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갈매기, 호세2001년의 호세는 한국프로야구 30년 역사상 가장 공포스러운 타자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해 9월 18일 배영수의 턱에 작렬한 호세의 주먹은 무려 4년간 이어진 롯데 자이언츠의 '꼴찌악몽'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롯데 자이언츠
그 해 홈런왕은 39개를 넘긴 이승엽이었고, 타점왕은 113타점의 우즈였다. 하지만 그 해 최고의 타자는 단연 펠릭스 호세였다. 99년에 이미 마해영, 박정태와 클린업트리오를 이루어 롯데 자이언츠를 한국시리즈까지 이끌었던 호세는 2001년, 더욱 압도적인 모습으로 한국무대에 복귀했다.
6월 20일과 21일에는 한국프로야구사상 첫 연속게임 만루 홈런을 날렸고, 6월 17일부터는 무려 62경기 연속경기 출루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그 기간 동안 무려 77개의 볼넷을 얻었는데, 그 대부분이 넓게 보자면 '고의'에 의한 것들이기도 했지만 특히 포수가 일어선 채 네 개의 공을 받은 경우만 하더라도 20개에 달할 정도였다(시즌 내내 얻은 볼넷은 127개, 고의사구는 28개였다).
물론 그것은 호세의 압도적인 위력 때문이었다. 그는 정확성(.327의 타율)과 힘(36개의 홈런)을 겸비한 타자였을 뿐 아니라, 투수의 유형에 따라 좌우타석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스위치타자이기도 했다. 물론 좌우 어느 타석에서라도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파워까지 갖추고 있었고, 실제로 1999년 5월 29일에는 전주 쌍방울 레이더스전에서 4회와 8회,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서 홈런을 날려 '최초의 한 경기 좌우타석 홈런'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 해 롯데 자이언츠에서 호세를 제외하면 경계할 만한 타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미 두 해 전의 파트너 마해영과 임수혁이 자리를 비웠고, 박정태는 2할 5푼에도 못 미치는 타율을 기록하며 깊은 부진에 빠져 있었다. 대신 중거리포 조경환이 3할 언저리의 타율에 33개의 2루타를 때려내며 뒷받침하고 있었지만, 파괴력이라는 면에서 99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상대 투수들은 호세와 대결해야 하는 부담을 한 개의 출루와 간단히 맞바꾸고도 그리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2001년은 순위 싸움이 역사상 가장 치열한 해이기도 했다. 삼성과 현대가 시즌 내내 멀찍이 앞서나가긴 했지만, 4위 팀과 8위 팀의 격차가 결국 2경기에 불과했을 정도였다. 그 치열한 어깨싸움의 와중에 최하위로 처져있던 7월 24일 김명성 감독이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은 롯데 자이언츠는 우용득 감독대행을 중심으로 4강 복귀를 다짐했고, 그 반격의 중심에는 물론 호세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6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리며 막판 총력전을 벌이던 2001년 9월 18일, 마산구장에서 빈볼을 둘러싸고 벌어진 몸싸움이 두 선수와 두 팀의 운명에 생각보다도 훨씬 커다란 파장을 남겼다. 그 날 롯데가 4대 3으로 앞서있던 7회 말, 삼성 투수 배영수는 호세에게 거푸 세 개의 공을 몸 쪽으로 던진데 이어 네 번째 공마저 등 뒤로 던져 1루로 내보냈고, 다음 타자 얀에게마저 팔꿈치를 때리는 공을 던졌다.
그러자 화가 난 타자 얀이 타석을 벗어나 마운드를 향해 두어 걸음을 뗐고, 주심과 포수가 얀을 막아서려던 순간 모두의 시야 밖에 있던 1루 주자 호세가 마운드를 향해 돌진했다. 배영수의 왼쪽 뺨을 향해 체중이 제대로 실린 호세의 라이트 훅 펀치가 날아들었고, 배영수는 그대로 그라운드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그 사건으로 호세는 남아있던 정규리그 8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고, 그제껏 이어가던 연속경기 출루 기록을 62에서 마감해야 했다. 물론 이승엽과 한 개 차이로 각축을 벌이던 홈런왕 경쟁도 포기해야 했고, 그 홈런왕 타이틀만 얹는다면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었을 시즌 MVP의 영예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롯데 자이언츠였다. 그 해 117경기에서 36홈런 102타점 .335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던 주포를 잃은 롯데는 6위에서 8위로 미끄러졌는데, 그것은 역대 팀 최다연속기록인 4년 연속 꼴찌행진의 출발점이었다.
그 해 겨울 롯데와 메이저리그 몬트리올 엑스포스 사이에서 이중계약을 맺은 호세는 롯데의 요청에 의해 KBO로부터 '영구제명' 처분을 받았고, 그렇게 수년간 사라져간 중심타자들의 빈자리를 홀로 메워내던 호세라는 거대한 기둥이 뽑혀나간 자리를 롯데 자이언츠가 다시 채워 넣기까지는 적어도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최고의 투수, '갈베스'물론 배영수에게도 후유증은 있었다. 그는 그 해 13승을 거둔 거물이긴 했지만, 아직 여린 입단 2년차의 신인일 뿐이었다. 그는 그 사건 뒤로 단 1승도 보태지 못하며 다승왕 경쟁에서 하차한 데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도 아무런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서 아쉬운 한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하지만 무려 7경기차로 정규시즌을 마친 뒤 한국시리즈로 직행했던 삼성 라이온즈가 3위팀 두산에 2승 4패로 밀리며 우승컵을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 데는 더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 바로 '약 준 다음 병을 준' 그 해 최고의 투수 갈베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