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종이 위에 세계의 운명이 놓인 순간이 있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만난 어느 날도 그랬다. 물리학자라는 점 말고는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동료라기보다는 학술적 반대자에 가까웠던 둘의 만남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오펜하이머는 아인슈타인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넨다. 거기엔 복잡한 계산식이 적혀있다. 아인슈타인이 묻는다. 이걸 누가 계산했소? 오펜하이머가 한 학자의 이름을 댄다. 그리고는 아인슈타인에게 보아주겠느냐 묻는다. 원자가 쪼개지며 나오는 엄청난 힘, 그로부터 생겨나는 거대한 폭발 뒤로 끊이지 않는 연쇄적인 폭발이 이어질 수도 있음을 그는 우려하고 있다. 그가 이끌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한 연구자가 그와 같은 계산을 내어놓았던 것이다.
어쩌면 핵폭탄은 인간의 예상보다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는 것이고, 오펜하이머와 같은 걸출한 학자조차도 그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