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커밍 홈 어게인>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3.
가족이 함께 모여 어머니와 만찬을 나누는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아들이 그 과정에서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에 대한 장면들은 이 영화가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게끔 만들어준다. 애석하게도, 지금 당장 어머니를 생각하며 떠올리게 되는 과거의 장면들은 대부분 나빴던 일들이지만 말이다. 우리가 이따금 행복한 기억이 아니라 아픈 기억으로부터 더 커다란 미련을 얻게 되곤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표현이다. 항상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멀리서 던진 어머니의 농구공이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슛을 성공시키던 날처럼 함께 웃고 있던 날들도 분명히 있다.
그런 기억들로 인한 미련이 그로 하여금 현재의 모두를 포기하고 어머니에게 매달리게 하는 이유가 된다. 그 자신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서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오면 사실대로 이야기하면서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갈피를 제대로 잡을 때까지 어머니와의 시간을 연장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이제야 알게 되어서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스러운 2번의 항암치료를 끝낸 어머니가 더 이상의 연명 치료를 포기하고 안식을 얻겠다고 선언한 뒤에 불같이 반대하는 누나에 맞서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나서는 창래의 모습. 이는 완전한 이성의 영역에 반응한 행동이다. 여전히 그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이번에는 그 반대로 완전한 감성의 영역에 반응해 무너지고 만다.
04.
일반적으로 과거의 기억과 현재 상황이 교차되는 경우에 각각의 장면이 서로 호응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기억이 발단이 되어 다음의 상황이 이어진다거나 지난 경험의 결과로 인해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든가 하는 식이다. 영화 <커밍 홈 어게인>에서의 활용은 조금 다르다. 기억은 기억으로 존재하며 현재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요인일 뿐, 현재 상황을 어떻게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새로운 선택도 할 수가 없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어떤 상황에서도 바뀔 수 없는 고정된 값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영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분명히 짜인 극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 느껴지는 껍데기를 떼어내고 나면 허구로 이루어진 상황은 이 작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기자들의 연기는 허구일지 모르지만, 그 소스가 되는 상황과 감정은 모두 진짜인 셈이다. 예상 가능한 결말을 향해 나아가지만, 영화는 마지막까지 아들의 모습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는다. 결과값이 고정되어 있다는 뜻의 다른 의미는 결과보다 그 결과로 인해 남겨지게 되는 것들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며, 감독은 그 의미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 <커밍 홈 어게인>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05.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기자회견에 웨인 청 감독은 건강상의 이유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일이었지만 특별히 따로 전해 온 영상을 통해 그는 좋은 기회에 다시 한번 부산을 찾겠다고 말했다. 실망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 영화가 그의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이야기했듯 그와 절친으로 알려진 소설가 이창래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고,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으며, 1990년대에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음악 이문세의 '옛사랑'이 타이틀 OST로 활용되었다. 감독의 사랑하는 것들로 채워진 작품이 따뜻하지 않을 리가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려진 작품이 마음을 채우지 못할 리 없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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