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가 2011년, 서른 번째 시즌을 맞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고 웃고 환호하고 분노했던 그 서른 해를 기념하고 되새겨 보고자 한다. 해마다 함께 기억할 만한 경기의 한 장면을 뽑고, 그것을 단면 삼아 그 시대의 한국야구를 재조명해보고자 기획을 마련했다.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했던 1982년부터 시작해 한 주에 한 해씩, 30주 동안 이어진다. - 기자말

1996년, 현대그룹이 470억 원이라는 거액으로 태평양 돌핀스를 사들이며 프로야구 무대로 진입했다. 프로야구 창설 당시 '격이 맞는 기업이 없다'는 이유로 참가를 고민했던 유일한 초거대기업 삼성에 엄청난 자극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한민국 사회의 구석구석을 주무르던 삼성과 현대의 격돌이, 비로소 프로야구판에서도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 마침 IMF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쌍방울 레이더스로부터 특급포수 박경완을 9억 원에, 그리고 당대 최고의 왼손 마무리투수 중 한 명이었던 조규제를 4억 원에 데려오는 화끈한 투자를 통해 현대 유니콘스가 불과 창단 3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구어내면서 전쟁은 시작되었다. 자금력, 그리고 우승에 대한 갈망 모두 현대에 뒤질 리 없던 삼성이 곧장 또 하나의 좌초선인 해태 타이거즈에서 줄줄이 핵심선수와 감독까지 빼가며 맞불을 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은 늘 삼성과 현대가 저 하늘 높은 곳에서 '마징가Z와 로봇 태권V'의 대결을 벌이고, 나머지 여섯 구단은 지상에서 나름대로 치고받으며 두 개의 전선을 그은 듯 한 양상을 이어갔다. 2000년에는 현대가 우승했고, 2001년에는 현대와 삼성의 패권싸움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13.5경기차 3위 팀 두산이 가을 한 순간을 노리고 달려 나와 우승컵을 가로채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삼성이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했고, 2003년에는 다시 현대가 정상을 탈환했다.

전면전, 야구실력·돈·자존심을 걸고 싸우다

전쟁은 해마다 우승컵을 나누어 들었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1996년 현대가 창단하던 해부터 선수 선발을 놓고 돈싸움에 법정싸움까지 벌이는가 하면, 때로는 양 팀 투수들이 서로 간판타자를 향해 보복구를 던지며 으르렁대기도 했고, 양 그룹의 고위인사들은 맞대결하는 날 직접 야구장을 찾아 특별보너스를 걸며 '오늘만은 이길 것'을 당부하며 승부의 불길에 부채질을 하기도 했다. 배영수의 도발을 정명원이 응징하고, 심정수의 방망이를 이승엽이 꺾는 나날이 이어졌다.

2004년은 삼성과 현대의 거인전쟁이 정점에 달했던 해다. 2003년 아시아홈런 신기록을 세우며 야구장으로 잠자리채 관중을 몰고 왔던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났지만, 삼성은 타격왕 경력의 당대 최고 2루수 박종호에게 28억 원을 안겨주며 바로 현대로부터 빼와 균형을 다시 맞추었다.

10이닝 노히트노런, 명예로운 불운의 주인공 배영수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뛰어난 투구를 보여준 투수는 배영수였다. 하지만  그가 거둔 성적은 단 1승도 없이 2패, 그리고 '10이닝 노히트노런'이라는 비공인의 '기억' 뿐이었다.

▲ 10이닝 노히트노런, 명예로운 불운의 주인공 배영수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뛰어난 투구를 보여준 투수는 배영수였다. 하지만 그가 거둔 성적은 단 1승도 없이 2패, 그리고 '10이닝 노히트노런'이라는 비공인의 '기억' 뿐이었다. ⓒ 삼성 라이온즈


그 무렵 이미 현대그룹의 지배구조에 변동이 생기고, 유니콘스의 모기업 하이닉스의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돈싸움' 면에서는 이미 균형이 많이 무너져 있었다. 2000년 연고지 인천을 떠난 현대는 서울 진입 직전에 제동이 걸리며 떠돌이 신세로 전락해 있었고, 그와 함께 신인 1차 지명의 기회를 봉쇄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수코치 김시진과 타격코치 김용달을 중심으로 한 코칭스태프는 그동안 확보한 자원들을 부지런히 가공해내며 전력의 하락을 저지하고 있었고, 창단 이후 늘 라이온즈에 한 발 앞서 있던 유니콘스의 선수들 역시 여전히 강자의 여유를 지키고 있었다.

2004년, 삼성은 17승의 다승왕 배영수와 36세이브의 구원왕 임창용을 축 삼아 최강의 마운드를 구축하고 있었다. 거기에 1,2,3루수 골든글러버 양준혁-박종호-김한수가 내야를 지키고 있었고 역시 골든글러버 박한이가 중심에 선 외야진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에 맞선 현대는 8개 구단 최강의 스카우트진이 발굴해 온 16승의 외국인투수 피어리로 맞섰고, 34세이브로 구원 2위에 오른 조용준이 마무리를 책임지고 있었다. 야수진도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고의 유격수로 군림하던 박진만과 역시 그 해 도루왕이자 당대 최고의 중견수이기도 한 전준호가 내외야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타선의 핵은 그 해 타격, 장타율, 출루율 부문 1위에(볼넷 1위, 홈런, 안타 2위, 타점 3위) 오른 외국인 타자 브룸바였다.

삼성은 이승엽의 공백이 있었고, 외국인 선수들이 줄줄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현대도 심정수(28홈런)와 정민태(7승)와 김수경(11승)이 다소 부진하며 기대만큼을 채워주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삼성의 권오준(11승)과 현대의 오재영(10승)이 떠올라 선배들의 빈틈을 채우며 신인왕 경쟁에 나선 것까지도 팽팽했다.

그 해 정규리그는 현대의 1.5경기차 우승으로 맺어졌다. 모든 면에서 팽팽하거나, 오히려 삼성 쪽이 우세한 양상이었지만, 승부처는 역시 맞대결이었다. 현대는 삼성을 만나 10승 7패 2무승부로 앞섰고, 딱 그만큼의 차이로 먼저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삼성은 플레이오프에서 3위팀 두산을 만나 3승 1패로 간단히 꺾으며 2001년의 아픈 기억을 설욕했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한 번 운명의 맞대결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린 것은 10월 21일이었다.

최후의 결전장, 2004년 한국시리즈

그 해 한국시리즈는 밤 10시 이후에는 새 이닝을 시작할 수 없다는 새로운 규칙이 적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막강한 투수력과 그보다 더 치열한 자존심으로 맞서는 두 팀에게 밤 10시라는 제한은 너무 짧은 것이라는 점은 곧 현실에서 드러나게 된다.

1차전에서는 피어리와 배영수의 에이스 맞대결에서 현대가 먼저 승기를 잡으며 1승을 챙겼지만, 이튿날의 2차전은 8-8로 맞선 채 9회를 마치자 이미 제한시간을 넘기며 첫 무승부를 기록하게 됐다. 이어 대구로 옮겨 치러진 3차전을 삼성이 이겨 균형을 맞춘 뒤 4차전에서도 삼성의 배영수가 10이닝동안 무안타 무실점으로 버티고도 타선이 한 점을 만들지 못해 12회까지 0-0으로 맞서며 '비공인 10이닝 노히트노런'이라는 복잡한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어 5차전과 6차전을 다시 나누어 가진 뒤 10월 29일에 잠실에서 치러진 7차전마저 6-6으로 맞서며 세 번째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미 7전4승제의 마지막 일곱 번째 판까지 치렀지만 두 팀은 고작 2승씩만을 챙겼을 뿐이었고, 이제 시리즈는 도대체 몇 차전까지 이어지게 될지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결국 한국시리즈는 11월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두 팀은 새로이 시구자들을 섭외하는 부산을 떨어야 했다.

수중전, 아니 진흙탕 속에서의 몸부림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은, 5년간 이어온 전쟁의 치열함과 처절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 수중전, 아니 진흙탕 속에서의 몸부림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은, 5년간 이어온 전쟁의 치열함과 처절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 삼성 라이온즈


8차전에서는 '10이닝 노히트노런'이라는 명예로운 '불운'의 주인공 배영수의 불운이 다시 이어졌다. 7회에 현대의 전근표가 삼성 배영수를 상대로 예상 밖의 역전 투런 홈런을 날렸고, 그것을 결승점 삼아 현대가 3-2로 이겨 3승 고지에 먼저 올라섰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진땀나는 기록과 지루하도록 이어졌던 날카로운 평행선의 결정판은, 역시 9차전이었다. 11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만 한국시리즈의 다섯 판째가 열린 그 날 서울에는 폭우가 쏟아졌고, 그라운드는 삽시간에 진흙탕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도저히 야구경기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이미 9차전까지 이어진 한국시리즈를 10차전까지 넘길 수는 없었고, 경기는 무조건 강행되었다.

정점 위의 정점, 9차전

경기는 1회 말에 삼성에 1점을 내주고는 곧바로 2회 초 반격에 대거 8점을 만들어내며 역전한 현대의 페이스였다. 2회까지 8-1이라면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경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 삼성이 4회 말에 3점, 6회 말에 다시 한 점을 야금야금 따라가며 점수 차는 8-5까지 좁혀졌지만, 현대는 무적의 마무리투수를 가지고 있었다.

2002년 데뷔 후 해마다 평균 30세이브를 쌓아올리며 조만간 김용수의 통산기록을 넘어서는 것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던 젊은 수문장 조용준이었다. 김재박 감독은 8회말 조용준을 투입하며 마침표를 찍으려 했다.

하지만 역시 폭우가 문제였다. 이제 경기는 수중전이라는 말조차 민망할 진흙탕 속 몸부림이었다. 조용준은 첫 타자 신동주에게 땅볼을 유도했지만 3루수가 실책을 범하고 말았고, 조용준은 박종호를 볼넷으로 내보낸 데 이어 조동찬에게마저 안타를 맞으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미묘한 순간에도 반전은 숨어있었다. 조동찬의 타구가 우익수 앞에 떨어졌고, 당대 최강의 어깨를 자랑하던 우익수 심정수의 송구를 의식한 2루 주자 신동주가 3루를 돌다가 뒤늦게 급브레이크를 밟자 2루를 돌아 3루를 향하던 대주자 강명구가 미아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가 유유히 전달되어온 공에 태그당하면서 1사 1,3루. 박한이의 2루 땅볼로 다시 한 점을 따라가 8-6까지 추격할 수 있었지만, 결정적인 역전의 찬스는 그렇게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9회 말, 상황은 2사 1,2루까지 몰려가 있었고, 타자는 또다시 8회말 첫 타자로 나와 3루수 실책으로 살아나가며 위기상황을 만들었던 신동주였다. 이번에도 신동주는 조용준의 공을 제대로 맞히지 못했고, 그의 타구는 내야에 어설프게 솟아오르는 평범한 플라이볼이었다. 더구나 공을 향해 팔을 벌린 것은 수비의 귀재 박진만이었고, 1,2루에 있던 주자들은 달리고 있었지만 고개는 이미 체념한 듯 숙여진 상태였다.

두 팀의 선수들과 2만여 관중들은 그 해 시리즈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며 허리를 펴고 있었다. 하지만 눈이 따가울 지경으로 퍼부어대던 빗속에서 박진만은 공의 행방을 잃었고, 그 타구가 내야의 진흙탕을 뒹구는 사이 다시 한 명의 주자가 홈을 밟으며 점수차는 8-7.

중계화면이 흐릿해질 지경으로 퍼붓는 빗속에서 실책을 거듭하는 야수들. 마운드 위의 조용준은 지쳐보였고, 상대팀의 주자는 3루까지 진출한 아찔한 상황. 삼성 쪽 더그아웃에는 생기가 살아났고, 반대로 현대 쪽 더그아웃은 침울했다. 하지만 김재박 감독으로서도 조용준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 순간, 그를 대신할 수 있는 투수는 없었고, 그것은 조용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조용준은 세상 모두와 맞선 듯 이를 악물었고, 눈빛을 번뜩였다.

조용준 폭우와 야수들의 실책, 그리고 밀리면 뒤집어진다는 압박감 속에서도 조용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 조용준 폭우와 야수들의 실책, 그리고 밀리면 뒤집어진다는 압박감 속에서도 조용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 현대 유니콘스


타석에 들어선 것은 대타 강동우. 어떻게든 그를 잡아내야만 하는 조용준. 8-1의 리드를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기세와 분위기의 우열을 바꾼다는 의미였고, 그렇게 된다면 그 날의 승리는 물론이고 이어질 10차전의 승부 역시 기대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순간 조용준은 안타를 맞아도, 폭투를 던져서도, 혹은 타자를 걸려보내 역전주자를 만들어도 안 되는 벼랑 끝에 서있었다.

게다가 야구장 잔디밭 어디든 타구가 떨어지기만 한다면, 야수들이 공을 잡고 던지고 받는 모든 순간에서 얼마든지 실책이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폭우. 빠른 발의 타자. 어쩌면 번트만 대도 내야안타가 될 확률이 절반은 넘지 않을까 싶었던 극단적인 상황이었지만 조용준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공을 던졌고, 강동우는 자신있게 방망이를 돌렸다.

하지만 강동우가 잡아당긴 잘 맞은 공은 흙탕물을 몇 번 튕기며 1루수 이숭용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고, 이숭용은 공을 쥔 글러브를 높이 치켜든 채 직접 달려가 1루 베이스를 밟으며 끈질겼던 9차전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조용준이 그 저승사자 같은 얼굴로 포효했고, 그제서야 표정이 풀어진 박진만이 마운드로 달려갔다. 한국시리즈 MVP는 삼성의 타자들과 현대의 수비수들과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무시무시한 장대비를 꽂아댄 하늘까지 홀로 상대해 이긴 조용준의 것이었다.

현대의 마지막 우승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9회말 2사에서 삼성 강동우의 타구를 잡은 이숭용이  1루를 밟는 순간 더그아웃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달려나오고 있다.

▲ 현대의 마지막 우승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9회말 2사에서 삼성 강동우의 타구를 잡은 이숭용이 1루를 밟는 순간 더그아웃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달려나오고 있다. ⓒ 현대 유니콘스


절정, 그리고 종막

그 해는 현대와 삼성 두 재벌기업이 야구장에서 벌인 전쟁의 절정이었으며 마지막 장이기도 했다. 그 시즌을 끝으로 삼성은 백억을 던져 현대의 심정수와 박진만을 데려갔고, 한 해 전에 데려간 박종호와 함께 현대 출신 선수로 내외야의 핵심을 재구성하는 이식수술을 완성하며, 더 이상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강의 전력을 구축하게 된다.

현대의 김재박 감독은 '돈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심정수와 박진만과 박종호를 경쟁팀에 내주고도 전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 해는 현대 유니콘스가 마지막으로 우승을 했던 해로 남게 되었고, 그 이듬해부터는 삼성 라이온즈의 독주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삼성 현대 2004년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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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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