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김동령, 박경태 감독의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실험적인 영화다. 40년 넘게 기지촌에서 매춘부로 일하던 '인순(박인순)'씨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같은 소재를 다룬 전작 <거미의 땅>의 다른 버전 같다. 이승도 저승도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듯 하다. 하지만 말과 말로 전해져 윤색을 거치고 살이 붙는 구전설화처럼 말 뭉치가 불어나 한 사람의 역사가 된다.
영화의 전반부는 기지촌 여성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인순씨의 생활을 쫓으며 옛 기억을 구술하는 방식을 취한다. 자신을 박인순이라고 소개하는 여자는 누구보다도 죽음을 가까이에서 많이 본 여자다. 하지만 자신은 수많은 죽음을 지나왔던 억세게 운 좋은 여자다. 과연 그 운이 그냥 얻어진 걸까?
그는 기지촌에서 일하면서 갖은 멸시와 학대 속에 지쳐갔다. 미군 남편을 만나 잠깐 미국에도 살았다. 그때 얻은 아이는 그곳에 놓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순씨의 삶을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서 듣는다는 것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또한 인순씨는 수락산 기슭에 자리한 뺏벌의 전설을 들려준다. "옛날 옛날에 말이야"로 시작하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생산해 낸다. 예로부터 뺏벌은 사람이 많이 죽었던 곳이고 배나무가 있던 지역이며, 미군 기지가 자리하고 있었던 이름 없는 곳이라고도 소개한다. 이름과 장소가 옮겨진 이상한 장소이며, 한번 들어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죽어서야 나갈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