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난설헌교에는 허균의 누이 허초희의 호를 따 이름 지었고 거북이 등에 올라탄 홍길동이 조각이 먼저 반긴다.
 난설헌교에는 허균의 누이 허초희의 호를 따 이름 지었고 거북이 등에 올라탄 홍길동이 조각이 먼저 반긴다.
ⓒ 김종신

관련사진보기

 
16세기 중반 조선에서 치른 임진왜란(전쟁)은 일본에서 그 주범인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598년 죽고 도쿠카와(德川 幕府) 시대가 열리고, 중국에서는 1616년 여진족이 후금을 세웠다가 1636년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 대륙을 장악하였다.

일본과 중국은 이 전쟁으로 왕조가 교체되었는데 막상 전쟁터가 되고 3국 가운데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조선왕조는 부패무능한 채로 왕권이 지속되고 있었다. 

1392년 이성계가 이씨조선을 개국한지 꼭 200년 만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그로부터 303년 뒤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국권을 빼앗겼다. 

300년 세월은 국정을 개혁하고 부국강병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 사이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단행하여 근대국가로 변형하고, 청국은 130여 년 간의 강희ㆍ옹정ㆍ건륭제의 태평성대를 열었다. 조선은 영ㆍ정조의 탕평책과 개혁정책이 시도되었지만, 권력은 다시 수구파에게 장악되고 결국 경술국치에 이르고 말았다.

역사에 가정이란 '부질없음' 이라지만, 1617~8년경 허균의 주도로 역성혁명이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여러가지 자료(사료)를 검토하면 그는 혁명을 시도했던 것 같다. 

그가 역성혁명을 일으키려 했다는 증언도 있다. 그의 혁명 준비에 참여했던 황정필이 

"균이 처음엔 의창군을 추대하려다가, 나중엔 스스로 왕이 되려했다"

고 자백했다. 이 자백이 허균을 죽이기 위해 이이첨 쪽에서 정치적으로 조작한 흔적이 있긴 하지만, 그가 역성혁명을 꾀하여 허씨 왕조를 세울 수도 있는 법이다. 이성계가 왕씨의 고려를 무너뜨리고 이씨의 조선을 세웠듯이, 그때 정세로 보아서 허균이 이씨 조선을 무너뜨리고 허씨 왕조를 다시 세울 수도 있었던 것이다. 역성혁명을 의도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씨 왕조에게는 죄를 얻었을는지 모르지만, 오늘에 와서까지 허균을 죄인시할 필요는 없다. (주석 5)

 
천하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백성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허균의 '호민론'. <성소부부고> 권 11에 실려 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천하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백성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허균의 "호민론". <성소부부고> 권 11에 실려 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 연세대학교

관련사진보기

 
타이밍도 절묘했다. 국내적으로는 광해군의 정통성에 문제가 따랐고, 왕조에 대한 민심의 이반이 심각한데다, 중국 대륙은 명ㆍ청간의 왕조 교체기로 혼란기여서 조선문제에 간섭할 처지가 못되었다.

그가 거사를 계획한 것이 전혀 무리한 일은 아니었다. 임금이 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광해군은 왕위 유지에 자신이 없었기에 친형 임해군을 죽이고, 선조의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까지 죽였으며, 중국에도 수많은 뇌물을 썼다. 민심은 늘 불안했으며, 올바른 신하들은 광해군을 포기하고 재야에 숨어 지냈다. 

게다가 대륙에선 명나라가 망해가고 청나라가 일어나려는 시기였으므로, 조선 문제에 간섭할 여유가 없었다. 여러 차례 중국에 다녀오면서 국제정세에 민감했던 허균은 지금이 바로 자기의 이상을 실현할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우선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폐비론을 내세운 것이다. (주석 6)


허균은 역사에서 호민의 역할을 믿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자신이 하고자 하였다.

허균은 그때의 나라 현실을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가 망할 때와 같은 말기로 보았고, 민중을 아낄 줄 모르고 폭정을 일삼는 놈들이 바로 그때의 지배계층이라고 보았다. 이어 허균은 우리나라는 땅이 좁고 인구가 적고 백성이 게으르고 통이 좁아서 호민 세력이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정치가 어지러울 때에 호민이 나라의 걱정거리가 된 적은 역사에서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말로 위정자에게 경고한다.

"불행하게도 진훤과 궁예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적이 있으므로 이와 같은 사람이 나와서 백성을 충동질하면 근심과 원망에 가득찬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일이며 바로 눈앞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석 7)


주석
5> 이가원 지음, 허경진 번역, 『유교반도 허균』, 259쪽,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0.
6> 앞의 책, 258쪽.
7> 이이화, 앞의 책, 11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허균, #허균평전 , #자유인_허균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