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입사원: 더 무비>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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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만났던 사이입니다. 당연히 지금은 아무 감정 없고. 승현씨도 알잖아요, 이 바닥 좁은 거. 파트너였던 사람하고도 친구로도 잘 지내는 거. 뭐 때문에 기분 상한 거 알겠는데 그렇다고 과거를 무를 수는 없잖습니까."
행복하게 하룻밤을 보냈다. 영문도 모르게 상대방이 토라졌다. 알고 보니, 과거지사와 관련된 하나의 아이템, 전 연인에게 선물 받은 만년필을 침대 옆에 놔둔 탓이었다. 토라진 승현(문지용)에게 종찬(권혁)이 말한다. "이 바닥 좁은 거 알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신입사원>의 승현과 종찬이 발 디딘 곳은 어김없는 BL이자 퀴어의 세계다.
이제 막 관계를 시작하는, 토라진 상대에게 "다들 파트너였던 사람하고도 친구로 잘 지내지 않느냐"고 어렵지 않게 되물을 수 있는 세계다. 어느 저녁 골목길에서 풋풋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승현과 종찬을 본 아저씨가 "아이고, 좋을 때다" 하고는 기분 좋게 웃으며 지나치는 그런 세계다. '무지개' 동아리 출신 절친 지연(백지혜)이 승현의 첫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조력하는 훈훈한 세계다.
승현, 종찬을 만난다. 잘 나가는 광고기획사 AR기획에서다. 승현은 S대 경영대 석사 출신인 늦깍이 인턴이다. 종찬은 회사 매출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기획1팀 파트장이다. 게다가 종찬은 잘생겼다. 까칠한 파트장(본부장)과 실수투성에다 '금사빠' 인턴의 운명적인 회사 내 만남. 초반부 <신입사원>은 친숙하다 못해 K-드라마 하위 장르라 할 수 있는 '사내연애'의 세계로 무리 없는 초대장을 보낸다.
이들이 함께 넘어야 할 허들은 퀴어의 높은 벽이 아니다. BL의 세계, 아니 K-드라마라고 해도 크게 관계없을 인턴과 파트장이란 사내 계층의 벽을 넘어야 한다. 물론 그에 앞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는 필수다. '금사빠'와 '워커홀릭'의 만남이 쉬울 리 없다. 원래 로맨틱코미디는 연애 전까지를 다루고, 본격 멜로는 연애 후를 탐구한다. BL물인 <신입사원>의 달달한 길은 단연 전자다.
호감은 호의로, 또 그 호감이 애달픈 감정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승현의 감각과 열정을 높게 본 종찬이 인턴인 승현에게 큰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그 과정에서 애정이 싹튼다. 그렇지만 이건 사내 연애다. 게다가 승현이 짝사랑했던 대학 선배가 종찬이 잠깐 만났던 상대다. 이런 갈등이 퀴어의 세계였다면 진지하고 무거운 탐구 주제였을 터다. 하지만 BL의 세계에서 그건 온도와 무게 차의 문제일 뿐이다.
<신입사원>이 집중하는 건 "모르죠?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힘들다는 거"라거나 "그럼 편하게 불러요, 형이라든가", "딱 하나만 생각해, 이런 이유로 그 사람을 놓쳐도 되나"라는 대사와 같이 달달한 고백의 순간이나 처해진 갈등을 애정으로 이겨내는 주인공들의 감정선이다.
원작 팬들이 바라는 잘생기고 멋진, 그리고 매력적인 두 남성 주인공이 공유하는 감정들을 실사화된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게 관건인 셈이다. 베드신 등 드라마 판보다 높은 수위의 새로운 장면들도 같은 맥락일 터다.
2020 리디북스 BL코믹 어워드를 수상한 동명의 베스트셀러 원작을 극화한 <신입사원>은 그 감정들을 K콘텐츠 속 낯설지 않은 설정과 영상으로 연결시켜 친밀감을 강화한다. 동명 웹툰을 간간이 영상 속에 등장시키는 것처럼 원작의 영향을 감출 생각도 없다. 친숙한 K-드라마와 한정된 팬 층이 소비하는 BL 장르의 행복한 만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신입사원>의 관심이 여기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신입사원>의 개봉 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