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희 잘 키우자."

이혼 전문 변호사의 이혼 이야기를 다룬 SBS 드라마 <굿파트너> 10회. 차은경(장나라)은 남편 김지상(지승현)과 이혼에 합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혼하는 마당에 '아이를 잘 키우자'라는 말이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이혼한 부부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약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렇다. 이혼은 부부 관계의 종료이지 부모 역할의 종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혼하더라도 여전히 자녀의 엄마이고 아빠이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변화를 겪는다. 물리적으로 부모 중 한 사람과 따로 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 심리적으로도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어려움을 경험한 재희를 잘 키우려면, 그러니까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굿파트너> 은경-지상의 딸 재희(유나)가 부모의 이혼을 겪어내는 모습은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혼을 경험하는 아이들의 마음

 드라마 <굿 파트너> 속 한 장면

드라마 <굿 파트너> 속 한 장면 ⓒ SBS


"아빠 언제 와?"

드라마 초반, 재희는 아빠의 외박이 잦아지자 엄마 은경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던진 질문이었지만, 사실 재희는 아빠의 외도를 알고 있었고, 아빠와 엄마가 냉랭해지는 과정을 말없이 지켜봐 왔다.

부모의 이혼을 경험하는 아이들의 혼란은 이렇게 부모의 갈등을 목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불안해하지만,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경우가 많다. 알고 있는 비밀을 터뜨리면 정말 엄마 아빠가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더 크기에 자신의 불안을 드러내지 않는다. 재희가 그랬듯 말이다.

이혼의 법적 과정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더 큰 혼란에 빠진다. 양육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도구화'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도 이혼소송이 시작되자 지상과 은경 모두 재희를 다르게 대한다. 지상은 오직 재희를 소유하기 위해서만 행동하고 말하고 엄마 은경을 깎아내린다. 은경은 재희를 걱정하지만, 양육권을 차지하기 위해 선물 공세를 하거나 음식을 만들어 주는 등 '안 하던 짓'을 한다. 이는 재희에겐 마치 자신이 소유물처럼 다뤄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재희는 자신이 느끼는 혼란을 표현한다.

"내가 정말 어릴 때는 나한테 성숙하다고 하더니 이젠 정말로 다 컸는데 갑자기 엄마 아빠가 저를 어린애처럼 대하는 게 웃겨요." (6회)

그런데 더 마음 아픈 건, 아무 잘못도 없이 이런 혼란을 겪는 아이들이 죄책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재희 역시 은경에게 반복해서 "미안해"라고 말한다. 이는 아이들이 가지는 '자기중심성'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자신이 중심이 돼 세상이 돌아간다고 믿는 아이들의 심리적 특성 때문에 많은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도 '나 때문'이라고 느끼곤 한다.

때로는 내가 잘하면 이혼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쓰기도 한다. 9회에서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자기 잘못으로 돌리고 어른들은 자기 잘못을 남한테 돌린다'는 한유리(남지현)의 내레이션은 이런 면을 매우 잘 짚어낸 말이었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편견들

이렇게 부모의 이혼 과정을 힘겹게 버텨낸 후에도 아이들의 마음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 이혼가정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끊임없이 생채기를 내기 때문이다. 재희는 10회 유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언니 항상 고마워요. 친구들, 친구들 엄마, 이모님 다 날 불쌍하게 쳐다보는데 언니만 그렇지 않았어요. 야야 거리고 하나도 안 불쌍해했잖아요."

이는 재희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인해 상처 입었음을 표현한 장면이었다.

이혼 가정의 아이들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이런 시선은 우리 사회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성애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을 '정상'이라 여기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외의 다양한 가족의 형태는 염두조차 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도 이는 잘 드러났다. 11회 은경과 재희가 단둘이 여행을 가 자전거를 빌릴 때 상점 주인은 당연하다는 듯 "아빠랑 엄마랑 셋이 탈 거지?"라고 묻는다. 재희가 다쳐서 병원에 갔을 때도 은경이 재희를 혼자 안아 올리자 간호사가 나타나 "아버님 안 계세요? 어머님 혼자 위험하게"라고 외친다.

아빠와 관계가 좋았던 재희는 엄마와 하는 여행 내내 아빠와 함께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복잡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아빠가 있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하에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는 재희에게 지금 자신의 상황이 '비정상'이라는 부적절한 느낌마저 들게 했을 것이다. 재희는 이런 반응을 접하면서 결국 "아빠가 너무너무 미운데 그래도 보고 싶어"라고 울고 만다(11회).

부모로서 해야 할 일, 어른들이 해야 할 일

 드라마 '굿 파트너' 한 장면

드라마 '굿 파트너' 한 장면 ⓒ SBS


그렇다면,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이혼 가정의 아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무엇보다 이혼을 경험한 아이들이 크나큰 '상실'을 겪고 있음을 인정하고 잘 애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물론, 이혼이 아이들에게 물리적으로 부모를 빼앗아 가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면접 교섭 조건에 따라 양측 부모를 모두 만날 수 있고, 재희의 경우 '언제든 원할 땐 아빠를 만날 수 있다'고 합의했다.

재희는 이를 알면서도 아빠를 만나러 가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아빠를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아는 사라 이모(한재이)와 외도를 하고 거짓말한 아빠 지상을 인정하는 순간, 재희는 이전의 아빠는 영영 잃어버리게 되었을 것이다. 따뜻하고, 유쾌하며, 음식을 만들어 주고 함께 놀아주던 아빠는 이제 재희 곁에서 사라졌다. 10회 재희는 이렇게 말한다.

"초음파 사진 보고 난 앞으로 아빠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이는 상실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아이들은 한쪽 부모를 심리적으로 떠나보내는 상실을 겪는다. 이로 인해 아이는 여러 가지 심리적 증상들을 보일 수 있다. 짜증이나 화가 늘기도 하고, 우울해하기도 하며, 친구들과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어른이라면 이런 아이의 마음을 수용해 주고, 상실감을 충분히 표현하도록 도우며, 스스로 마음을 정리해 갈 수 있도록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부부의 결혼 유지 여부와 상관없이 가족은 다양한 형태를 지닐 수 있으며, 가족의 형태에는 '정상'과 '비정상'이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재희가 "아빠는 왜 없나요?"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상실만 겪어내면 되겠지만, 이런 말들 때문에 재희는 사회적 편견과 동정 어린 시선까지 감내해 내야 했다. 나아가 주변의 시선으로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이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지, 너의 '잘못'이 아님을 분명히 이야기해 주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날의 합의서는 찝찝함이나 미련으로 가득 찬 불완전한 방점이 아닌 더 나은 부모로서 시작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은경의 변호사 유리는 "재희 잘 키우자"라는 말로 은경의 이혼이 마무리되는 걸 보면서 이렇게 내레이션한다(10회). 정말 그럴 수 있다. 이혼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이들은 자기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부부로서뿐만 아니라 부모로서의 모습도 점검하면서 드라마 속 은경처럼 부모의 역할을 고민하고, 보다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또한 힘들었던 관계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되찾게 되면,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도 빠르게 안정을 찾아간다. 그리고 각각의 부모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단단하게 성장해 간다.

<굿 파트너> 후반부에는 은경의 자아 찾기 여정이 그려질 것 같다. 은경이 자기 자신을 찾으면서 재희와의 관계 역시 좋아지길, 그래서 이혼을 경험한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길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굿파트너 이혼 자녀 장나라 지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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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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