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맨> 스틸컷
이화배컴퍼니㈜
어느 직업에 종사하든, 또 그 직업이 살인청부업자라 해도, 나이가 들면 성숙하고 모종의 경륜을 쌓게 된다. OTT 영화 <폭군>에서 차승원도 나이 든 킬러를 제법 구수하고 원숙하게 연기했다. 출생을 기준으로 하면 차승원이 1970년생이어서 사실 아직 노인 소리를 들을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폭군>에서 차승원이 연기한 초로의 킬러는 나름의 달관 같은 것을 보여준다.
리암 니슨은 실제 나이로나, 배우로서 '연식'으로나, 또 킬러 역에 익숙한 정도로나, 달관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야 할 '킬러'이자 원숙한 배우이다. 모든 사람에게 그렇진 않지만, 세월은 인간을 조탁한다.
제작과정에서도 니슨의 경륜이 힘을 발한다. 보통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 감독이 정해지고 감독이 출연 배우를 물색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주연이 감독을 선택했다. 제작사는 <원맨>의 초고를 읽은 리암 니슨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로버트 로렌즈를 찾아가 감독을 제안했다는 후문을 전한다. 보이는 대로, 배우가 감독을 간택한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2021년 개봉한 <마크맨>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어, 이 인연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수도 있다.
은퇴한 늙은 킬러가 나오는 영화에서는 대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제 사람 그만 죽이고 조용히 살려고 했더니, 철없고 잔혹한 범죄자가 나타나 은퇴한 킬러 주변의 선량한 사람을 괴롭히고... 그다음은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스토리다.
<원맨>은 비슷한 듯 다르다. 일단 스테레오타입은, 늙은 킬러 핀바 머피가 마지막 청부살인을 저지르고 은퇴한다. 오랜 단골이라고 할까, 살인 의뢰인이 은퇴를 말리지만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마지막 청부살인이 은퇴의 계기가 된다. 사실 계기라는 건 될 때가 돼서 일어나는 일을 자각하게 하는 표지에 불과할 때가 많다. 핀바 머피의 마지막 청부살인 대상이 총구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총을 든 사람에게 건넨 몇 마디가 핀바 머피의 마음을 흔든다.
은퇴 후의 삶은 식물을 키우는 것으로 채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관객이 예상한 대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한이 등장한다. 이후 해법은 늙은 킬러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우선 용서할 수 없는 악한에 대한 그의 첫 대응이 직접 응징이 아니다. 핀바 머피는 살인 청부를 받던 입장을 의뢰하는 입장으로 바꾸어 그의 살해를 '단골'에게 의뢰한다. 살인청부업자가 살인을 청부한 것이다. 대상이 IRA이기에 의뢰를 받을 수 없다고 거절당하자 핀바 머피가 이때는 큰 망설임 없이 직접 처리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핀바 머피에게 살해당한 악한은 IRA 조직원이었다. 영국 점령 상태인 북아일랜드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핀다 머피가 있던 북아일랜드 서쪽 해안 마을 글렌콜름킬로 잠적한 IRA의 일원이었다. IRA 하면 지금이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을 떠올릴 테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4년엔 영국의 북아일랜드 지배에 맞선 아일랜드 무장단체(Irish Republican Army)로 명성이 자자했다.
극중 시점은 영국군 공수부대가 데리 시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벌인 비무장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민간인 13명이 죽은 1972년 '피의 일요일(블러디 선데이)' 사건 발발 2년 뒤였다. 영화 시작과 함께 묘사된 테러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