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질병이 있다.
10여 년 전 독일 철학계를 강타한 한병철의 책 <피로사회>의 첫 문장이다. 저술의 뚜렷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첫 문장만큼은 문학적으로나 마케팅적으로나 강렬한 효과를 발휘했다 해도 좋겠다. 그건 이 문장이 말하는 바에 시대가 공명했다는 뜻이다. 언제나 명확한 시대의 특징이, 때로는 질병이라 부를 만큼 명확한 한계가, 동시에 어떤 미덕 또한 존재한다.
세상에서 그 문화며 삶의 방식이 급변한 나라로 한국만한 곳도 드물다. 일찍이 염상섭의 <삼대>가 구한말부터 일제치하에 이르는 삼대의 삶을 통하여 급변하는 시대상을 지적하기도 했다지만, 오늘날 변화의 속도를 보고 있자면 그 시대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가 아닌가 그런 생각에 이른다. 말하자면 이 시대 삼대의 이야기를 새로 쓴다면 눈 높은 염상섭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밖에 없으리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