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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가. 한때는 방송사의 간판이자 '좋은 프로그램'으로 상을 받기도 했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KBS 'TV는 사랑을 싣고', 그리고 SBS 오락프로그램의 대표주자였던 '멋진 만남'. 이 3인방에 대한 구조조정 요구가 뜨겁다.

먼저 지난 여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 몰래카메라의 순기능을 잘살려 '교훈적인 재미를 준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경규가 간다' 등 오랫동안 일요일 저녁을 즐겁게 했던 <일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그러나 올 들어 <일밤>은 과거의 명성이 부끄러울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가슴 드러난 비키니 수영복 사건'으로 TV의 선정성에 대한 비판여론에 기름을 붓고, '미스테리 극장'을 연상케 하는 '서경석의 하지마 시리즈'로 "일밤 하지마"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다급해진 MBC는 이경규를 진행자로 다시 불러들이고 코너를 새로 단장해 잃어버린 명성을 되찾으려 애써 보지만 시청자 반응은 새로 시작한 코너들이 모두 일본 프로그램 표절이라는 항의뿐이다.

특히 '게릴라 콘서트'는 사전에 사람들에게 콘서트 사실을 홍보해 놓고 기습 콘서트로 사람들을 모은 것처럼 방송해 "시청자를 바보로 아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추락하는 <일밤>에 날개는 없는 것일까.

'TV는 사랑을 싣고' 역시 지난 6년간 600여명의 그리운 사람을 만나게 주선했고 크고 작은 일화도 많이 남겼지만 이제는 그 공력이 다한 듯하다. 스타급 연예인들을 출연자로 고집하다보니 이제는 출연자 섭외에 애를 먹고 있는 지경이라고.

지난달 19일 이다도시의 첫사랑을 찾아 프랑스까지 원정을 가면서 제작비를 소진하고 외화를 낭비하더니 시드니 올림픽 중계를 틈타 휴식에 들어갔다. 과연 짧은 휴식으로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을까.

그동안 방송사 사이트 시청자의견 난에는 일반인에게 참여 기회를 달라는 청원성 글들이 적지 않았지만 제작진은 통 눈길을 주지 않았다. 결국 인터넷 동창회 사이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보고싶은 사람을 찾을 기회를 갖게 된 일반인들도 더 이상 'TV는 사랑을 싣고'에 목을 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TV는 누구의 사랑을 싣고 가나.

상식을 깬 벌칙으로 인기가 많았던 '못말리는 데이트' 등 진행자의 개인기가 돋보였던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 오락 프로그램의 공식처럼 여겨지던 떼거지 진행의 틀을 깨고 한창 잘나가던 두 개그맨이 '이름을 건' 프로그램답게 개성있는 재미를 주었다.

그러나 남희석의 결혼 즈음부터 방송인지 셀프카메라인지 헷갈리게 하며 삐그덕 대더니 결국 이름 없는 <멋진 만남>만 덩그러니 남았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그렇게 쉽게 내팽개친 두 사람도 문제지만 섣불리 진행자를 내쫓고 다른 사람을 들여 그전 사람 흉내를 내게 하는 제작자도 문제다.

새로운 사람들이 진행자를 맡게 됐으면 그들의 개성에 맞는 새로운 기획과 진행방식을 택하는 것이 상식이다. 아무리 모창과 성대모사 등 인기인 흉내내기가 유행이라고 하지만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신인들에게 도중하차한 선임 진행자의 역할을 대신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꼴불견이다.

프로그램들이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서는 처음의 기획의도를 견지하며 시청률에 연연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쉼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프로그램 가꾸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새로운 프로그램에 자리를 내 주는 것이 마땅하다.
'구조조정 대상 3인방'도 한 때의 영광에만 연연해 매너리즘에 젖어있기 보다는 아름다운 은퇴를 생각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영화전문주간지 <씨네버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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