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정규리그 MVP그는 한국프로야구사에서 하위권 팀이 배출한 유일한 정규리그 MVP다.
롯데 자이언츠
꼴찌 팀의 에이스로 재기하다
더 이상 끈질기게 그의 재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 남지 않았을 2000년에 그는 드디어 12승을 기록하며 다시 나타났고, 그 이듬해에는 내친 김에 15승으로 전진하며 다승왕 타이틀까지 따내는 기적을 연출한다.
하지만 1997년에 '문동환-손민한 쇼크'로 꼴찌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비상해 1999년 준우승의 기적까지 연출했던 팀은 손민한이 다승왕으로 화려하게 돌아온 2002년 다시 꼴찌로 추락해버리고 만다. 손민한은 롯데라는 팀과의 바이오리듬이 엇갈리는 선수거나, 아니면 약체팀의 기둥이라는 슬픈 운명을 점지받은 선수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바로 그 2001년부터 롯데 자이언츠라는 팀의 본격적인 비극은 시작됐다. 한 명의 감독이 심장마비로 떠나고, 다시 두 명의 감독이 시즌 중에 잘려나간 뒤에도 다시 한 시즌을 더 치르도록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초유의 '4년 연속 꼴찌'의 신화가 작성된 것이다.
그 사이 1999년에 0.372라는 기록적인 타율로 타격왕에 오르며 35홈런까지 곁들였던 리그 최강의 타자 마해영이 '선수협 주동자'라는 이유로 2001년 시즌을 앞두고 쫓겨났고, 그와 짝을 이루던 거포형 포수 임수혁이 쓰러졌으며, 다시 2001년 시즌이 끝난 뒤에는 역대 최고 출루율(0.503)의 신화를 쓴 최고의 외국인타자 호세가 짐을 챙겨 태평양을 건넜다.
그리고 그 시기에 손민한 역시 몸과 마음의 병을 얻어 2년간 7승밖에 올리지 못하는 슬럼프를 겪었고, 2004년에는 선수인생에서 처음으로 마무리투수로 전향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2005년, 다시 선발투수로 돌아온 그는 두 번째 재기에 성공한다. 선발투수로서 26번, 구원투수로서 2번 등판하며 모두 168.1이닝을 던졌고, 2.46의 평균자책점과 18승 7패 1세이브를 기록했다. 특히 선발투수로서 평균 6.1이닝을 소화했고, 특히 6회 이전에 강판한 것이 5번에 불과했을 만큼 평균치로서 드러낼 수 없는 '안정성'이라는 면에서도 최고의 능력치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결국 그의 성적은 다승과 평균자책점 부문에서 전체 1위에 해당했고, 그렇게 2관왕에 등극했다.
그해 롯데 자이언츠는 5위를 차지한다. 비록 3위 팀 SK와는 14.5경기, 4위 팀 한화와는 6경기차가 벌어진 '확실한' 하위권이긴 했지만, 그것은 연속꼴찌기록이 5년으로 이어지는 것을 저지한 의미 있는 반등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럴 만한 전력을 갖추고 이룬 당연한 성적은 아니었다. 그해 롯데의 팀 타율과 팀 출루율은 단연 꼴찌인 0.253이었고, 팀 홈런과 팀 도루도 7위에 해당하는 처참한 상태였다. 상위권에 해당하는 팀기록은 실책(3위), 삼진(2위), 도루실패(2위) 등 나쁜 것들뿐이었다.
그래서 그나마 나은 것은 4.30으로 전체 4위에 해당한 팀 평균자책점을 비롯한 투수 쪽 기록이었고, 그것에 의지해 롯데는 꼴찌를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에서 손민한의 위력이 작용했다. 그는 그 자신을 제외하면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가 단 한 명도 없는 가운데 고군분투했고, 혼자 힘으로 팀 평균자책점을 무려 0.32나 끌어내리는 괴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만약 손민한이 없었다면 한국프로야구의 팀 최다연속꼴찌 기록은 '5' 이상으로 늘어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