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짝지근해: 7510> 스틸컷
㈜마인드마크
제과 연구원 치호(유해진)는 칸트 같은 남자다. 몇 개나 되는 시계가 매일 똑같은 시간에 알람을 울려주면, 이후로는 집, 차, 회사, 차, 집을 반복하는 루틴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감옥 간 형이 없으니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다. 과자 먹는 게 일이니 그마저도 잘 챙겨 먹지 않는다. 이 남자, 무슨 낙으로 살까. 그러던 치호에게 밥을 먹자는 여자가 생긴다.
싱글맘인 일영(김희선)은 돈이, 일이 좀 급하다. 실직 후 대출 이자 상담을 위해 들른 대출회사에 바로 취직해 버리는 저돌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생긴 아이를 지울 수 없어 싱글맘을 선택한 따스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녔다. 그랬던 일영에게 형의 대출을 대신 갚기 위해 찾아온 치호가 눈에 들어온다.
<달짝지근해>는 그야말로 정석대로 간다. 멜로드라마는 연애(결혼) 이후를, 로맨스 코미디는 연애 이전을 주로 다룬다. 멜로드라마는 그래서 정치사회학이 끼어들 여지가 충분하지만 로맨스 코미디는 당대 유행이나 배우들의 매력에 훨씬 민감하다.
<완득이> <증인> 등으로 대중들과 호흡해 온 이한 감독도 이를 십분 활용한다. <달짝지근해>는 치호를 연기한 유해진과 일영을 연기한 김희선의 매력에 영화의 대부분을 기댄다. 사건이라고 부를 것이나 빌런이라고는 치호의 건달 형 석호의 진상 짓이 전부다.
영화의 나머지는 모두 치호와 일영이 밥 먹고, 운전 교습 핑계로 만나고, (치호는) 데이트 인 줄 모르고 여행가는 둘의 데이트에 할애한다. 훼방꾼을 자처하려던 조연들도 어느새 이 둘을 응원하는 처지로 변모하는데 그 묘사에 과함도, 억지도 없다. 드라마의 필수 요소인 갈등도 그리 복잡하거나 해결까지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정석이란 표현을 쓴 건 그래서다. 그러니까 로맨스 코미디의 정석대로 관객들은 멀찍이서 두 캐릭터의 사랑과 사랑스런 면모만 물 흐르듯 지켜보면 된다. 치호는 무해한 남자고, 일영은 적극적일망정 민폐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다. 딱 거기까지다. '들쩍지근'하지도 '달착지근'하지도 않고 딱 달짝지근한 정도. 사랑에 빠진 유해진의 연기 톤이 딱 그 정도다. 편안한 마음으로 극장을 찾은 관객들을 무장 해제시킬 딱 그 정도.
자칫 심심해 보일 순 있다. 단연 유해진이란 배우 개인의 친숙하면서도 낯선 매력이 이를 상쇄한다. 사시미 칼을 휘두르고, 화투 패를 돌리고, 나쁜 짓을 지시하며 가슴이 뛰는 것이 아닌 사랑 때문에 마음이 두근거려 죽겠다고 약사 엄혜란에게 호소하는 유해진의 처음 만나는 연기는 분명 희소성이 있다. 수천만 관객을 스크린에서 만난 것도 모자라 나영석 PD의 예능을 통해 배우 개인의 매력을 발산하고 인지도를 넓힌 그 유해진 아니겠는가.
관객을 설득시키는 유해진이라는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