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10회 우승의 명장 김응용 감독이미 30대의 나이에 실업팀과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고,
40대 초반부터 프로팀의 감독으로 일하며 통산승수, 통산승률, 통산우승횟수 등의 모든 면에서 누구도 넘보지 못할 업적을 남겼다. 2002년 삼성 라이온즈에서의 우승은 그가 프로팀 지도자로서 이룬 열 번째 우승이었다.
삼성 라이온즈
2002년의 가을야구, 10년의 운명을 가르다삼성은 홈런, 타점, 득점, 장타율의 네 부문을 석권한 이승엽과 최다안타 타이틀을 차지한 마해영에 FA계약을 통해 복귀시킨 양준혁으로 클린업트리오를 구성하고 있었다. 마운드 역시 17승의 임창용과 13승의 평균자책점왕 엘비라가 이끌고 100%의 승률왕 김현욱이 뒤를 받치는 의심의 여지 없는 최강의 진용을 꾸리고 있었다.
그에 비하자면 LG쪽에서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선발진을 이끄는 것은 8승의 만자니오와 6승의 최원호였고, 그 공백은 중간에서 100이닝 이상씩을 던지며 10승을 올린 장문석과 8승을 올린 이동현, 그리고 돌아온 마무리 이상훈으로 간신히 메워가고 있었다. 야수진은 그나마 나은 형편이긴 했지만, 삼성에 비해 팀타율은 2푼 이상, 팀홈런은 두 배 가까운 차이로 약세였다. 그 해 트윈스에서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것은 .293의 이병규였다.
정규리그에서 간신히 4위에 턱걸이한 LG는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최동수의 활약으로 현대를, 플레이오프에서는 박용택의 활약으로 KIA를 누르며 한국시리즈에 올라섰다. 하지만 그 사이 7경기의 혈투를 치러야 했고, 그렇지 않아도 넉넉지 못한 선발진은 이미 고갈되어버린 상태였다.
그대로 비교해도 한참 기우는 삼성과 LG의 승부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이 있을 수 없었다. 문제는 몇 차전까지 가느냐였고, 문제는 삼성의 그 수많은 스타들 중 누가 그 해 한국시리즈의 주인공이 되느냐였다.
월드컵 때문에 한참 뒤로 밀린 일정 탓에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린 것은 11월 3일이었다. 그리고 첫 경기는 엘비라의 호투 속에 완력의 차이 그대로 4대 1의 삼성 승리였다. 2차전은 외국인투수 만자니오가 한 점만 내주는 호투를 펼치고 조인성이 홈런을 터뜨리는 활약 덕에 LG가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3차전에서는 최원호가 초반부터 난타당한 데 이어 4차전에서는 믿었던 마무리 이상훈까지 실점하며 무너진 LG가 1승 3패까지 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5차전에서 마해영에게만 홈런 두 방으로 다섯 점을 내주는 곤욕을 치르고도 필승카드 이동현과 장문석을 총동원해 간신히 뒷문을 닫으며 한 점차로 LG가 이기면서 시리즈 전적은 2승 3패로 이어졌다. 하지만 다시 대구로 옮겨 치른 6차전에서 LG는 3회 초 먼저 최동수의 석점 짜리 홈런으로 기선을 잡고도 2,3,4회에 연속실점하며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제 더는 버티기 어려운 한계가 느껴지는 순간이었고, 시리즈 전체의 승부의 추가 확연히 기울어지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6회 초에 찾아온 1,2루의 찬스에서 LG의 김성근 감독이 던진 승부수가 판도를 안갯 속으로 밀어넣었다. 권용관의 자리에 김재현을 대타로 기용했던 것이다. 1994년 신인으로서 우승의 주역이 되었고, 90년대 내내 최강 LG시대를 이끌었던 영웅. 하지만 고관절이 썩어 들어가는 치명적인 병을 얻으며 달릴 수 없게 된 그는 선수인생의 기로에 서있었다. 물론 2사 상황에서 달릴 수 없는 타자를 세운다는 것은 감독으로서도 배수진이었다.
어지간한 짧은 안타로는 1루에서조차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장타가 아니고는 타점을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 중에도 늘 당겨치던 김재현을 향해 상대팀이 극단적으로 수비진을 우측으로 밀어놓는 시프트를 펼칠 때마다 '피하려고 하지 말고, 더 멀리 때려서 넘기라'고 주문하던 김성근 감독은 그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한 번 정면승부를 주문했던 것이다.
김재현은 선수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그 타석에서 역시 정면대결을 벌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밀어치기였다. 노장진이 던진 바깥쪽 150킬로미터짜리 직구를 결대로 밀어쳤고, 공은 그대로 좌중간을 날카롭게 가르며 두 명의 주자를 모두 홈으로 불러들였다. 담장까지 뻗어 가는 장타를 날린 김재현은 절뚝거리며 간신히 1루에 안착했고, 그것은 그대로 경기장의 분위기마저 LG 쪽으로 끌어가는 내상 깊은 일격을 삼성에 가하게 된다.
김재현의 2타점으로 6대 5로 재역전되었고, 그 분위기를 타고 8회 초에는 또다시 최동수와 조인성이 연속적시타를 때려 점수 차를 9대 5까지 벌려놓았다. 삼성도 8회 말 김한수의 희생플라이로 추격전을 벌였지만, 여전히 석 점 차가 남겨진 채 9회 말이 시작되었다. 그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시리즈 전적은 3승 3패로 돌아가게 되고,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단판 승부로 몰려가게 되어 있었다.
8회 말 2사부터 LG는 마무리 이상훈을 마운드에 올렸고, 이상훈은 1,2루 위기에서 진갑용을 플라이로 잡아내며 최고 마무리의 위용을 확인시켰다. 그리고 9회 말, 삼성의 첫 타자는 공격력이 가장 빈약한 9번 김재걸이었고, 이미 승부에 대한 기대를 접은 김응용 감독도 굳이 대타를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김재걸이 중견수 키를 넘기는 큼직한 타구를 날리며 2루까지 달려 나갔고, 1번 강동우가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2번 브리또가 다시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 나가면서 두 번째 주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승엽. 그 해 스물 여섯의 나이에 이미 네 번째 홈런왕에 오른 그는 이상훈의 2구째 밋밋한 슬라이더를 날카롭게 당겨 쳤고, 타구는 순식간에 대구구장의 우중간 펜스를 훌쩍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석 점 홈런. 까마득해 보이던 9회 말 석 점 차의 간격을 순식간에 증발시켜버린 극적인 동점 홈런이었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장면은 그 다음에 숨어있었다. 이승엽의 뜻밖의 동점홈런이 불러일으킨 흥분이 채 식기도 전, 이상훈을 대신해 마운드에 오른 LG 투수 최원호의 세 번째 공이 바깥쪽 높은 코스로 날아들자 마해영이 그것을 놓치지 않고 통타해 우측 펜스를 그대로 훌쩍 넘겨버리고 말았다. 거짓말 같은 끝내기 홈런. 그것으로 그 해의 모든 승부가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