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종식자: 오펜하이머와 원자 폭탄> 속 노년의 오펜하이머.
NBC
오펜하이머와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이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는 동시에 원자폭탄의 실체를 알리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히틀러에 대한 공포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의무가 컸다.
당장 히틀러의 손에 원자폭탄이 들리게 되리라는 공포는 2023년의 우리는 상상도 못할 크기였으리라. 당시 과학자들의 1순위 목표도 무조건 독일보다 원자폭탄을 먼저 만드는 것이었다. 히틀러에 대한 공포는 서구 문명 자체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존재론적 두려움이었다. 원자폭탄 사용과 피해에 대한 윤리적·도덕적 회의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킬 겨를이 없었다는 얘기다.
훗날 인터뷰에서 오펜하이머는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식으로든 인류 역사의 방향에 분명히 개입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고 회고했다. 한 역사가는 "원자폭탄 개발의 결과에 대해 생각이 부족했다며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라며 회의적으로 물었지만 이미 애초부터 히틀러에 대한 공포가 유태인인 오펜하이머와 다른 과학자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1945년 4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뇌출혈로 사망한 데 이어 히틀러도 자살했다. 세계가 격량에 휩싸였다. 그때까지 나치 독일은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하지 못했다. 미국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공포가 사라져 버린 셈이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폭탄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야 그 실체를 세상에 알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일종의 과학자들이 가지는 오만으로 비춰질 여지가 없지 않았다. 루스벨트의 뒤를 이은 트루먼 대통령 역시 폭탄 개발을 지지했다. 일본군은 여전히 저항 중이었다. 결과적으로, "핵무기가 등장하면 전쟁은 멈출 것"이란 오펜하이머의 예측은 현실이 됐지만.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동양 철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습니다. 폭격은 파괴 행위이자 잠재적인 창조 행위이며 전쟁 도구인 동시에 평화의 도구라는 것이죠. 폭탄을 잘못 다루면 인류가 멸망하겠지만 제대로 제어하고 다루면 전 세계를 평화의 시대로 이끌 수도 있었습니다."
한 미국 역사학자의 평가다. 그리하여 오펜하이머는 핵실험에 박차를 가했고 성공을 이뤘다. 훗날 방송 인터뷰에서 오펜하이머는 당시를 회고하며 그 유명한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도다'란 경구를 이렇게 인용했다. 담담한 어조였지만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과학자로서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그러나 죽음이나 학살에 더 가까워진 듯한 인상을 주는 회고였다.
"이제 세상은 전과 달라졌습니다. 몇몇은 웃었고 몇몇은 울었으며 대부분은 침묵했습니다.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 속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비슈누 신은 왕자가 자기 의무를 다하도록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깊은 인상을 주도록 팔이 여러 개별 형태로 나타났고 이렇게 말했죠.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도다'. 우리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겁니다."
<오펜하이머> 앞서 공개된 전기 다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