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옥만세> 관련 이미지.
한국영화아카데미
<지옥만세> 속 '쏭남' 송나미(오우리)는 학교 폭력의 방관자이자 피해자였고, 따돌림의 동참자였다. 가해자 집단의 '여왕벌' 박채린(정이주)의 말에 고분고분했던 지난날이 자신의 삶을 망가뜨렸다 자책하는 중이기도 하다. 피해자인 '황구라' 황선우(방효린)와 의기투합을 하게 된 계기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살아 뭐해, 어차피 망했고 앞으로도 망할 텐데"라며 수안보의 한적한 폐목욕탕에서 목을 매다는 일을 먼저 실행에 옮긴 결단력 있는 송나미에게 곧 뒤따라 가겠다던 황선우가 박채린의 근황을 알려준 게 화근이었다. 맞다. 소셜미디어가 만악(?)의 근원인 세상이다.
집이 망해 야반도주했다던 박채린은 서울 가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었고, 황선우는 그 소식을 듣고 부글부글해 하던 송나미에게 이런 눈치 없는 멘트를 날린다. "걔 너 죽어도 상관없이 쭉 잘 살 걸". 이대로 생을 마감할 순 없다. 이런 꼬락서니로 전락한 것도 알고 보면 다 박채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을 거, 박채린 인생에 기스라도 내야 하지 않겠냐"는 심정으로 둘은 어차피 가기 싫었던 수학여행을 '보이콧' 한 채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이처럼 <지옥만세>의 도입부는 매력적이면서 발칙하고 그래서 더 활력 넘친다. 이 두 '학폭' 피해자와 가해자의 자살 소동극은 진지한데 귀엽고, 귀여워서 더 안쓰럽다. 두 배우의 캐릭터나 연기 톤이 딱 그렇고, 이를 잡아내는 촬영이나 편집의 리듬도 그런 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학폭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히 보여주지 않은 오프닝부터 서울로 떠나기 전까지의 소동극은 간결하고 경제적이면서도 엉뚱한 10대 둘의 여정과 연대를 무조건 응원하고 기대하게 만든다. 이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다. 그리고 나선 효천선교회가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피해자들의 복수가 가해자의 기적이고 축복인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박채린이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한없이 친절하기만 한 한명효(박성훈)가 가식적인 미소로 박채린을 무조건 감싸 도는 것도 모자라 '불신 지옥' 비슷한 말로 아이 신도들을 협박할 때부터 지옥도의 단초가 드리워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돈 없고 갈 때도 마땅찮은 이 두 피해자가 고작 교회에서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사이 '고딩'들이 쉬이 마주하기 힘든 사건을 겪게 된다.
자칫 친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두 세계의 조화로운 동거라 할 수 있겠다. '학폭'과 '이단 사이비 종교'라는 두 세계 말이다. '학폭'은 이제 K-드라마의 단골 그림이요, '사이비 종교'는 여러 완성도 높은 장단편 독립영화들이 다뤘던 소재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연대 역시 <지옥만세>로 장편 데뷔한 임오정 감독이 전작 단편들에서 천착했던 주제다. <지옥만세>의 매력은 어쩌면 너무 친숙하거나 식상할 수 있는 소재나 그림들을 예측 불가한 전개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 안정감 있는 연출을 통해 독창적이고 신선한 여성서사로 버무려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밀양>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듯 '사이비 종교'로 살짝 소재를 뒤튼 '셀프 회개'와 용서라는 테마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쏭남과 황구라의 미소와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