허명행으로, 영화팬들 사이에선 제법 이름이 알려진 이다. 그러나 연출자가 아닌 무술감독으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로, 마동석과 합을 맞춘 <범죄도시> 시리즈를 비롯해 <헌트> <반도> <백두산> <극한직업> <독전> <남한산성> 등 내로라하는 작품들에서 액션을 총괄했다. 그런 그가 연출에 나서니만큼 끝내주는 액션이 스크린을 가득 채울 것이라 기대하는 이가 많았다.
 
마동석 액션 일변도, 통할 수 있을까
 
황야 스틸컷
황야스틸컷넷플릭스
 
과연 그러해서 영화는 액션이 저의 승부수임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칼과 활, 총기를 인상적으로 활용하고 맨몸 액션 또한 다른 어느 한국영화와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 수준으로 연출된다. 그 파괴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가운데 선혈이 낭자하고 육체가 분리되는 고어물의 장르적 성격까지 얼마간 발휘하여 이 같은 장르를 즐기는 관객들의 흥미를 잡아끈다. 고어의 경우 다수 대중은 잔인하다 기피하지만 열렬히 호응하는 적잖은 관객층이 있다는 점을 노린 연출로 풀이된다.
 
그러나 <황야>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큰 작품이다. 개봉 전부터 영화가 좋지 않으리란 분석이 잇따랐는데 막상 작품을 보면 왜 그런 이야기가 돌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실제 영화는 개봉 전부터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배급한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아닌 넷플릭스 배급으로 전환됐다는 사실이 부정적으로 징후로 평가됐고, 작품이 사전 공개된 시기도 개봉 직전이어서 입소문을 내려는 의도 자체가 없는 게 아니냔 이야기까지 나온 바 있었던 것이다.
 
전술했듯 영화는 사람들을 잡아다 생체실험하는 괴짜 박사가 악역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붙잡힌 이를 구출하기 위해 주인공 일행이 악당들의 본진으로 쳐들어가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수많은 장르영화에서 수도 없이 되풀이한 구조를 차용함에도 캐릭터와 액션 외엔 어떠한 차별점도 마련하지 않고 있어 영화가 안이하게 느껴질 밖에 없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다채로운 캐릭터와 복잡다단한 이야기 구성을 생각하는 이에게는 그저 선과 악의 대결로 시작하여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황야>가 실망스러울 밖에 없는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그림자... 득보다는 실
 
황야 스틸컷
황야스틸컷넷플릭스
 
액션 또한 기대에 비하면 대단치 않다. 허명행이란 이의 실력부족이 아닌, 이미 그가 다른 영화에서 보여준 수준 높은 액션에 비해 새로울 것이 얼마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동석의 액션은 여전히 파괴적이지만 더 파괴적이지는 않다. 어느새 그는 50대에 접어들었고 강화된 캐릭터만큼이나 육체의 날렵함은 떨어질 밖에 없는 것이다. 가동범위가 크지 않은 몸은 파괴적 한 방 이후 다른 액션을 더하지 못하고, 편집과 촬영, 사운드로 보조될 뿐이다. 60대 후반에 들어선 리암 니슨의 액션이 그러했듯, 어느새 마동석의 액션 또한 기술적 보조를 통해 겨우 지탱될 뿐이다.
 
그리하여 팔다리가 떨어지고 목이 분리되는 고어물로 액션을 연출한 것이겠으나 그 때문에 보편적인 감수성의 관객들이 영화에 거부감을 느낄 밖에 없게 되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대중적 장르물로 기획됐는데, 액션은 마니아적 성격을 가져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게 된 탓이다. 고어물의 경우 이야기 구성에서부터 파격적으로 자극적인 요소가 도입되는 경우가 많음에도 <황야>는 구성에선 지극히 평범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기획단계에선 기대를 모았을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설정 또한 독이 되었다. 지진으로 멸망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파트란 설정이, 또 다분히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떠올리게 하는 CG가 거듭하여 두 영화를 비교하게 하는 탓이다. 영상 전반에서 <황야>만의 새로움을 찾을 수 없고, 아쉬움만을 의식하게 되니 실망이 증폭될 밖에 없다. 가뜩이나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강점, 캐릭터와 다채로운 구성, 상징이 곧 <황야>의 약점이어서 더욱 실망스럽다.
 
그럼에도 <황야>에서 찾을 수 있는 긍정적 요소가 없지 않다. 기존 한국영화에서 찾기 힘들었던 포스크 아포칼립스 장르를 적어도 기술적 측면에선 무리 없이 제작해낼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마동석의 캐릭터처럼 이미 검증된 재료를 이 세계관 안에 받아들여 녹여내는 일 또한 가능하니 한국에선 보다 많은 장르물이 쏟아질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 실패는 언제나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허명행과 마동석 모두에게 이 영화는 그 가능성이 되어줄 테다.
 
황야 스틸컷
황야스틸컷넷플릭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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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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