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 심정수심정수는 이승엽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고, 2003년 홈런왕 대결의 2인자였지만, 그 해 투수와 감독들이 가장 두려워한 타자는 오히려 이승엽이 아닌 심정수였다.
현대 유니콘스
심정수는 통산기록 면에서도 이승엽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 앞뒤에 늘어선 동료 타자들의 지원사격도 이승엽만큼 받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으며, 결정적으로 홈경기 때마다 찾아와 열광적으로 응원해줄 팬들을 가지지 못한 수원 '임시거주팀'의 소속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승엽처럼 잠자리채 관중을 몰고 다니지도 못했고, 홈런행진 역시 끝내 53개에서 멈춤으로써 그 해의 승자가 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심정수를 단순한 '조연'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그가 투박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간결한 스윙을 바탕으로 이승엽보다도 훨씬 높은 타율을 기록한 정확성 높은 기술적인 타자였다는 점, 그리고 단 세 개 차이로 멈춰선 홈런포도 '비거리'라는 면에서는 오히려 이승엽을 능가하는 양질의 것들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타격 3관왕에 도전했던 그는 .335(2위), 53홈런(2위), 142타점(2위), 110득점(3위), 154안타(6위), 124볼넷(1위)라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시즌 기록을 남긴 타자 중 한 명이 되었지만, 결국 무관에 그치고 말았다. 그에게 한 가지 위로가 된 것이 있다면, 그 해 한국프로야구 선수협의회에서 동료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것은 이승엽이 아닌 심정수라는 점이었다.
극적인 마침표, 56홈런
10월 2일의 경기는 삼성의 그해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였다. 그제껏 이승엽의 홈런 수는 55에 머물고 있었고, 이제 나라 안팎의 기대와 이목은 이승엽을 경기 전날 가위에 눌리게 할 만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날 경기가 열린 곳은 대구였고, 상대팀은 또다시 롯데 자이언츠였다.
1회 초에 롯데에 먼저 두 점을 빼앗긴 뒤 1회 말 반격에서 김종훈이 몸에 맞는 공으로 진루했지만, 3번으로 나선 양준혁이 병살타로 물러나며 기회는 날아가고 말았다. 그래서 그날따라 3번이 아닌 4번에 배치된 그의 첫 타석이 돌아온 것은 2회였다.
상대투수는 2년차 신인 이정민이었고, 이승엽과는 첫 대결이었다. 하지만 경기상황으로나, 야구장 안팎의 상황으로나, 그에게도 정면대결 말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 상황에서 이정민은 1,2구로 연거푸 직구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하나씩 던졌고, 3구 역시 직구였다. 다만 최대한 낮은 코스였고, 최대한 바깥 쪽을 노린 공이었다.
그 순간 이승엽의 배트가 돌았고, 정확히 걸리긴 했지만 맞아나가는 타구의 궤적이 너무 낮았다. 자칫 내야수에게 직선으로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직선의 타구였다. 하지만 그 공은 좀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빳빳하게 날았고, 순식간에 대구구장 좌중간쪽 외야 펜스 뒤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펜스와 전광판에서는 폭죽과 불꽃이 솟구쳤고, 관중석에서는 관중들의 함성이 폭발했다. 따지고 보면 '비공인'이긴 하지만, '아시아 시즌 최다홈런기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해 홈런쇼의 거대한 마침표였다.
56홈런, 그 이후
▲56호 홈런의 순간극적인 56호 홈런의 순간, 축포가 터지고 있다삼성 라이온즈
그해 심정수가 날린 홈런은 53개였다. '아시아 신기록'이 되기 위해 도달해야 했던 56개에 세 개 모자랐고, 종전까지 이승엽이 가지고 있던 '한국 신기록'을 깨기 위해 필요했던 54개에도 한 개가 모자란 숫자였다. 하지만 그것은 이승엽을 제외하면 50홈런 고지를 넘어선 유일한 기록이었고, 그해 모든 투수와 감독들이 가장 두려워한 타자는 이승엽이 아닌 심정수이기도 했다.
마지막 경기에서도 되새겨볼 만한 장면들이 있었다. 이승엽의 56호 홈런이 터져 나오는 순간 대부분의 기자들도 취재를 중단했고, 사실상 그해의 시즌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가운데 최하위 팀 롯데는 이승엽과 양준혁에게 홈런을 맞고도 차곡차곡 점수를 챙겨가며 그 날의 승리를 가져가 간신히 3할 승률을 채웠고, 이정민은 56호 홈런의 제물이 된 얼떨떨한 충격 속에서도 5이닝을 3실점으로 버텨 프로데뷔 첫 승의 감격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불꽃놀이를 통해 불러모은 관중들은 길게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이듬해, 자유계약선수 자격과 함께 '아시아 홈런왕'이라는 호칭을 얻게 된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나고, 라이벌을 잃은 심정수도 허탈감에 사로잡힌 듯 절반 이상 떨어진 홈런 페이스로 몸살을 앓자, 야구장은 다시 휑하니 비어갔다. 2004년 한국프로야구 총관중은 최악이라던 2002년보다도 오히려 6만 명이 적은 233만 명으로 주저앉았고, 특히 대구는 2003년의 절반 수준인 19만 명으로 격감하고 말았다.
홈런과 스타가 관중을 불러 모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약발이 길지 못하다는 점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오히려 한국프로야구에 제대로 다시금 핏기가 돌기 시작한 것은, 홈런이 줄고 확실한 스타도 없었지만 구단들이 비로소 절박함을 느끼고 팬들을 향해 눈을 돌린 2007년과 2008년 무렵 이후였다는 점과 비교해 곱씹어볼 만한 지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