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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계 추산으로 약 250만명(정부 기준 2010년 현재 115만명)에 이르지만,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유령 노동자'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동관계법의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4대보험에도 원칙적으로 가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13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와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 위한 관련법을 제정토록 고용노동부에 권고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입니다. 한편 노동계는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개념을 특수고용노동자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50만명이 넘는 특수고용자들의 생생한 일상을 통해 그들의 노동자로서 삶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서울시내 대학병원에서 15년째 간병인으로 일한 박씨는 "병원에서는 감기예방주사 한 대 놓아주는 법도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서울시내 대학병원에서 15년째 간병인으로 일한 박씨는 "병원에서는 감기예방주사 한 대 놓아주는 법도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 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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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동안 8kg이 빠졌다. 간병인 박수란(가명, 66)씨 얘기다. 그는 얼마 전 간병하던 환자에게 옴 진드기가 옮았다. 환자복을 갈아입히고, 대소변을 치우다보니 환자의 병이 전염된 것이다. 박씨는 간지러워 밤새 잠도 못자고 죽만 먹으며 치료를 받아야 했다. 대학병원에서 15년째 일하고 있지만 옴 치료는 동네병원에서 받았다. 치료비도 전부 자신이 부담했다. 치료받는 6주 동안 일하지 못한 걸 생각하면 결국 마이너스인 셈이다. 박씨가 말했다.

"몸 아프지, 돈 못 벌지, 치료비도 나가지. 간병인들은 아프면 손해가 막심해" 

영화에서 간병인은 환자의 휠체어를 밀어주고, 말벗이나 해주는 존재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개 휠체어도 타기 힘들만큼 전신이 마비되고, 대화하기도 어려운 중증환자들이 간병인을 찾는다. 이 환자들의 몸에 욕창이 생기지 않게 체위를 바꿔주고, 대소변을 받는 것이 간병인의 주된 업무다. 식사 수발과 약을 챙기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옷을 갈아입히거나 더러워진 몸을 닦아주기도 한다.

일이 이렇다보니 간병인은 많은 병균에 노출돼 있다. 신체접촉이나 환자의 분비물을 통해 병원균에 감염될 확률이 높다. 문제는 병원 측이 이런 위험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돌봄지부 소속 희망간병 고화숙 사무원은 "간병기간이 다 끝난 후에야 자신이 돌본 환자가 에이즈 감염자인 것을 안 간병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환자를 돌보다 균이 옮거나 병에 걸려도 치료는 박씨처럼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특수고용직 간병인은 산재 적용을 받지 못한다. 대학병원이나 대형병원에서 일해도 병원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직원처럼 치료를 받아도 할인을 받지 못한다. 실제로 2011년 10월에는 한 대학병원에서 간병인이 에이즈 환자의 링거에 찔리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해당 병원 직원안전보건과에서는 초기응급치료를 거부했다. 결국 환자 담당의가 조치를 취해 치료는 받았지만 비용만 40만원이 들었다. 박씨의 시급 2700원 기준으론 약 150시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시급 2700원, 일주일에 144시간 일해요"

서울시내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박씨의 24시간 일당은 6만 5천원. 시급으로 계산하면 2700원인 셈이다. 2013년 법정 최저임금은 4860원이다. (박씨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에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마저도 온전히 박씨 것은 아니다. 소개소에 월회비 3만원을 내야 한다. 아파서 일을 못해도 내야 하는 돈이다. 입회비는 따로 내지 않았다. 입회비로 30~40만원의 웃돈을 요구하고, 월회비로 10만원씩 받아 챙기는 소개소도 있으니 그나마 박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간병료는 24시간 기준으로 적게는 6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대가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의 간호서비스 실태 용역조사에 따르면 간병료 평균은 7만원 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간병료는 24시간 기준으로 적게는 6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대가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의 간호서비스 실태 용역조사에 따르면 간병료 평균은 7만원 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 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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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인은 고용방식에 따라 두 가지 부류가 있다. 병원에 직접 고용되어 있든지, 특수고용직으로 있든지. 직접고용되어 있는 경우는 대개 요양전문병원 소속이다. 간병인 1인당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10명까지 환자를 돌본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어 밤낮 2교대로 나누어 근무하는 곳이 많다. 환자들은 병원에 간병료를 납부하고, 간병인은 병원에서 월급을 받는다. 이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해야 하고, 노동자로 인정받는다.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경우는 조금 복잡하다. 간병인 소개소를 통해 간병인과 병원, 환자가 연결된다. 간병인은 소개소에 입회비와 월회비를 내고 환자를 소개받는다. 병원은 소개소와 위탁계약을 맺어 간병인을 관리하고, 환자는 병원과 소개소를 통해 간병인을 구하는 식이다. 특수고용직 간병인은 '프리랜서'와 다름 없다. 이들에게 4대 보험 적용은 물론 퇴직금이나 유급휴가는 당연히 없다.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우대받지만, 일반 간병학원 교육만으로도 일할 수 있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1인당 1명씩 간호하고, 일당을 받는다.

1인당 1명씩 간호하기 때문에 특수고용직 간병인들은 24시간 일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는 간병비용을 줄일 수 있고, 간병인은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24시간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들은 일주일에 6일을 일한다. 하루는 병원생활에 필요한 속옷이나 밥을 준비하기 위해 쉰다. 144시간 연속으로 일하는 셈이다. 최근 보건복지부의 간호서비스실태 용역조사결과에 따르면 간병인의 근무시간은 '24시간 종일'이 80.7%로 대부분이고, 이들의 간병비 수준은 일평균 7만원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간병인에겐 잘 곳, 씻을 곳, 먹을 곳 없는 병원

박씨도 보통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환자를 간병해왔다. 간병인의 하루는 환자가 깨면 시작되고, 환자가 자면 끝난다. 잠은 환자 침대 옆 간이침대에서 잔다. 몸을 잘못 돌리면 쿵하고 떨어지는 작은 크기다. 혹여나 환자가 잠을 이루지 못하면 간병인도 잘 수 없다. 신경외과 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못자는 경우가 많다. 환각상태에 빠져 밤새 병원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이럴 때 박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환자를 따라다니며 타이르는 것이다. 강제로 침대에 눕히거나 나몰라라 하다간 환자가 다칠 수 있다. 박씨가 말했다.

"자는 시간은 대중없어요. 아픈 사람은 새벽에도 수시로 깨고 돌봐줘야 하니까요. 그냥 몸 좀 뉘이는 거죠."

아침에 일어나면 환자의 얼굴을 닦아준다. 상태가 심하지 않은 환자는 화장실에서 세수와 머리감기를 돕기도 한다. 병동에는 대개 층마다 환자를 위한 샤워실이 있고, 병실마다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에서도 환자들이 간단히 씻을 수 있도록 샤워기가 구비돼 있기도 하다. 그래도 간병인들이 쓸 곳은 없다. 층층이 샤워실마다 "환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병원에는 씻을 데가 없어요. 몰래 샤워실을 쓰다 들키면 청소원이나 간호사한테 민망할 정도로 혼나요. 1인 병실을 쓰는 환자들은 물소리에도 예민해요. 샤워는 고사하고 세수도 못하는 거죠. 그냥 눈치보다 다른 층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옷 갈아 입는 수밖에요"

갈아입은 옷을 세탁하는 것도 문제다. 병원 세탁실은 환자복이나 수술복만 빨 수 있다. 간병복은 열외다. 박씨는 한 벌은 소개소와 단체계약한 세탁소에서 3000원을 주고 빨고, 한 벌은 집에서 직접 빤다. 간병복은 3일에 한 번 갈아입는다 하면 한 달 세탁비도 만만치 않다. 그나마 소개소와 계약한 세탁소가 없으면 시간과 비용을 배로 지불해야 한다.

간병인들이 소개소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는 일주일치 밥과 반찬. 딱딱하게 언 음식을 전자렌지에 돌려 급하게 먹는 게 일상이 됐다.
 간병인들이 소개소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는 일주일치 밥과 반찬. 딱딱하게 언 음식을 전자렌지에 돌려 급하게 먹는 게 일상이 됐다.
ⓒ 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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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인 생활에 가장 서러운 것은 '밥'이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제대로 먹을 길이 없다. 병원식당은 한 끼에 3천원 꼴로 외부 식당보다는 싸지만 하루 세끼면 밥값으로 만원을 써야 하니 한 달 비용이 만만치 않다. 박씨는 하루 쉬는 날 일주일치 밥과 반찬을 얼려온다. 운이 좋으면 동료들과 반찬을 나눠 먹지만 혼자 먹는 일도 많다.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각자 환자들의 식사가 끝나고 후다닥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제 때 따뜻한 밥 한 끼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전자렌지에 대충 돌려서 급하게 먹는 밥은 어쩔 수 없이 살려고 먹는 거잖아요."

간병인들이 따로 쉬거나 식사할 공간이 없는 것도 밥을 급하게 먹는 이유다. 박씨는 환자 식사 배식을 준비하는 공간인 배선실에서 식사를 한다. 간호사나 보호자들이 들락날락하기에 편한 곳은 아니지만 병실보단 낫다. 병실에서는 식사시간 이후에 반찬냄새를 풍긴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고, 금식환자 옆에서 먹는 것이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병인의 횡포? 3중 눈칫밥

척박한 병원 환경에서 열심히 간병해도 돌아오는 건 눈칫밥이다. 환자와 간병인의 계약은 "이제 그만 나오셔도 돼요" 한마디에 끝난다. 혹여 보호자나 간호사가 불만을 제기하면 소개소에서 제명돼 환자소개를 못 받을 수도 있다.

박씨가 간병 활동을 할 때마다 병동 간호사들은 '간병 활동 확인서'로 박씨를 평가한다. 평가내용은 환자에 대한 언행이나 복장을 준수했는지, 치료방침에 협조했는지, 병원물품을 남용하진 않았는지 등이다. 이 확인서에 따르면 환자를 거부하거나 병원에서 세탁을 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각 항목에 대해 간호사들이 상중하로 평가하고 종합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는지 판단한다. 간호사들의 관리감독을 받는 셈이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돌봄지부 소속 희망간병이 공개한 '간병활동확인서'. 수간호사의 관리감독 아래 평가가 이뤄진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돌봄지부 소속 희망간병이 공개한 '간병활동확인서'. 수간호사의 관리감독 아래 평가가 이뤄진다.
ⓒ 의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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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간호사가 할 일을 간병인이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중증마비 환자 목에 낀 가래를 제거하는 '석션'이나 유동식을 공급한 코줄을 끼우는 일이다. 현행법상 간병인은 석션이나 투약, 환자 신체에 호스를 연결하는 일은 할 수 없다. 의료행위이기 때문이다. 석션은 적게는 2시간마다 한 번씩, 코줄이나 배변줄도 4~5시간에 한 번 씩은 교체해 줘야 한다. 병원에 간호사는 없고 환자는 많으니 일부 간호사들은 이를 잘 못하는 간병인에게 면박을 주기도 한다. 불법의료행위를 조장하는 격이다.

보호자는 대개 간병비 부담에 비해 간병인의 돌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포털사이트에 '간병인'을 검색하면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대가만 요구하는 간병인을 성토하는 글이 많다. 일당 7만원씩이면 한 달 간병료가 200만원이 넘는데 이럴 수 있느냐는 식이다. 결국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높지만 간병인이 그만한 처우를 못 받는 데서 나오는 불협화음이다.

이에 대한 제도개선의 목소리는 이미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해 7월 요양보호사 노동 인권 개선에 대해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는 간병인의 최저임금위반과 과도한 근무시간, 휴게공간 부족, 폭언과 성회롱에 노출된 상황과 관련해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에 관리감독과 제재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간병인에 대한 전문교육과 자격기준을 강화하고, 간병인 소개소와 협회 관리 기준을 두어야 한다는 학계 의견도 있다. 궁극적으로 노동부 차원에서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간병인을 노동자로 대우하고, 근로기준법과 4대 보험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요양병원이 2005년에는 203개였던 데 비해 2012년에는 1000여 개로 5배나 늘었다. 입원진료비도 2005년 1251억원에서 2010년 1조 6262억원으로 급증하고 있다. 요양보호사 자격취득자도 증가 추세다. 2009년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제 도입 이후 2011년말까지 요양보호사 자격증 보유자는 총 106만명 가량이다. 초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환자도 늘고, 간병인도 늘지만 간병서비스의 질이나 간병 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태그:#특수고용직, #간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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