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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계 추산으로 약 250만명(정부 기준 2010년 현재 115만명)에 이르지만,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유령 노동자'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동관계법의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4대보험에도 원칙적으로 가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13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와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 위한 관련법을 제정토록 고용노동부에 권고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입니다. 한편 노동계는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개념을 특수고용노동자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50만명이 넘는 특수고용자들의 생생한 일상을 통해 그들의 노동자로서 삶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대리운전 광고. '운전만 잘하면 누구나 OK. 250만원 이상 수입 가능' 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대리운전 광고. '운전만 잘하면 누구나 OK. 250만원 이상 수입 가능' 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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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기술 없이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누구나 당장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면 하는 만큼 벌 수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당장 몇 푼이라도 손에 돈을 쥐어야 했던 김영수(53)씨는 대리운전 5년차다. 오늘 벌어 오늘 하루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던 그가 대리운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본 대리업체 구인광고였다.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어르신들도 일한다. 요즘은 취업이 어려워서 그런지 젊은 친구들도 알바 하러 많이 온다. 자식또래의 친구들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낮에 할 수 있는 찾으라고 권유한다. 밤새 기다리고 뛰어다니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니까."

사계절 내내 같은 복장으로 일하는 김씨

김씨의 출근준비는 매일 오후 7시부터 시작된다. 검은 정장에 흰셔츠를 입고 양복구두를 신고 집을 나선다. 추운 겨울이든 한여름이든 사계절 내내 복장이 변한 적이 없다. 복장 규정을 어기면 업체가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합류차에 타지 못하게 하거나 콜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검은 정장은 어두운 밤에 잘 보이지 않아서 위험하지만 회사의 규정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딱딱한 구두를 신고 밤새 뛰어야 하는 그는 이 일을 시작 하고나서 항상 피곤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벌금이 늘어나는 내용을 담은 정책변경 안과 춘계복장규정 문자 내용.
 벌금이 늘어나는 내용을 담은 정책변경 안과 춘계복장규정 문자 내용.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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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씨의 업무는 스마트폰에 깔려있는 프로그램을 켜 근방에 콜이 있는지 확인하며 시작된다. 현재 김씨가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2개. 하루 4~6개 정도 콜을 타지만, 대리회사들이 너무 많아져서 하나의 프로그램으로는 콜을 제대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사들이 2~3개의 프로그램을 사용한다고 했다. 같은 연합콜에 소속된 두 회사지만 프로그램 이용비, 출근비, 콜비, 보험료도 다 따로 받았다.

대리운전 전용 휴대폰 요금비가 한달 6만 원, 월초에 선결제 되는 프로그램 이용비가 회사당 1만 2000원~1만 5000원, 한달 보험료가 회사당 6만 원~7만 원, 매일 출근비가 회사당 3000원, 기사가 알아서 잡은 한 콜당 수수료 3000원, 혹시나 잘못 선택한 콜일 경우 취소비용이 건당 2000원씩 기사에게서 빠져 나간다.

그래서 김영수씨가 실제로 쥐는 돈은 많지 않다. 하루 평균 5개 콜을 타는 그가 손님에게 받는 요금은 부산 전지역 1만원에서 2만원사이.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은 경우 콜도 잡기 힘들뿐더러 그나마 손님에게서 받던 천 원단위의 팁도 기대하기 힘들다.

김씨가 사용하는 프로그램에는 손님의 출발지는 보이지만 목적지는 보이지 않는다. 손님을 만나야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외진 곳이거나 다른 콜을 연결해 타기 어려운 곳, 합류차가 오지 않는 곳, 퇴근이 어려운 곳일 수 도 있지만 기사는 무조건 가야 한다. 손님을 데려다 드리고 다음 콜을 탈 수 있는 곳까지 나오는 교통비는 기사 개인의 몫이다.

비용적인 문제 때문에 무턱대고 택시를 잡을 수도 없고 대중교통이 운행하지 않는 시간에 일을 하기 때문에 무작정 걸어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 다른 콜이 뜰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콜이 뜨면 또 손님을 찾아 움직였다. 요즘은 콜이 너무 없어 일찍 퇴근하는 동료들도 많지만 김영수씨는 그래도 기다려 한 콜이라도 더 타고 집에 들어가려는 편이라고 했다. 김씨는 아침 첫 버스가 운행할 때가 되어서야 퇴근했다.

"손님에게 무조건 사과하세요"

손님의 안전한 귀가를 5년 동안 책임졌던 그는 술취한 손님을 상대하다 보니 때때로 시비에 휘말린 적도 있다. 요금을 덜 주거나, 안 주는 경우도 있었고 갑자기 운전 중 욕설과 폭행을 하는 손님도 있었다. 주차문제로 시비를 걸거나, 심한 인격모독을 듣고 시비가 커져 파출소까지 간 일도 있었다. 그는 처음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런 문제가 발생해 제대로 된 대응방법을 몰라 회사 측에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럴 때 마다 회사측은 대답은 똑같았다.

"손님에게 무조건 사과 하세요." 

그러다 손님이 회사로 컴플레인을 걸면 기사의 기기는 바로 록(lock : 프로그램 사용을 막아버리는 조치)이 걸려버렸다. 기사 설명하는 전후사정은 듣지 않고 록, 경고조치에 이어 벌금, 손님에 대한 친절 서비스교육을 다시 받아야 했다. 회사 내 제대로 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순간적인 조치에 따라 기사에 대한 벌이 정해졌다. 

잠겨버린 기기와 금전적인 손해, 며칠 동안 일을 하지 못했던 김씨는 순순히 업체의 말을 들을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개인이 아무리 항의해봤자 변하는 것도 없을 뿐더러 자신만 손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뒤로 문제가 생긴 동료를 볼 때 마다 최대한 자신의 선에서 끝내야 한다며 그게 최선이라고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콜을 기다리고 있는 대리운전기사의 모습.
 콜을 기다리고 있는 대리운전기사의 모습.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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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과거에 일했던 부산 A업체의 경우 시장점유율 1위의 업체이지만 기사에게 정상적인 수익을 돌려주지 않는 이상한 회사라고 설명했다. 관리직원이 다단계처럼 배정되어 있는데 각 점장들이 많은 대리기사를 관리할수록 점장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커 대리기사모집에 혈안이었다. A업체의 정직원으로 일할 경우 주당 16만 5천 원의 사납금(현재는 17만 5천 원으로 인상)을 내야 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프리(사납금 없이 일하는 방식)로 일을 하자 출근비와 요금의 30%를 무조건 수수료로 받아갔다.

김씨는 A업체의 부당한 행위 때문에 그만두고 연합업체(소규모 대리업체들 모여 만든 곳)로 옮겨 일을 시작했지만 여기서도 업체의 비합리적인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과다한 수수료는 물론, 김씨는 현재 B화재의 똑같은 보험 2개를 들어서 일하고 있다. 개인보험이지만 대리업체에 돈을 내고 가입도 업체를 통해 하고 있다. 연합회사라 하나의 개인보험을 사용한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곧 업체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기사의 이탈을 방지하고 회사에 소속시키기 위해 개별체제로 운영하게 된 것이다.

업체간 경쟁으로 소속기사들은 이중, 삼중으로 같은 보험의 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실제로 사고가 발생했을 시 소속된 업체는 나몰라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 특약보험으로 처리되는 것이므로 보험사에 연락해 차주와 처리하라는 것이 이쪽 업계의 방침이다.

실제로 소비자 보호원에 접수된 사례에 따르면 대리기사의 업무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 업체측에서는 '대리운전 기사와의 관계에 있어 대리운전 예약에 대한 수수료를 받고 사고에 대한 보험접수 대행만 할 뿐 사용자의 위치에 있지 않아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대리운전 업체 규제 수단 없어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에 최근 1년간 (2011년 9월~2012년 8월) 제기된 대리운전과 관련된 민원은 총 438건이며, 그 중 대리운전 기사가 아닌 대리운전 업체의 횡포로 야기된 민원이 총 297건으로 전체 민원의 약 68%로 알려졌다. 불법 허위광고, 각종 명목의 수수료 선취와 같은 대리운전 업체의 부당행위, 대리운전 프로그램 관련 프로그램사의 부당행위, 사고 처리의 보상 회피 관련 등이 그것이었다.

현행 대리운전은 자유업으로 분류되어 있어 정부의 관리나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 권익위는 "사용자가 부당 계약해지, 불합리한 지위남용 및 근로여건(근무시간, 휴일, 보수, 각종 수수료 등) 제공 등 종사자의 권익을 침해해도 구제 방법이 없고,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권리구제 수단자체가 없다"면서 "고충해소 및 근로여건 개선을 위한 협의·조정 등을 할 수 없고, 만일 단체 가입시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당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대리운전사 입장에서는 업체가 요구하는 부당한 수수료나 사고 처리 문제 등에 대해 달리 대항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18대 국회에서 대리운전 관련 의원 법안 3건이 회기종료로 폐기되었으며 19대 강기윤(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대리운전업법안'을 대표발의(2012년 9월) 했으나 제도의 실효성과 효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높은 수수료와 사납금 문제에 대해 대리업체 측은 "이 업종 자체가 광고비 투자비율이 높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면서 "관리비, 교육비 등 서비스 향상을 통해 더 나은 고객응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비용도 많이 들어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스스로를 '노예'라고 부르는 대리기사들.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집안의 가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권리의 사각지대에서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공허한 울림이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태그:#대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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