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가 2011년, 서른 번째 시즌을 맞게 된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 울고 웃고 환호하고 분노했던 그 서른 해를 기념하고 되새겨 보고자 한다. 해마다 함께 기억할 만한 경기의 한 장면을 뽑고, 그것을 단면 삼아 그 시대의 한국야구를 재조명해보고자 기획을 마련했다.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했던 1982년부터 시작해 한 주에 한 해씩, 30주 동안 이어진다.... 기자말2009년 늦여름부터 기아 타이거즈는 확실히 쫓기고 있었다. '추락한 절대강자' SK 와이번스는 김광현과 박경완, 그리고 채병용이 줄줄이 쓰러지며 이가 모조리 뽑히고도 포기할 줄을 몰랐다. 후반기에 가세한 외국인투수 게리 글로버와 전병두가 각각 선발진과 불펜의 중심을 잡으며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하는가 싶더니, 시즌 막판 남아 있던 경기를 승리로 이끌며 기적적인 19연승으로 대추격전을 별였다.
그 사이 5.5경기차를 여유 있게 앞서 가던 기아 타이거즈는 1경기차까지 추격을 허용했고, 정규시즌 마지막 날에 이르러서야 1경기 차로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으며 진땀을 닦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두 해 연속 챔피언에 올랐던 경험과, 막판 19연승을 달리며 더 강해진 집중력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SK는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먼저 두 판을 내주고도 끝내 승부를 뒤집어내며 살아 돌아왔다. 3차전에서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3대 1로 신승하며 흐름을 반전시킨 다음 4차전은 8대 3, 5차전은 14대 3으로 대파하며 '극적인 리버스스윕'을 완성시키고 끝내 3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성공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치러지게 된 한국시리즈. 물론 체력 면에서나, 전반적인 전력이나 정규시즌에서의 상대 전적 등 모든 면에서 기아 타이거즈가 우위에 서 있긴 했지만, 지난 두 시즌 연속 우승의 관록에다가 온갖 절망적인 상황들을 이겨낸 기세를 업은 SK 와이번스도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2009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막을 올렸다.
광주에서 열린 1, 2차전은 기아의 승리였다. SK는 1차전에서 박재홍과 박정권의 적시타로 먼저 2점을 뽑고도 기아의 리더 이종범에게 역전타를 얻어맞았고, 정상호의 홈런으로 다시 동점을 만들었지만 8회 말 이종범에게 또다시 역전타를 맞으며 5대 3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2차전에서도 역시 기아 타이거즈가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선발 윤석민과 혼자서 두 개의 적시타를 때리며 팀 득점을 모두 만들어낸 최희섭의 활약으로 2대 1의 승리를 잡아냈다.
하지만 인천으로 옮겨 온 3차전과 4차전에서 SK가 연승하며 균형을 맞추었고, 일방적으로 끝날 것 같던 한국시리즈가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3차전은 기아 선발 구톰슨이 일찍 무너진 데 이어 구원등판한 서재응이 5회 말에 3연속 볼넷으로 만루를 만들어준 뒤 최정과 정상호에게 연속으로 몸에 맞는 공을 던져 밀어내기로만 두 점을 헌납하며 무너졌다.
기아는 김상현이 오랜만에 3점 홈런을 터뜨리며 반격했지만 SK는 박정권의 2점 홈런과 조동화의 1점 홈런으로 응수했고, 경기는 11대 6으로 SK의 시리즈 첫 승이었다. 그리고 4차전에서는 팔꿈치 인대 수술과 공익근무요원 입대를 앞두고도 등판을 자청한 SK 선발 채병용의 투혼이 빛났다. 채병용은 5.2이닝 동안 1점만 내주는 기적을 연출했고, 박재홍의 2점 홈런과 나주환, 조동화 등의 적시타를 묶어 4대 3으로 SK의 2승째.
그리고 잠실에서 이어진 5차전은 로페즈의 완봉승으로 기아가, 6차전은 선발로 나와 5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송은범의 활약으로 다시 1승씩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3승 3패로 나란히 맞선 채 10월 24일, 7차전 외나무 맞대결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7차전에서 한국 프로야구사상 최고로 꼽힐 만 한 드라마와 명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사상 최고의 명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