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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계 추산으로 약 250만명(정부 기준 2010년 현재 115만명)에 이르지만,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유령 노동자'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동관계법의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4대보험에도 원칙적으로 가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13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와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 위한 관련법을 제정토록 고용노동부에 권고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입니다. 한편 노동계는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개념을 특수고용노동자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50만명이 넘는 특수고용자들의 생생한 일상을 통해 그들의 노동자로서 삶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직장인이신가요? 4대 보험 적용 되세요? 연체내역은 없으시구요? 대출은 처음이신가요?"

전화를 받은 배아무개씨(34)는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그는 '대출상담사'다.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대출상품을 찾아주는 일을 한다. 돈을 빌려주려는 회사와 돈을 빌리려는 개인을 이어주는 역할이다. 지난 3월 18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8년째 대출상담 일을 하고 있는 배씨를 만났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들이 은행 직원이거나 불법사기꾼인 줄 알지만, 둘 다 아니다. 대출상담사는 위탁사업자다. 고객에게 은행 대신 대출조건을 설명해주고, 대출이 성사되면 중개수수료를 받는다. 부동산 중개인과 비슷하다. 다만 대출상담사는 한 금융회사와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해당 회사의 대출상품만을 취급한다. 중개수수료도 금융회사에서 받는다. 일종의 소속관계인 셈이다.

금융감독원은 2010년 4월부터 '대출모집인 모범규준'을 마련해 대출상담사의 자격 취득과 업무 방법에 대해 지도․감독 중이다. 이 규준에 따르면 정식 대출상담사들은 금융 관련 협회 교육을 12시간 이상 이수했고, 1인 1사로 전속계약돼 있으며, 통합조회 시스템(http://www.loanconsultant.or.kr)에서 신분을 확인할 수 있다. 배씨도 이 모범규준에 따라 교육과 등록을 마친 정식 상담사다. 현재 그는 한 캐피탈 회사에 소속돼 있다.

법 지켜도 사기꾼 취급 받는 대출상담사

시중은행 대출창구에서 시민이 은행관계자와 상담하고 있다.
 시중은행 대출창구에서 시민이 은행관계자와 상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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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나 전화로 먼저 대출을 받으라고 광고하고, 대출을 받는 사람에게 수수료를 요구하면 200% 불법사기꾼이다. 현행법상 문자와 전화를 통한 대출 텔레마케팅과 대출인에게 수수료를 징수하는 것은 불법이다.

배씨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한다. 불법마케팅의 유혹이 없는 건 아니다. 대출상담사에게 실적은 곧 돈이다. 기다리는 서비스보다 찾아가는 서비스가 효과적이라는 걸 그가 모를 리 없다. 그래도 그는 "유혹한다고 법을 안 지키는 건 짐승과 다를 바 없죠"라 말한다. 억울한 건 어떻게 일하든 불법이라 여기는 세간의 시선이다. 

동창들 사이에서 배씨의 별명은 '사채업자'다. 동창회 모임에 나가면 "사채업자 왔냐", "나도 오천만 땡겨 줘라"는 놀림이 쏟아진다. 친구들이야 장난치는 것이려니 하고 웃어넘기지만, 고객들마저 그럴 땐 심각하다. 인터넷에서 그의 대출상담사 신분을 확인하고 전화하고도 "사기꾼이냐? 피싱 아니냐?"고 묻는다. 한참 상담하다 사기꾼이라며 "고소하겠다"고 소리를 지른 뒤 전화를 끊은 고객도 있었다. 배씨가 말했다.

"불법대출 때문에 죽겠어요. 대출이라는 말만 들어도 불법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불법대출에 실적 뺏기는 것도 억울한데 사기꾼 취급이나 당해야 하고……."

배씨의 하루 일과는 오전 9시까지 캐피탈회사 지점으로 출근하면서 시작한다. 지점이라고는 하지만 영업소가 아닌 사무실이다 보니 대출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은 없다. 상담은 대개 전화로 하고, 일처리는 인터넷으로 한다. 그래도 근무복장은 일반 양복이다. 소속사 방침이다. 회사가 그에게 제공하는 것은 공짜 인터넷과 전화를 쓸 수 있는 책상 한자리다. 그나마 대개 휴대전화로 상담요청이 와서 전화기는 별로 쓸 일이 없다. 상품 홍보나 대출문의를 받는 것은 영업사원처럼 알아서 하면 된다. 소속사의 도움은 일절 없다. 모든 것은 대출상담사의 역량이다.

대출상담 방식은 은행원들과 똑같다. 의뢰인의 신원과 정보를 파악하고, 대출 상품 조건과 비교해 본다. 금융망을 통해 의뢰인의 정보가 맞는지 확인하고, 금융회사 시스템으로 대출 가능성을 판단한다. 대출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으면 의뢰인에게 서류를 준비시킨다. 서류를 챙겨 대출을 신청하고, 대출이 승인되면 성공이다. 승인이 안 되면 의뢰인은 돈을 빌리지 못하고, 배씨는 수수료를 받지 못한다.

영업사원이나 은행원과 비슷한 일을 하지만 배씨의 월급은 정직하게 실적만큼이다. 위탁사업자기 때문에 기본급이란 게 없다. 4대 보험지원도 당연히 없다. 대출을 많이 모집하거나 상담을 아무리 잘 해도, 성과급이나 보너스도 없다. 퇴직금이나 산재, 고용보험 혜택은 남의 세상 얘기다. 배씨가 소속사에서 지급받는 것은 100% 중개 수수료뿐이다.

배씨가 받는 중개수수료율은 평균 3%가량. 한 달 평균 200만원쯤 번다. 전화와 문자 상담을 합쳐 하루 평균 4~5건, 한 달 평균 80건 가량 상담한 결과다. 대출 상담사들은 월급의 편차가 크다. 업계관계자는 "대출상담사도 보험모집인과 똑같다. 많이 버는 사람은 월 1억까지 벌지만, 못 버는 사람은 한 푼도 못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상담을 못하는 대출상담사는 실직자나 다름없다.

이처럼 위탁계약을 맺고 개인사업자로 일하는 사람들을 '특수고용직'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12월 국민권익위원회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권익보호 방안'을 발표하며 대출상담사를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유사 업종'으로 분류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2년 정식 대출상담사 수는 1만 8646명이다. 2011년 2만 2055명에 비해 약 16% 줄어든 수치지만 적은 수는 아니다.

대출상담사가 국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외국계은행이 들어오면서부터다. 이들이 대출시장에 진입하면서 국내 은행보다 영업지점이 부족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금융노조 정책 담당자들은  "(대출상담사 방식이) IMF이후 급격히 늘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외국계은행 뿐 아니라, 국내은행도 위험부담이 적은 가계대출로 눈을 돌리면서 새로운 판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출상담사는 비용면에서 영업점 설치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문제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금융회사들이 대출상담사의 영업시장까지 침해하고 있다는 것. 대출상담사들은 대개 인터넷 오버추어 광고로 상담을 모집한다. 일명 키워드 광고로 '대출'을 검색했을 때 검색화면에 그의 이름이 뜨게 하고, 이를 클릭한 횟수만큼 광고비를 내는 식이다. 배씨도 이 광고를 하고 있다. 광고비용으로 한달 평균 100만원이 든다. 소득의 절반이지만 대출영업의 특성상 광고를 안 할 수 없다. 보험이나 자동차 판매처럼 사람을 만난다고 대출상담이 늘진 않기 때문이다. 개인차원에서 TV나 신문, 버스 광고는 무리이기 때문에 사실상 인터넷 키워드 광고는 대출상담사들에게 유일한 홍보수단이다. 그럼에도 유명 포털 사이트에 '대출'이라고 치면 상위에 링크는 모두 금융회사나 대부업체다.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은 콜센터를 통해 직접 대출을 모집하기도 한다. 배씨가 말했다.

"개인상담사에게 실컷 상담을 다 받고 나서 콜센터를 통해 대출을 받는 경우도 있어요. 아예 광고하지 말란 소리가 아니에요. 대출상담사와 계약을 했으면 우리 시장은 남겨줘야 하잖아요. 대기업이 구멍가게가 버는 돈까지 털어가는 거랑 뭐가 달라요?"

불안한 미래에 결혼은 사치일 뿐

최근에는 대출 승인까지 어려워졌다. 금융회사에서 돈을 내놓으려 하지 않고,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도 신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가 어려울 때는 은행도 몸을 움츠려요. 신용이 확실하거나 담보가 확실한 사람만 대출을 받을 수 있죠. 사실 그런 사람들은 은행가서 직접 해결하잖아요. 병원비 때문에 급전 필요한 사람, 학비가 부족한 대학생처럼 안타까운 사연이 많은데, 해결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돈 가진 사람이 돈 빌려주기 싫다는데 사이에 낀 사람이 뭘 어쩌겠어요."

사정이 이러니 배씨는 결혼도 꿈꾸지 못한다. 그는 올해 34살이 된 장남이다. 부모님 기대가 크지만 여자친구에게 "결혼하자" 말할 수가 없다. 자신의 불안정한 짐을 여자친구에게 지울 순 없기 때문이다. 지속되는 불안에 주변에는 이직을 결심하는 사람도 많다. 배씨가 자리를 뜨면서 말했다.

"매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해요. 8년 동안 이 일을 했는데, 그만두면 뭘 하겠어요. 일단은 어쩔 수 없죠 …."

2012년 7월 금융감독원은 금융 상품 모집인(보험, 신용카드, 대출 등) 제도 개선을 위해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상품 모집인의 전문 직업화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1년여가 지났지만 불법사기꾼으로 오해받고, 금융회사에 치이면서, 노동권 보호도 못 받는 현실은 여전하다.

더군다나 유일한 소득인 수수료는 더 줄어들 기세다. 지난 2월 금융위원회는 대부업 중개 수수료 상한을 5%로 제한하는 '대부업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수수료를 줄여 서민들의 대출 금리 부담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대부업 중개 수수료 상한을 5%로 제한할 경우 은행이나 제2금융권 역시 현재 수수료 3%를 낮출 가능성이 높다. 중개업자인 대출상담사들의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태그:#특수고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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