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한국대표팀 감독 ⓒ 로이터-뉴시스 2002 한일 월드컵이 막을 내린 가운데 '월드컵 2연속 4강 견인'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거스 히딩크 한국대표팀 감독(55)의 거취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30일로 한국팀과의 계약이 만료된 히딩크 감독은 결국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 거의 확실시돼 그의 잔류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포스트 월드컵'에 대한 히딩크의 입장은 "거취 문제는 월드컵이 끝난 후 얘기하겠다"는 것이었다. 작년 1월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그의 입장은 1년6개월간 한 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러나 계약만료 시점이 지남에 따라 '그가 한국을 떠날 것'이라는 관측이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일본 J리그 감독 영입설,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설 등 구구한 억측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가 고국 네덜란드의 명문구단 PSV 아인트호벤(PSV Eindhoven, 이하 PSV)의 지휘봉을 맡을 것이 유력시된다. 'PSV 감독설'의 불을 지핀 것은 네덜란드 언론들이지만, 이를 공론화한 것은 영국의 언론들이다. BBC 방송은 21일 네덜란드 통신사 ANP의 보도를 인용 "히딩크 감독이 한국팀의 월드컵 경기가 끝나면 PSV로 '복귀'할 것"이라고 전했다. ANP는 이날 "한국팀의 경기가 끝나면 그는 곧바로 PSV와 2년 계약에 들어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설을 유력하게 뒷받침하는 것은 다름 아닌 PSV 구단주 하리 반 라이지의 발언이다. 그는 ANP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교섭이 곧 끝나리라고 확신하는데, 2년 계약이 3년으로 늘어날 수 있다. 우리는 그의 확답을 원하지만, 거스는 '나는 네덜란드로 돌아갈 것이고, (그럴 경우) 오직 PSV와 얘기할 것'이라고 언질을 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PSV 대변인은 반 라이지 구단주의 발언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BBC는 "히딩크가 PSV로 복귀하면 그를 영웅으로 받들고 시민권까지 주려고 하는 한국으로서는 큰 실망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히딩크는 BBC 보도를 곧바로 부인했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22일 "히딩크가 'PSV와 교섭한 적이 없다'며 PSV 구단주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고 보도했다. 스페인전을 불과 하루 앞둔 히딩크는 "여러가지 소문이 돌고 있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월드컵 기간 동안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거취 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력을 집중해야 할 중요한 경기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히딩크의 부인에도 'PSV 진출설'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거취 문제를 말한 적이 없다"는 히딩크의 언명에 대해 PSV 구단주는 인디펜던트에 "히딩크가 필립스 경기장(PSV의 홈구장)으로 복귀한다는 뜻을 '이메일로' 표시했다. 나는 우리가 최종 계약에 이를 것임을 확신한다"고 응수했다. 얼핏 말장난 같은 이들의 공방에도 불구, 인디펜던트의 보도는 히딩크 측이 PSV와 간접적인 방법으로나마 접촉을 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인디펜던트는 나아가 "히딩크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언론 보도에 불쾌해했다. 그러나 한국, 특히 한국 선수들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 그는 월드컵이 끝나면 유럽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연합뉴스 히딩크의 거취를 가늠케 하는 또 하나의 방향타는 핌 베어벡 한국팀 수석코치(46)의 향배다. BBC는 21일 보도에서 "베어벡 코치가 1년간 PSV의 2군 감독을 맡도록 이미 계약을 마쳤다"고 보도했다. 네덜란드에 있을 때는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감독으로, 히딩크와 경쟁 관계였던 베어벡 코치는 작년 1월10일 히딩크 감독과 함께 한국에 입국할 때부터 매일 훈련 프로그램을 짜고 성과를 분석해온 히딩크의 1급 작전참모이다. 히딩크가 대표팀에 남아있을 경우 계속 브레인의 역할을 해줘야 할 그가 PSV행을 선택한 것은 히딩크의 마음 역시 고국에 가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더 나아가 "히딩크가 PSV로 떠날 경우 '애제자 4인방' 김남일(25, 전남 드래곤즈), 박지성(21, 쿄토퍼플상가), 송종국(23, 부산 아이콘스), 안정환(26, 페루자)을 데려갈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전망은 "히딩크가 한국을 떠나지만 그가 키운 애제자들과의 끈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기인한다. "히딩크를 강제 귀화시켜야 한다"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개로 들리지 않는 분위기에서 그의 네덜란드행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것은 지치지 않는 그의 도전 정신을 반영하기도 한다. 히딩크는 폴란드전에 앞서 가진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한번 더 월드컵 무대에 서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 같은 그의 언급을 통해 아무 연고도 없는 한국행을 택했던 이유가 월드컵 사령탑을 맡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고, 현재 그는 이 목표를 초과 달성한 상태이다. 그동안 단기적인 성적에 일희일비하고 그의 사생활까지 트집잡았던 국내 언론들의 보도 역시 성공의 절정기에 한국과의 인연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려는 그의 결심을 굳히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히딩크가 PSV의 사령탑을 맡아 좋은 성적을 올리면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독일 월드컵에서 히딩크가 절정의 리더십을 선보일 네덜란드 대표팀과 '히딩크 이후' 몰라보게 달라진 한국 대표팀의 결승전은 불가능한 것일까? 월드컵 개막 전 "앞으로 한국 축구가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5월11일)던 자신의 말을 실천한 히딩크. 그의 머리 속에는 벌써 4년 후의 '즐거운 상상'이 자리하고 있는 지 모른다. PSV는 히딩크의 '마음의 고향' 1913년 창단된 PSV 아인트호벤은 아약스 암스테르담, 페예노르트 로테르담과 함께 네덜란드 3대 명문구단 중 하나로 꼽히고, 한때 허정무 KBS 축구 해설위원이 선수로 뛰기도 해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PSV에서 70∼71시즌에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던 히딩크는 코치(83∼85년)를 거쳐 85년부터 90년까지 PSV의 감독을 맡았다. '히딩크의 PSV'는 네덜란드 팬들에게도 PSV의 전성기로 기억된다. 히딩크는 부임 첫 해인 85∼86시즌부터 88∼89시즌까지 PSV를 4년 연속 네덜란드리그 챔피언으로 이끌었고 특히 88년에는 네덜란드리그와 네덜란드축구협회(UEFA)컵,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 리그 등 3개 타이틀을 석권했다. 편견 없이 선수의 자질을 보는 히딩크의 안목은 PSV 감독 시절에도 빛을 발했다. 1988년 브라질의 호마리우(94년 월드컵 우승의 주역)를 잡기 위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공항까지 추격한 사건은 유명한 일화이다. 94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을 맡은 히딩크는 98년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그해 시즌 우승을 차지한 PSV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표팀 진용을 짰다. 결과는 4강 진출.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준우승 이후 20년만의 최대 전과였다. 히딩크가 네덜란드로 돌아갈 경우 PSV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비칠 정도로 PSV는 그에게 '마음의 고향'이었다. 2002-06-30 15:04 ⓒ 2007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