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하루스틸컷
영화제작전원사
닿지 않는 듯 연결되는 기묘한 하루
지원이 김민희라면, 시인 홍의주(기주봉 분)는 홍상수 본인이라 해도 좋겠다. 지원이 얹혀 사는 집에 고양이가 있는 것처럼, 홍의주 시인 또한 고양이를 길렀다. 70대에 접어든 시인은 얼마 전 키우던 고양이를 잃었는데, 늙어서 자연스레 죽은 것이다. 시인은 늘그막이 되어서야 나름대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본인의 관심은 성공이라기보다는 건강이고 순탄하며 평화로운 삶에 있는 것이다. 이혼 후 아내며 자식과 멀어진 늙은 시인은 그마저 운명인양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유명세 때문일까. 시인의 집엔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졸업작품으로 시인의 다큐멘터리를 찍겠다는 여학생(김승윤 분)이 있고, 무작정 시인에게 연락을 해서 난해한 질문을 퍼붓는 배우지망생(하설국 분)이 있다. 시인은 그들의 요구에 기꺼이 화답한다. 카메라 앞에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내보이고, 젊은이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한다.
묻는 이는 물음에 열의가 있고, 답하는 이는 답에 정성이 있지만, 이들의 대화는 좀처럼 매끄럽게 풀려나가지 않는다. 진리가 무엇이냐, 삶이 무엇이냐는 둥의 현학적인 질문이 거듭 겉돌기 때문이다. 배우지망생이 시인을 찾아 깨달음을 얻으려는 상황의 우스꽝스러움은 좀처럼 어우러지지 않는 이들 사이의 대화를 통하여 부조리적인 즐거움을 자아낸다.
카메라가 지원과 시인 사이를 오가는 가운데 이야기가 진척된다. 뚜렷한 기승전결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지원은 지원대로 시인은 시인대로 관객 앞에 저를 그대로 내보인다. 지원과 시인은 서로 연관이 없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둘 사이 몇 가지 공통점이 투명한 끈처럼 서로를 잇고 있는 듯도 하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지원과 키우던 고양이를 잃은 시인의 모습이, 라면국물에 고추장을 풀어먹는 취향이, 조그마한 기타를 연주하는 지원과 제 기타의 목이 부러진 뒤로 기타를 치지 않게 된 시인의 이야기가 모두 그러하다. 관객은 이 모호한 연결 속에서 단정할 수 없는 영화의 재미를 맛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